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사람을 먹어치웠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먼저 대체되는 AI시대의 역설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단순노동에서 해방할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제가 배웠던 미래는 인류가 예술이나 여가, 유흥에 몰두하고 기계와 로봇이 생산을 책임지는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IBM의 딥블루는 세계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를 이겼습니다. 알파고는 이세돌을 이겼죠. 충격을 받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게임은 인공지능이 잘할 수 있어. 수 싸움이고 계산이니까.’ 하지만, ChatGPT가 나오고 책 한 권을 하룻밤 만에 뚝딱 쓸 수 있게 되고, 생성형 AI가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자, 더 이상은 자기합리화만 할 수는 없게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인간이 인간다운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들부터 대체하고 있더군요. 사유하는 능력. 예술을 하는 능력 같은 것 말입니다. 오히려 대체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노동입니다. 빨래 개는 일, 화장실 청소, 요리 같은 것은 여전히 대체되지 않고 있습니다.
택배 배달도 여전히 사람이 합니다. 아마존이 드론 택배를 한다고 했고, 배달의민족이 배달로봇을 만드는 것 같지만, 한국처럼 아파트가 많고 건물 내부가 복잡한 나라에서는 로봇 배달은 요원해 보입니다.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것도 결국 사람의 몫이죠. 요즘은 서빙 로봇이라고 제법 보이는 것 같은데요. 서빙 로봇은 사실 음식만 나를 뿐, 식탁을 정리하진 못합니다. 택시 운전이나 버스 운전은 자율주행이 발전하면 대체될 것 같기도 한데, 아직까진 쉽지 않아보입니다.
저는 개발자다 보니 ChatGPT의 강력함을 매일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어떤 풀리지 않는 문제나 버그를 마주하면 하루 종일이 걸리도록 고민하고 찾아보고 연구하기 일쑤였는데요. 요즘은 대부분의 문제가 30분 안에 풀립니다. ChatGPT를 이래저래 괴롭히듯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답을 찾아주거든요. 심지어는 복잡한 알고리즘도 질문하면 꽤나 훌륭한 답을 줍니다. 코드는 또 얼마나 잘 짜게요. 멀지 않은 미래에 제 직업은 AI로 대체될 것 같다고 매일, 매분, 매초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를 짓는 스킬은 언젠가 AI에게 대체될 것입니다. 지금이야 프롬프팅이라고 해서 “AI에게 적절히 일을 시키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AI 영역에서는 이미 프롬프팅 조차 AI로 대체하려는 노력이 많다고 합니다. AI가 AI를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게임을 만들고, 음악을 만들고, 의뢰인을 변호하고, 환자의 병명을 진단할 것입니다.
한편 쓸고 닦는 일처럼 단순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앞으로도 적어도 한동안은 대체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소프트웨어의 발달 속도만큼 하드웨어의 발달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로봇기술이 발달하려면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모터나 센서, 제어기술과 같이 다양한 하드웨어 기술들이 발달해야 하는데, 이런 하드웨어를 신뢰성 있고 저렴하면서도 유능하게 만드는 것은 소프트웨어를 잘 짜는 것보다 훨씬 어렵나 봅니다. 결국 AI는 우리로부터 사유하는 힘과 유희하는 능력을 대체하려 하는데,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지는 일들은 빨래 개는 것이나 변기를 청소하는 일이니, 참 모순 같습니다. 결국 인간은 그런 단순한 일들만 하게되지는 않는 것인지 걱정도 됩니다.
알파고에 이어 GPT를 보고 우리가 느꼈던 감정은 아마 당혹감과 상실감이 아닐까 합니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 사실은 가장 기술로 대체하기 쉽다는 모라벡의 역설처럼,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참고) 모라벡의 역설
모라벡의 역설은 인공 지능과 로봇 공학에서, 전통적인 가정과는 반대로, 추론은 매우 적은 계산을 필요로 하지만, 감각 운동 및 인식 기술은 엄청난 계산 자원을 필요로 한다는 모순을 말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Moravec's_paradox
참고) 본 글에 사용된 모든 그림들은 AI가 그린 그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