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나요

어떻게 지내든 아프지는 말아요

글을 쓰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온갖 감정을 해석하고 주석을 달아가며 글로 써내렸습니다. 처음에는 제 안에 있던 상념들을 비워내는 후련함에 그저 좋기만 했었죠. 단기적으로는 좋았지만, 장기적으로 그런 날 것의 글이 제게 더 이상 안식처가 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제 글의 영감이라 해야할까요, 이유이자 원천은 불안입니다. 혼자 품고 있다가 곪아 터지는 것보다는 바깥으로 내놓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많이 나아지기도 했구요. 

솔직함이 저의 장점이라 생각했습니다. 가공되지 않은 솔직함은 매력적인 글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본질적으로 사람들은 날 것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끌리는 법이니까요.

그런 저의 솔직함을 믿고 이렇다 할 기교없이 글을 써내렸습니다. 퇴고를 한다거나 수정하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소중한 친구들의 피드백은 제게 어떤 위로였습니다. 감사한 일이었어요.

제가 겪은 일들과 그로 인해 느끼는 감정들이 글로 써내릴수록 분명해졌습니다. 일단 써내리면 그건 제 안에서 진실이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혼탁해졌습니다. 돌아보면 스스로가 진심이라 믿고 싶은 것들을 써내렸던 것이니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냥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점이 못내 부끄럽습니다. 솔직히 더는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기가 힘이 듭니다. 저에 관한 것이면 더욱이.

또한 글을 쓰는 과정이 마냥 후련하진 않았습니다. 불안에서 기인한 것들에 대해 써내리며 저는 저를 마주봤습니다. 그 과정이 꽤 고통스럽습니다. 보는 이를 상정하고 쓰는 글이니 저의 불안을 설명하고,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그 모든 말들을 스스로 들었습니다. 점차 구체화되는 불안은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물론 그런 글을 썼다는 사실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당시 제게 글쓰기는 생존하기 위한 발악이기도 했으니까요. 기록이라는 것은 미래를 가정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일입니다. 기록은 일종의 생존 기제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누구보다 스스로의 미래가 존재하기를 원했습니다. 제 글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싶어서 정말 많이 노력했던 흔적입니다.

요즘은 이전만큼 불안하지 않습니다. 자만같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매년 스스로 성장한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믿었던 시간만큼 보상받고 있는 기분이에요.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지만 여전히 저는 저를 가장 믿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글을 자주 쓰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정말 명징하게 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저는 지금 제주도에 있습니다. 온갖 미련을 비워내려고 왔어요. 오래 근무했던 곳들을 벗어났습니다. 1월 4일에 이직을 약속한 곳으로 첫 출근을 합니다. 생각보다 쉬는 기간이 길지 않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본 적이 없어서 아직 조금 낯설어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짐승처럼 눈 뜨면 일어나고, 눈 감기면 자고... 책 읽고 영화보고... (좋긴한데 좀 심심해요)

생각해보면 저의 인생은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며 온갖 모순이나 불안과 싸워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올해가 끝나면 저는 스물 여섯이 됩니다. 저는 내년에도 열심히 일을 할 거고, 운동을 할 거고, 사랑을 할 거고, 주위를 소중하게 여길 생각입니다. 그리곤 그 과정들을 살뜰하게 기록할 거에요.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할 거에요. 매번 그러는 것처럼 물 흐르듯 살다보면 어디로든 가있을 거라고 믿어요. 

긴장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2023.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