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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이 Oct 07. 2018

누구나 바디에 흉터 하나쯤은 있잖아요 (1)

알아도 또 모르는 관계에 대하여

그렇게까지 뭐라고 할 일은 아니었다. 그냥 친절하게 대답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몇 번을 되물어도 또 까먹었냐며 이야기해주면 될 사람이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미안한 데다 이미 죽어버린 상처 이야기에 살아있는 상처를 낸 것 같아서 변명 아닌 변명을, 공개적으로는 해본 적 없는 흉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건은 어느 주말 저녁, 자양동에서 발발했다. 회장님이 내 목에 있는 흉터에 대해 물어오셨다. 정면으로 봤을 땐 잘 안 보이는데 고개를 양옆으로 돌리거나 위로 올리면 보이는 작은 흉터다. 외할머니댁에 내려갔다가 긁혀서 상처가 났고, 할머니가 약을 잘못 발라서 이렇게 됐다고만 알고 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이게 뭐 별거인가 싶었다. 살면서 흉터 몇 개 안 생기는 애가 어딨겠나. 근데 다들 피부에 흉터 생길까봐 전전긍긍하는걸 알고 난 이후부터는 그 존재감이 무거워졌다. 할머니를 원망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거기다가 흉터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이래저래 귀찮고 신경 쓰기 싫어서 입기 시작한 목티는 최애템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가리던 흉터를 누군가가 보고 또다시 물어오면, 이 사람이 내 흉터를 보았구나, 흉터가 보였구나, 싫다는 감정으로 연결되곤 한다. 어쩌면 평생 가질 수 없는 매끄러운 목에 대한 열등감일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회장님이 흉터에 대해 물어왔을때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토로했다. 보이는 흉터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 게 맞다고. 가까운 것과는 별개로 떠올리기 싫은 상처일 수도 있지 않냐고. 회장님의 견해는 달랐다. 우리가 하루 이틀 본 사이라면 본인도 이야기하지 않았을거라고, 지금까지 못 보던 흉터가 보여서 물어본 거라고.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그러나 회장님의 기억과 내 기억은 달랐다. 회장님이 흉터에 대해 물은건 처음이 아니었다. 세 번째였다. 내 흉터는 갓 생긴 게 아니라 20년도 훌쩍 넘은 것이니 그 또한 달랐다.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한건 어디까지나 내 잘못이다. 심지어 다른 친구라면 그냥 몇 번을 물어오냐며 타박하고 말았을 이야기를 회장님에게는 구구절절 해버렸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 말은 띵언이라고 해놓고 또 생채기를 냈다. 사람들이 봐도 못 본척 해주는걸 배려라고 생각하며, 묻지 않았으면 좋겠으며, 그걸 묻는 순간 실망하게 된다고 아주 날카롭게 이야기했으니 뭐 말 다 했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 궁금함을 참아주었으면 좋겠다며 쐐기까지 박아버렸다. 다시 한번 미안하다.


한 2주 정도 지났나. 다시 자양동에서 만난 회장님은 귤님께 이 이야길 했다고 한다. 이 정도 질문은 할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거 같다는 내용이다. 제가 정말 높게 평가하는 귤님은 이렇게 답했단다. "회장님을 그만큼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 아닐까?"순간 아찔해졌다. 정말 아닌데요! 또 잊어버리고 네 번째 물어봐도 짜증은 냈을지언정 똑같이 이야기했을 거다. 가슴 속에 꾹꾹 담아두고 얘는 무심하다,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게 한다며 씩씩거리진 않을 거다. 불필요한 침묵이 늘어나는 순간부터 관계는 부식된다고 생각하니까.


흉터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보며 느낀건 결국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아직까지도 잘 모른다는거다. 큰 사건이 생겨도 상대에게 오픈할 수 있는 여부와 시기와 범위가 제각각이다. 최근엔 상대에게 어디까지 조언할 수 있느냐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어떻게 백만 가지 생각이 같을까. 다를 수밖에 없지. 그래서 나에겐 지치지 않고 다름을 이야기해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회장님을 포함한 많은 분들이 시야가 좁은 나를 아직까지 견뎌주고 있으며, 속도는 다르지만 많은 이야기를 오픈한다. 덕분에 사람은 저마다 다른 모양새로 살아간다는걸 긴 시간에 걸쳐 배울 수 있었다. 아직도 많은걸 모른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나를 둘러싼 각양각색의 관계가 어디까지 깊어질지, 어느 지점에서 끊어질지, 언제까지 현재진행형일지 확신할 순 없다. 다만 작은 바람 하나만 품어본다. 상대가 어렵사리 내어주는 일상과 이야기들로 앞으로의 10년도 꽉 채우고 싶다는 것. 명백히, 평생 타인일 우리가 서로의 상처에 가슴아파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이 흉터 이야기를 보고 어디에 흉터가 있었냐며 쳐다볼까 사실 두렵지만 그럼에도 구구절절 남긴건, 짜증이 아니라 생각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웠으니 실천하고 싶어서다. 흉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도 조금씩 덜어낼 수 있다면 좋겠고. 긴 인생 살면서 이보다 더한 흉터도 하나 둘 생겨날텐데 벌써 이럴 필요는 없지 않나. 상처에도, 그 상처가 남긴 흉터에도 의연해지다 보면, 지금보다는 넓은 사람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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