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아니라도 IT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데 문제 없다
어린 시절부터 창업을 꿈꿨고, 큰 자본 없이 사업을 하려면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경영학도이지만 개발을 배웠고, 프론트엔드 엔지니어와 백엔드 엔지니어로 일했다. 중간에 2년 간 창업도 경험했다. 그런 내게 "IT 창업을 하려먼 개발을 할 줄 알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창업을 하려는 사람이 흔히 빠지는 착각은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착각이다. 사람은 모든 것을 잘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잘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첫 번째 사업을 실패하며 나는 배웠다.
꽤 오랫동안 나는 개발을 모르면 야놀자나 배달의민족 같은 서비스를 창업할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개발자가 아니어도, 개발을 할줄 몰라도 이런 기업을 창업할 수 있다고 믿으며 기업이 성공하는 핵심 이유가 개발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업이라는 것은 고객이 가진 문제를 대신 풀어주고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은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 판매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제품을 "생산"하는 방법은 아웃소싱할 수 있고, 전문가를 섭외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아웃소싱할 수 없는 것은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과 '문제를 푸는 능력' 그 자체다. 나는 유능한 디자이너와 훌륭한 공장과 제품을 만들었지만, 제품은 잘 팔리지 않았다. 고객들이 '사고 싶다'는 느낌이 들 만큼 필요한 상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업이 고객의 문제를 풀며 돈을 버는 것은 아닐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업은 문제를 해결하며 돈을 번다. 문제를 푼다는 인식, 그것은 구글부터 SpaceX, 심지어 부대찌개집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업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부대찌개집을 새로 창업한다고 하자. 고객이 우리 부대찌개집에 방문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객이 기존 음식점, 기존 부대찌개집에 느끼는 불만을 찾고 해결책을 내면 된다.
예를 들어, 내가 늘 느꼈던 부대찌개집에 대한 불만(문제)은 라면사리였다.
나는 라면을 먹기 위해 부대찌개를 먹는다. 부대찌개는 덜 익은 라면과 먹어야 최고로 맛있다. 근데 늘 라면사리는 별도로 추가금을 내고 주문해야 한다. 추가금을 내고 주문한다는게 부담도 되고, 같이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 나눠낼 때 불편해할까봐 주문을 꺼리게 된다.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요즘 많은 부대찌개 체인점은 라면사리를 무료로 준다. 당연히 나는 라면사리가 무료인 집에 간다.
창업가에게는 문제를 발견하고 거기서 기회를 포착하는 게 가장 핵심 역량이라 생각한다. 이 능력이야말로 창업의 본질이며 결코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일화인데, 배달의민족에는 처음에 결제 기능이나 주문 기능이 없었다. 배달의민족은 모바일 전단지 앱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전화로 주문해야 했고, 결제는 당연히 배달원한테 직접 했다. 물론 모바일 앱으로 만든 서비스였지만, 큰 개발 실력이 필요한 서비스는 아니었다.
토스는 처음 송금 서비스로 시작했다. 창업가는 치과의사 출신이다. 단 하나의 기능, 돈을 보내는 기능만 존재했다. 송금도 처음에는 사람이 직접 했다. 앱 안에서 송금 기록이 생기면, 사람이 수동으로 출금과 입금을 했다. 자동화된 송금, 뱅킹, 증권과 같은 복잡한 기능들은 한참 뒤에 도입되었다.
에어비앤비의 창업가들은 디자이너 출신들이었다. 에어비앤비는 초기에 공동창업자들이 자신의 숙소를 커뮤니티에 올려 직접 빌려주며 사업을 검증했다. 이후엔 자신들만의 사이트를 구축한 뒤, 창업자들이 직접 숙소들을 찾아다니며 방 사진을 찍어주었다.
일론 머스크는 자동차 업계에서 일해본 적도, 항공우주업계 경력을 쌓은 적도 없지만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만들었고 유니콘으로 성장시켰다.
로켓랩은피터 벡이라는 창업가가 만든 우주 발사체(로켓) 기업이다. 그는 고졸이며, 독학으로 로켓을 공부했다. 로켓랩은 스페이스X를 제치고 최단 기간 내 50회 발사를 달성했고, 150개 이상의 위성을 우주로 보냈으며 나스닥에도 상장했다.
물론 구글은 스탠포드에서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을 연구한 두 연구자가 창업했다. 알고리즘을 몰랐다면, 구글을 창업하긴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세상에는 개발을 몰라도, 기술을 몰라도 할 수 있는 사업이 생각보다 많다.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사업의 핵심은 사업 그 자체이며, 결국 고객을 만족시키고 시장을 확장하고 돈을 버는 것이라는 점이다.
개발을 할 줄 모르는 창업가가 개발자나 디자이너를 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개발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가 하려는 사업이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제 정의, 풀고 싶고 도전적인 문제, 문제를 풀면 기대되는 큰 기회, 누가 봐도 타당한 해결책. 이런 것들이 결여되면 아이디어는 설득력을 잃는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문제 정의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초기 가설 입증이다. 이 사업을 왜 하려는 것이고, 이게 왜 될 것 같은지 설득력 있게 정리하고 타인에게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제를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해 보는 과정을 수행하면서 확신을 얻는 지점까지는 스스로가 실험을 충분히 해봐야 한다.
먼저 문제를 잘 정의한 뒤, 해결책을 초기 가설로 세운다. 그리고 가장 적은 노력, 적은 비용으로 그 가설을 검증한다. 이런 개념이 생소하다면 MVP, 린 스타트업, PMF, 프리토타이핑 같은 단어를 찾아보자.
가설을 개발없이 검증하는 방법은 많다. '프리토타이핑' 처럼 제품이 없어도 실험하는 방법은 영리하게 고민한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설득력이 확보되면 이제 필요한 사람을 찾아 나서면 된다. 설득력만 충분하다면 개발자나 디자이너는 충분히 구할 수 있다.
여기까지 읽었지만 개발자나 디자이너는 어떻게 구할지 막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나는 안다. 개발자 디자이너를 찾는 방법은 너무 다양해서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글에서는 간단히 몇 가지만 적어본다.
IT 연합 동아리 활동해보기: 디프만(Depromeet), 넥스터즈(Nexters), 솝트(SOPT) 와 같은 동아리에 지원하고 활동하기 (개발자/디자이너만 뽑는 경우도 많음)
링크드인에서 네트워크 넓히기: 좋은 사람들에게 친구요청하며 자신의 네트워크 넓히기, 이후 가볍게 커피챗 제안해서 함께할 사람 찾기
스타트업 또는 IT기업에서 일해보기: 함께 일하면서 좋은 사람은 따로 친해지기
해커톤 참여: 구름톤 같은 해커톤에 참여해 인맥 넓히기
스타트업 네트워킹 행사 참여
창의적으로 접근할수록 방법은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풀고자 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지이다. 즉 그 문제가 충분히 중요한 문제인지에 대한 '설득력'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면, 사이드 프로젝트나 파트타임으로 참여해 보겠다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개발을 아는 것은 때로는 도움이 된다. 시간이 남는다면 배워봐도 좋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게 못하는 것을 덜 못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특히 초기 사업을 생존시키는 데에는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못하는 것을 개선하는 것보다 몇 배는 중요하다. 개발을 모른다고 망설이지 말자. 그 시간에 사업의 본질에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