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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한범 Jul 08. 2019

충돌, 견인되는 배

그린피스 항해사 썰#10

 "Arctic Sunrise, 여기는 노르웨이 해양경찰입니다. 지금 당장 귀선의 보트와 카약 그리고 사람들을 귀선 시키기 바랍니다."

 노르웨이의 해양경찰이 무전이 왔고, 우리 선장님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항행의 자유'에 따라 공해상에서 '비폭력적인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국가의 해양 경찰이라도 중단시킬 권한은 없습니다."

 그 후, 몇 가지 설전이 오갔다.


 그리고 해양경찰의 마지막 무전이 왔다.

 "이제 마지막 경고입니다. 이것은 부탁이 아닌 '명령'입니다. 지금 당장 철수하지 않으면 직접적인 행동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장님은 대답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시위를 계속하겠습니다."

해양경찰과 연락 중인 선장님

 마지막 연락 뒤, 선장님은 차분하게 현장에 있는 동료들에게 무전으로 지시를 하였다.

 "Attention all my Greenpeace crew, 해양 경찰이 이제 곧 들이닥칠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명심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비폭력' '평화적'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침착하게 잘 대응하길 바랍니다. 나는 당신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해양경찰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망원경을 통해 보며 선장님에게 지속적으로 보고했다.

 "총 4대의 스피드보트, 우리 현장팀에게 접근 중"

 "카누팀 1명 억류됨"

 "모든 활동가들 억류됨"

 "우리 보트 억류됨"

 "지구본 억류됨"


 "상황 종료... 모두 억류된 상태로 본선으로 귀선 중"


 수시간에 걸쳐 진행된 항의는 한 시간이 안되어 상황이 종료되었고, 모든 선원들과 장비를 끌고 우리 배 쪽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우리는 우리 선원들과 경찰의 안전을 위해 문을 열고, 그들의 승선을 도와주었다.

 우리의 '존버'는 끝이 났고, 이제 상황이 역전되어 해양경찰이 우리 배에 승선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양경찰이 승선하자마자 들이닥친 곳은 '선교 (Bridge)'였다.

 선장님은 의연하게 맞이하였다.

 "아크틱 선라이즈에 온 걸 환영합니다. 저는 선장입니다."


 선장의 의연한 모습과, 기자들의 사진과 비디오를 찍고 있는 모습에 해양경찰은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이내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미란다 원칙을 읊기 시작하였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지금부터 아크틱 선라이즈와 그 선장, 그리고 모든 선원들은 이제 해양경찰이 인솔합니다."

해양경찰 승선 후 점령당한 선교(Bridge)

 몇 가지 법적인 용어가 오간 뒤 법률팀과 여러 사람의 논의 끝에 한 문서에 사인을 하였고, 우리 배는 스스로 운항할 수 없는 배가 되었다. 즉 기관을 정지하였다. 기관을 정지한 배는 그저 '떠다니는 철로 된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상태가 된 우리 배 쪽으로 해양경찰 모선이 접근하였다.

노르웨이 해양경찰배 KYSTVAKT W320의 등장

 그리고 해양경찰선에서 우리 배를 끌고 가기 위한 줄을 발사하였고, 이미 승선해 있던 경찰들이 그 줄을 받아 우리 배에 묶었다.

배를 견인하기 위해 towing line을 던진 해양경찰, 압수당한 지구본도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끌려가기 시작하였다.

결국 towing에 성공하여 우리 배를 끌고 가는 모습

.

.

.

 해양경찰이 우리 배를 끌고 가기 시작하고, 우리들은 모여서 회의를 가졌다.

 대부분이 법률팀의 조언이었다.

 "지금부터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들은 공식적으로 그들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최대한 말을 아껴주세요.

 '네' '아니요' '모른다' 같은 간단한 대답도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침묵'입니다.

 법적인 문제는 법률팀에게 맡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하는 유도질문 등에 대해 잘 판단하고 이야기하십시오. 친절하게는 대하되, 가까이는 지내지 마십시오.

 특히, 항해사와 항해 당직자들은 그들과 지낼 시간이 많은데, 더욱더 주의해 주십시오."


 그런 조언들을 받고 항해를 하지 않는 항해당직을 해양경찰들과 같이 섰다. 때로는 유도질문도 하고, 때로는 말도 했지만, 여기서 나의 짧은 영어실력은 오히려 빛이 났다. 어려운 말은 이해를 잘 못했을뿐더러, 감기 몸살 기운도 올라왔기 때문에, 대부분 '멍'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나와의 대화가 답답하고 힘들었던지, 해양경찰들은 나에게 많은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해양경찰배에 의해 노르웨이의 육지로 돌아왔고, 나는 감기몸살로 인해 방에 누워서 24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에 선장님과 일등항해사, 그리고 기타 주요 사람들이 법률팀과 함께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은 후 배로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우리의 메시지를 우리가 계획한 대로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배와 선원들은 풀려났으며, 나머지 사항들은 법률팀에서 알아서 할 것입니다.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임무는 일단락되었으며, 추후의 일들은 그린피스 노르웨이 지부와 Nature and youth와 같은 환경단체들에게 맡겼고, 다시 우리의 베이스캠프인 Norway, Tromsø로 돌아왔다.

다시 Tromsø로 돌아와 평화를 찾은 Arctic Sunrise, 사진 중앙에 작은 배가 Arctic Sunrise이다.


*본 글의 내용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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