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에 들어가기 전 8개월의 백수생활에도, 나는 꿋꿋이 잘 놀았다. 물론 이것저것 준비를 하기는 했지만, 노는 것 하나만큼은 꾸준하게 해 왔다.
주변에서, 특히 부모님은 그렇게 오랫동안 놀면 안 지겹냐, 미래가 걱정이 안 되냐고 했는데도, 나는 평생이라도 이렇게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순수 배짱이인 내가, 드디어 휴가를 받았다.
귀국길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고, 오랫동안 제대로 된 한식을 먹지 못 한 이유였는지, 대한항공의 미역국을 먹으면서 '인생 최고의 미역국'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식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이 미역국을 먹으면서, 나도 한식이 필요한, 천상 한국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랫만에 먹어 더 맛있게 느껴졌던 기내한식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내가 처음으로 한 것은 목욕탕에 가서 때를 미는 것이었다.
뜨뜻한 탕 안이 그리웠고, 특히나 비행기에서의 오랜 퇴근길의 피로를 풀기에는 목욕탕만 한 게 없다.
그렇게 나의 휴가는 목욕탕으로 시작했고, 집에서 뒹굴거리는 백수 라이프를 시작하였다.
필자를 닮아, 백수가 체질인 고양이 '키로'이다.
일을 하고 정당한 휴가를 받아 집에서 뒹굴거리니 눈치 볼 것도 없는, 완벽한 무적 백수의 삶이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게임을 하고, 고양이 집사 노릇도 하고, 예비군도 가고... 가끔 여행도 하고...
시계에서 해방된 나는 오히려 더 규칙적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그렇게 규칙적으로 놀며 젊음을 탕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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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다시 나를 불렀다.
다시 연락이 왔다.
이제 배 타러 갈 시간이라고.
휴가는 언제나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렇게 지나갈 걸 알기 때문에 나는 생산적인 일을 하지도, 하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 탕진에 가까운 나의 아주 만족스러운 휴가는 끝이 났고, 이제 다시 승선을 할 차례가 왔다.
내가 새롭게 승선할 Esperanza호
이번엔 처음 탔던 Arctic Sunrise호가 아닌, 그린피스에서 가장 큰 배인 'Esperanza'에 승선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목적지는 아프리카 옆 작은 스페인 섬 '카나리제도'였다.
그렇게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짐을 꾸렸고, 두 번째 승선이라서 그런지, 지난번 보단 가벼운 마음으로 출국을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