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시대에 대한민국의 택시 기사로 살아간다는 것
열두시가 다 되어갈 무렵, 야근을 마치고 퇴근을 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고된 하루 끝에 입속이 다 말라붙어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온몸이 녹아내려 좌석에 스며들 것만 같다. 타자마자 나는 에어팟을 낀다. '당신과 대화하기 싫어요.' 암묵적인 제스처다. 하지만 오늘 택시는 꽝을 뽑았나 보다. 앉자마자 잽싸게 에어팟을 꼈건만, 기사님은 아랑곳 않고 말을 걸어오신다.
요즘 카카오택시가 나온 후로 손님이 많이 줄었다니까요.
기사님의 말씀은 이랬다. 카카오T 앱에서 카카오에서 제휴해 운영하는 택시업체에만 콜을 몰아준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음모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요?" 약간의 반감과 피로함에서 건성으로 대답을 하였지만, 기사님은 말씀을 이어갔다.
"카카오택시가 콜 다 잡아가서 택시 기사 관두는 사람이 많아요. 저희 회사도 20% 정도는 관뒀어요. 택시 기사들 끼리 만나면 다들 그래요. 카카오택시가 콜 다 받아 간다고. 기사들 사이에선 다 아는 얘기에요."
나는 여전히 미심쩍은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 정상 기업이 불법적으로 콜을 몰아주거나 하진 않을 것 같았다. 지켜보는 사람이 몇 명이고 담당자가 한둘이 아닌데,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싶었다.
"앱에서 택시 잡을 때, 블루를 누르지 않았는데도 블루가 잡히는 경우 있잖아요. 혹은 일반 택시 배차를 눌렀는데, 근처에 바로 잡을 수 있는 블루가 있다고 연결해 주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거 사실 말이 안 돼요. 서울 경기 택시가 10만 대가 넘는데, 카카오가 1만 대가 안되는데 어떻게 손님 주변에 카카오택시가 항상 딱딱 있겠어요."
듣고 보니 맞는 얘기긴 했다. 기사님 말씀으론 일반 택시들이 두세 건 콜을 받을 때 카카오택시 기사는 열 건 가까이 콜을 받는다고 했다. 대신 카카오 기사들은 콜을 받을 때마다 카카오 측에 수수료를 낸다고 했다. 콜 한 건당 기사가 실제 가져가는 돈은 카카오택시 기사들이 더 적지만, 많은 콜을 받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돈은 더 번다고 했다.
사실 카카오T 앱에 들어가 보면, 스마트 배차나 블루를 부르고 싶게 여러 가지 장치가 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UX 적으로 누르기 쉬운 위치에 버튼을 배치한다거나, 일반 배차를 누르더라도 근처에 블루가 있다며 블루를 잡으라고 앨럿(Alert) 메시지를 띄워주는 식이다. 만약 나처럼 회사에서 택시비를 내줘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엔, 주저 없이 블루나 스마트 배차를 이용하게 된다. 택시를 잡을 때, 블루가 너무 자주 잡혀서 나 역시 의아했던 적도 있긴 했다. 당시에는 카카오택시의 알고리즘이 위대한 줄로만 생각했었다.
"기사들이 많이들 그만두고 카카오택시로 갔어요. 거기가 일은 많아도 돈은 더 버니까."
문득 궁금해졌다. 왜 이 기사님은 카카오택시로 가지 않는 것일까. 결국은 자신도 카카오택시로 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냥 이유 없이 거부감과 짜증을 드러내는 것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기사님은 때맞춰 이유를 말씀하셨다.
제 평생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운전대 하나만큼은 제 마음대로 틀어야 할 것 아닙니까?
"제가 왜 카카오택시로 안 가는 줄 알아요? 제가 뭐 인생이 성공해서 택시 기사 했겠습니까? 하던 거 잘 안되고 망해서 하는 거예요. 인생이 잘 풀렸으면 안 했죠. 근데, 인생이 제 맘처럼 안 되고 안 풀린 건 그렇다 쳐도, 운전대 하나만큼은 제 맘대로 틀어야 할 것 아닙니까? 운전대를 왼쪽으로 틀지 오른쪽으로 틀지 정도는 제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손님도 회사를 다니셔서 알 거 아니에요. 만약에 부장님이 바로 옆자리 앉아서 손님이 보고서 쓰는데 한 단어 한 단어 한 글자 한 글자 다 보고 있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면 미칠 거 아니에요."
그때까지 기사님 말씀을 건성으로 듣던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좋은 부모 만나 나름 혜택받은 환경에서 타고난 권리들을 당연시하며 살아온 나였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기사님의 이야기 하나 제대로 못 들어주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손님이 안 오면 정말 많은 고민을 해요. '아, 내가 아까 번 교차로에서 우회전이 아니라 직진을 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자기반성도 하고, 나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요. 근데 요즘은 뭐예요? 네비가 가르쳐주는 대로만 다녀야 하잖아요. 거기까지도 뭐 알겠어요. 근데, 카카오T 앱이 알려주는 대로만 다녀야 하는데 콜도 안 준다?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어느덧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하고, 기사님께 정중히 감사 인사를 드린 뒤 나는 내렸다. 무력한 나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적어도 감사와 응원을 담아 인사만큼은 힘차게 드리고 싶었다. 여전히 피곤하고 머리는 이전보다 더 복잡했다. 막 새벽을 맞이하는 테헤란로는 고단한 하루에 지친 사람들과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 목적지를 향해 부산히 이동하는 자동차들로 어수선했다.
* 그로부터 몇 달 후, 경기도는 카카오 모빌리티가 카카오택시에 배차 몰아주기를 하였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배차 알고리즘을 조작하여 자사에 이익이 되도록 제휴사에만 배차를 유리하게 했다는 정황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한다. 이 안건은 현재 공정위로 공이 넘어간 상태다. 진위 여부는 공정위 조사를 지켜보아야겠지만,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가 된 이상 배차 공정성 문제는 개선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IT와 기술 발전은 현재진행형이다. 2021년 테슬라는 FSD(Full Self-Driving) 옵션을 출시한다. 완벽한 자율 주행(레벨 5)을 향해 한 발짝씩 더 다가가는 셈이다. 기술은 차근차근 택시 기사라는 종의 멸종을 정조준 하고 있다. 발전하는 기술 속에서, 운전대만큼은 원하는 방향으로 꺾을 수 있어야 한다던 기사님의 삶은 여전히 고단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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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on Musk says Tesla's Full Self-Driving tech will have Level 5 autonomy by the end of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