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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사회복지사 Mar 14. 2024

육아 휴직, 새로운 모험 시작

육아 휴직을 결정했다. 올해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 휴직한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15년 만에 근무지를 이탈했다. 하지만 몹쓸 책임감 때문에 결정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머뭇거렸다. 휴직하는 기간 동안 대체 인력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나로 인해 불편해지는 것이 신경 쓰였다.


어느덧 육아 휴직 생활을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났다. 지금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편하다. 휴직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지나고 보니 처음에 했던 고민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지금은 되레 출근하는 아내에게 미안하다. 그럼에도 출퇴근과 업무 처리하는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서 홀가분하다.


매일 정신없던 아침 풍경이 달라졌다. 그동안 아침에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신없었고 시간에 쫓겨 출근하기 바빴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재촉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 아이들에게 '빨리 먹어라', '빨리 씻어라', '빨리 준비해라 이러다가 늦겠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말하지만 아이를 등원시켜 주다가 출근 시간을 넘긴 적이 하루 이틀 아니다. 이제는 출근 시간에 매이지 않아도 된다. 등원 버스에 타러 가는 길이 여유롭다.

당분간 나의 메인 무대는 일터가 아닌 가정이다. 휴직한 후로 식사 준비를 도맡았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밥을 안친다.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으면 둘째가 방문을 빼꼼 열고, 식탁에 숟가락을 놓으면 셋째(아내도)가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온다. 놀아달라고 매달리지 않는 것이 아이들도 요리하는 아빠가 익숙해졌나 보다. 저녁이 되면 늦게 퇴근하는 아내를 대신해 저녁밥을 준비한다. 차려 준 음식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아이들을 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요리를 하고 직접 장을 보면서 물가를 채감하고 있고 아이들의 식성을 알게 되었다. 와! 애호박 하나가 3천 원대라니. 세 아이 입맛 맞추기 힘들어 매일 뭘 먹일까 고민한다.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면 본격적인 육아 휴직 생활이 시작된다. 아침 치다꺼리로 어지럽혀진 집을 정리한다. 먼저 식탁을 치우고 그릇을 싱크대로 옮겨 바로 설거지를 끝낸다. 돌돌이 테이프를 굴리며 집안 곳곳을 다닌다. 이틀 건너 하루꼴로 청소기 돌린다. 건조기에 있는 빨래를 꺼내 개거나 다 된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돌린다. 서둘러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장난감을 장난감함에 넣고 책을 책장에 꽂는다.

드디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혼자만의 시간이다. 첫째가 방 후 수업을 끝내고 하교하기 전까지 뭘 해도 괜찮다. 청소를 끝내고 동네 커피숍, 아지트로 간다. 매일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시야가 탁 트인 창가에 자리 잡아 노트북을 껴고 있다. 솔직히 얼마 만에 멍때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제 또 여유로울지 모르기 때문에 1분 1초가 소중하다. 생각해 보니 2009년 첫 직장에 출근한 이래 처음 일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두 번 이직했지만 쉬는 기간이 없었다. 15년 가까이 치열하게 일한 내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쉬고나서부터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일터로 가기 전까지 멋진 나날로 채울 것이다. 6개월 육아 휴직 생활을 응원한다. 나다운 여정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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