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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Mar 02. 2023

그리고 또 다시 봄

준비없이 안녕을 말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



조화보다 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만개한 아름다운 순간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일거야. 사람도 똑같은 거 아닐까. 정말 불멸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일까. 늙지 않고 아프지 않고 세상의 끝의 끝까지 살아가는 것이 정말 목적일까. 불멸보다는 늙지 않는 상태, 아프지 않은 상태, 아름다운 상태 그 순간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화를 오래 유지하고 보고 싶으면 락스를 물에 섞으면 된대. 근데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



꽃이 피기까지의 과정에는 씨앗이 흙에 묻히고 수분을 머금고 여러 곤충과 식물같은 자연물의 잔해 속 영양분을 흡수해야해. 인간이나 자연의 돌봄과 관용 속에서야 꽃은 기어코 피어나. 원래 사는 게 다 그런거 아니겠니. 사랑에서 비롯되는 돌봄과 수많은 관용과 동정이 필요해.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다정한 눈빛이나 태도로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고 싶어. 



사람들은 더는 손에 흙을 묻히는 것을 원하지 않아. 깨끗하고 쾌적한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논해. 있잖아. 바다 가까이에서 누워본 적이 있니. 사는 게 너무 허무해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함께 살아가는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다 너무 지치고 괴롭기만 해서 나는 그 축축한 모래 위에 누워봤어. 시작이 어디인지도 모를 물의 울림을 들었어. 그제서야 무언가 느낄 수 있었어. 옷이 흙과 잔해에 의해서 더러워진다거나 물에 젖는다거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


 

자연은 결코 다정하지만은 않지만 그 날것만의 속성이 있더라. 언젠간 내가 사라지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그 모든 흔적이 말소될 때에도 바다가, 그 자명한 속성이 있었으면 좋겠어. 나만 알고 혼자만의 감정으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소중하고 아까운 감정이야.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건 축복일까. 본인에겐 본질적인 자유일지라도 그를 사랑했던 사람에겐 더없는 슬픔이잖아. 너무 아프고 힘들 때면 어쩔 수 없이 끝을 생각해보곤해. 나의 끝을 상상하면 살아있는 순간이 더 촘촘해지거든. 일단 뭐든 준비가 된 편이 더 낫잖아. 나는 누구든 갑자기 죽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그렇기 때문에 살아 숨쉬는 동안 최대한 많은 걸 준비하고 싶어.



의미없는 존재라는 건 없어. 생명이 고귀하다던지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야. 내가 의미있는 존재인 이유는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고 그건 아마 내가 나이기 때문이겠지. 그럼 그제서야 나는 소중해지는거야. 태어남 자체로 그 사람의 의미를 결정지을 수는 없어. 그건 부모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니까. 태어난 뒤에 살아가면서 비로소 스스로의 의미를 정립해가고 나와 주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둘러싼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끝을 기다리지.



이제는 피는 꽃잎보다 지는 꽃잎에 더 마음이 가. 내게 다음의 봄이 있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지금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이나 이제는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있는 지도 모를 영원한 평화를 바라면서. 봄은 기다리기까지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지. 나의 만용은 남들보단 조금 더 분별있는 편이야. 도무지 잊을 수가 없는 기억이랄지 그에 따르는 감정이랄지 그런 것들이 요즘은 조금 더 살갗과 영혼에 와닿는 것 같아. 



당연한 건 없어. 난 익숙함을 사랑하고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그 누구든 언제든 내 곁을 자의로 타의로 떠날 수 있어. 그러니까 우주 단위의 시간에서는 너무 찰나의 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거야.



삶의 끝에서 누군가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사랑이래. 괴테가 그랬어. 내 기준에서 신도 사람도 다 제일 지쳐하던 사람이 그런 말을 했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붙잡아 둘거니까 포기하지마. 아직 함께 보고싶은 꽃이 많아.



잘 매듭지어진 끝을 맺자. 



준비없이 안녕을 말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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