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항해사 썰#5
“이제 출항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대대적인 선박 수리에 힘써준 여러분들, 감사드립니다.”
러시아 근육맨 선장님의 출항시간 공표와 함께, 한적한 네덜란드 시골 항구마을의 힘세고 강한 마지막 일주일을 시작하였다.
1975년 우리 배가 건조된 이후 올해, 선박의 수명연장을 위해 9개월간의 대대적인 수리를 거치고 새롭게 태어난 ‘Arctic sunrise호’가, 일주일 뒤면 새단장을 마치고 다시 바다로 나가 항해를 시작한다. 방학숙제를 미루던 초등학생들처럼 우리들도 막바지가 되어서야 미루던 일이 보이기 시작했고, 모두들 남은 작업들을 끝내느라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지막 도색작업, 기관실 및 스피드보트 최종 점검, 식자재 구입 및 저장 등,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다. 나 또한 이등항해사로서 드디어 항해를 하게 되어, 진짜 나의 일인 항해 준비를 시작하였다.
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하던 일과 큰 차이는 없는 일이지만, 일을 하는 과정이나 세세한 부분들이 다른 점이 많아, 때론 막히거나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였다.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모든 정보는 회사가 아닌 내가 직접 찾아야 하고, 그 책임 또한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항구에 언제까지 갈 수 있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가지 못한다면, 육지에서 몇 달 동안 준비했던 프로젝트는 완전 틀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꽤나 강한 중압감을 가지고, 나는 진지하게 나의 업무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아직은 약간 무섭게 느껴지는 근육맨 선장님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며, 나의 일을 해 나갔다. 그렇게 나의 업무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인 ‘항해 계획’을 끝내었고, 숙제 검사 맡는 어린이의 기분으로 선장님에게 ‘그린피스에서의 첫 항로’를 검사받았다.
“여기 이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이 길보단 이길로 가자” 열심히 그려나간 나의 항해 계획은, 선장님의 말 몇 마디에 꽤 많은 부분을 수정해야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제가 필요한 일은 내가 잘하는 것보다 그 사람 마음에 드는 게 더 중요하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한국의 여러 선장님을 겪어 오면서, 그 선장님이 원하는 스타일을 빨리빨리 캐치 해 내는 눈치를 익혔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의 수정을 거친 후, 내 책임하에 있는 일을 꽤 여유를 가지고 마칠 수 있게 되었고, 정리와 청소를 끝낸 후 출항 준비가 거의 완성되었다.
사실 출항 준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앞서 나를 포함한 모든 선원이 준비하는 ‘선박’의 출항 준비와 ‘개인적인’ 출항 준비로 나뉜다.
배라는 공간은 항해를 시작하게 되면, 사실상 주변에는 바닷물 말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삶의 질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출항 준비가 필수적이다.
티셔츠와 양말을 조금 더 구매하고, 샴푸 및 비누 그리고 치약을 좀 더 확보하였다. 사실 치약이 떨어진다면 꽤나 치명적인데, 다른 부분들은 선박에 비치된 비누 하나로 해결할 수 있지만 양치만큼은 치약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
또, 개인적으로 먹을 라면도 확보해 두고, 근처에 있는 호텔에 가서 맥주 한잔을 시킨 다음 이 동네 가장 빠른 와이파이를 이용해 앞으로 몇 달간 볼 영화, 드라마, 예능 등을 다운로드하였다. 이 ‘다운로드’를 향한 여정에는 언제나 ‘알레’와 함께 했다.
마지막으로, 꽤 멀리 있는 한국식당에서 최후의 만찬을 즐긴 뒤 출항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 배는 실제로 모든 것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하루정도 스케줄을 잡고 시운전을 하였다. 그리고 몇 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점이 추가로 발견되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서 추후에 해결하기로 하였고, 다시 항구로 돌아와 최종 점검을 한 후 네덜란드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암스테르담 본사 사람들과 그린피스 관계자 및 수리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수리가 끝난 기념으로 작은 파티를 하였다.
그리고, 이번 캠페인 프로젝트에 필요한 캠페이너, 활동가(Activist), 사진기자, 비디오그래퍼 등 여러 사람들이 승선하였고, 캠페인에 필요한 각종 장비들도 배에 실었다.
“뚜우~”
뱃고동 소리와 함께, 모든 준비가 마친 우리는 선장의 명령에 따라 출항 작업을 하기 위하여 각자의 위치에서 출항 작업을 준비하였다.
출항 작업은 간단히 말해서 선박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계류삭(Mooring line)을 육지로부터 분리시키는 작업이다. 육지와 선박에 연결되어 있는 마지막 줄까지 떨어졌을 때, 비로소 출항 작업이 완료되었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출항을 시작하였고, 처음으로 같이 하는 작업이라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하고 ‘합’이 그렇게 잘 맞지는 않았지만, 어찌어찌 출항을 시키는데 까지 성공하였다. 그렇게 출항 작업을 마치고 De-briefing(사후 검토 회의)를 하기 위해 선교로 모였고, 선장님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처음 치고는 꽤 괜찮은 출항이었지만, 정신없게 왜 그렇게 모든 상황을 보고하는지를 모르겠다. BBC 아나운서처럼 무전기에서 방송하지 말고, 그냥 결과만 이야기해주면 해 줘.”
한국식 군대 문화인 ‘복명복창’에 익숙해진 내가, 무전기에서 너무 말을 많이 한다는 소리였다.
앞으로의 그리 좋지 않을 날씨, 이번 항해에 주의해야 할 점, 전체적인 스케줄 등을 이야기하고 나서, 항해사들은 '항해당직'모드로 돌아갔고 선장님도 같이 휴식을 취하러 내려왔다.
그렇게 우리 배는 네덜란드를 떠나 북해로 나왔고, 북극해 캠페인을 하기 위하여 뱃머리를 노르웨이로 돌렸다.
*본 글의 내용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