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IMNI Sep 12. 2023

매일 한 시간 일찍 출근합니다

구독하는 뉴스레터가 너무 많거든요.



나는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었다.

열두 시를 한참 넘긴 새벽녘에야 잠에 들었고 아침마다 달콤한 잠에 취해있곤 했다. 알람은 5분 간격으로 열몇 개가 맞춰져 있었던 그런 사람. 아침에 샤워하는 습관이 생긴 이유도 어쩌면 잠에서 깨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아침잠이 많았던 내가 지금은 1시간 혹은 1시간 30분 전에 출근한다. 아니, 이게 무슨 미친 소리냐고? 나도 안다. 미친 소리라는 걸. 하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날고기는 사람들의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걸 어쩐담.


친구들도, 가족들도 묻는다. 매일 한 시간 전에 출근해서 대체 뭘 하냐고.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침잠이 없어졌어~" 우스갯소리로 넘기지만, 실은 엄청 바쁘다. 할 일이 너무 많다.



기획과 구성은, 비록 과정이 어설플지라도, 자신 없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트렌드를 수집하고 타깃을 이해하는 건 다르다. 철저히 노력과 시간의 영역이다. 같이 아이템을 찾고 콘텐츠를 짤 에디터 팀이 없다면 내가 두 배, 세 배 노력하면 되는 것 아닐까?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라는 말처럼,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시간을 더 들이기로 했다. 야근을 권장하지 않는 회사 분위기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네이버 메일에 로그인한다. 적으면 5개, 많으면 15개가량의 뉴스레터가 날 반긴다. 차근차근 하나씩 읽는다.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 궁금한 개념이 생기면 바로 검색한다. 잔가지 뻗어나가듯 뉴스레터 하나하나 정독하다 보면 뉴스레터 몇 개가 더 도착한다. 아침 일찍 메일을 보내기 위해 전날 밤까지 몇 번이고 검토하고 퇴고했을 에디터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질 수 없다. 적어도 시간 싸움만큼은.



오늘 메일함을 열고 구독 중인 뉴스레터를 하나씩 세어보았다. 무려 69개나 되더라. 개중에는 이제 발행하지 않거나 잠시 휴식 중인 레터도 있다. 하지만 딱히 정리하진 않는다. 언제 필요하게 될지 모르는 내 보물함이니까.



일찍 출근하는 습관이 생긴 건, 직전 회사에서부터였다. 건강식품을 판매하던 곳이었는데, 난 마케팅기획팀의 팀장이자 대리였다. 뭔 놈의 회사가 대리에게 팀장을 맡기나, 의문이 생기겠지만 하여튼 그랬다. 겨우 대리가 팀장 역할을 하려니 얼마나 어깨가 무거웠는지.


내가 짜는 기획과 구성으로 매달 88p짜리 인쇄물을 만들었다. 인쇄물이라는 건 웹처럼 언제든 고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인디자인 파일이 인쇄소로 전송되는 순간부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무서웠다. 내가 아는 세계가 까발려지는 기분이 든다. 부끄럽지 않으려면 내 세계를 부단히 넓혀야 한다.


그래서 30분 전에 출근해 신문을 읽었다. 건강식품과 타깃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내가 부족함을 메울 방법은 시간을 들이는 것뿐이었다. 그들이 관심 있게 보는 건강 트렌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들을 타깃으로 하는 식품 업계는 어떤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는지를 살피면서 북마크 해둔 매체사에 업데이트된 기사들도 모조리, 정말 모조리 다 읽었다. 정말 바쁜 날에는 기사의 타이틀이라도 눈으로 훑었다. 타깃과 업계에 빠르게 스며들려면 어쩔 수 없었다.


30분 일찍 출근하던 습관은 이직하면서 1시간 일찍 출근하는 습관으로 바뀌었다. 보던 신문이 뉴스레터가 되었고 매체사 기사는 웹진과 매거진 아티클로 변경됐을 뿐, 나는 바뀐 게 없다.


잡지사를 다녔더라면, 제대로 된 에디터 선배를 만났더라면 난 다른 습관을 들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잡지사 경험도, 에디터 선배도 없다. 9년간 회사 생활을 하며 터득한 나만의 방법은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시간을 들이는 것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잡지사에서 일한 적 없지만 에디터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