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다카시, <글쓰기의 힘>을 읽고
쓰기에 대한 의욕이 영 예전 같지 않습니다. 꾸준히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며 100일 챌린지를 했던 게 몇 달 전. 이후에도 간간이 글은 썼지만 열기가 전만큼은 아닙니다. 올 하반기 들어 주변 환경이 바뀐 것도 이유가 있지만, 시간이야 내면 되는 것인데 ‘글쓰기'라는 것이 왠지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조금 밀려난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쓰는 행위가 제 삶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묘하게 삶을 구성하는 그릇 중 일부가 새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 걸까요? 지금도 글을 쓰고 싶은 걸까요? 그렇다면 다시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거듭하던 중, 사이토 다카시 <글쓰기의 힘>을 만났습니다.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총 누적 판매 1,000 만부 이상을 기록한 명실공히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국내에도 많은 저서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바탕으로 글을 쓰며 일본 최고의 교육 전문가이자 CEO들의 멘토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쓰는 힘은 훈련하기에 따라 누구든 확실하게 익힐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방법으로 작가는 A4 4장 분량의 글을 쓰는 훈련을 할 것을 제안합니다. 야구에 비유하면, 투수가 직구를 던지게 된 다음 변화구를 던지며 공의 회전이나 코스 같은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배분하듯 작가는 먼저 일정기간 하루에 쓸 매수를 정하고 양을 소화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양에서 질로 가는 것이 능숙한 문장을 쓰는 지름길이라고 말이죠.
마라톤을 할 때도 초보자들에게는 거리보다 시간으로 접근해 훈련할 것을 제안하는데, 42.195km라는 거리에만 집착하다 보면 속도가 나지 않는 초반에는 금방 지치기 십상이기 때문에 먼저 1시간이면 1시간, 2시간이면 2시간 나의 속도와 관계없이 계속 달리는 힘을 기르게 합니다. 오래 달릴 수 있는 기초 체력을 기르기. 이것이 글쓰기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특정 시간 동안 달리는 것은 질(속도)에 신경 쓰지 않는 양을 늘리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자는 원고지 10장 이상의 글에서는 키 콘셉트가 하나여서는 부족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키 콘셉트가 세 개여야 하는 이유로 두 개여서는 콘셉트 간의 연결이 직선이 되어 버려 누가 생각하든 키 콘셉트의 논리 연결성이 똑같아진다고 지적합니다. 때문에 세 개를 연결해야 ‘복잡성'이 생겨 저절로 독창성이 나오게 된다고 이야기하죠.
각각의 독립적인 세 개의 테마, 즉 키 콘셉트를 연결하려면 독창성이 필요합니다. 책에서는 그 일례로 ‘근성', ‘기력’, ‘의욕'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와 ‘마음’, ‘ 기술', ‘몸'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비교하는데요. 전자의 경우 세 키워드의 의미가 거의 비슷해서 글을 쓸 때 확장이 되지 않는 반면, 후자의 경우 각각 성질이 전혀 달라 이것을 어떻게 연결하여 쓸지는 그 사람이 가진 관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고로 이 세 가지 서로 다른 콘셉트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이나 가치 있는 문장이 생겨나는, ‘독창성'이 생긴다는 것이죠.
되도록 겹치지 않는 세 개의 키 콘셉트를 골라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그 사람의 능력과 재능이 달려 있다. 떨어진 키 콘셉트를 서로 연결하려면 생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글을 쓰면 생각하는 힘이 단련되는 이유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논리를 이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이토 다카시, <글쓰기의 힘>
리포트, 기획서, 보고서 등은 생명력까지는 필요로 하지 않고, 내용만 정확하게 전해지면 됩니다. 하지만 , 프로 작가라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내용은 물론이고 세부에서 글쓴이의 감성과 숨결을 느낄 수 있어야 읽는 사람의 인상에 남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좋은 문장은 세부에 얼마나 생명력이 머물고 있느냐로 정해진다.
-사이토 다카시, <글쓰기의 힘>
최근 회사에서 서비스 소개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새로 개선된 기능을 소개하는 글에서 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잘 보이지 않고 글이 너무 인공지능이 쓴 것처럼 딱딱하다는 피드백이었습니다. 너무 기능 소개만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는데, 이런저런 내용으로 콘텐츠를 덧대느라 바빴다 보니 본질적인 부분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 글은 읽는 사람을 의식하고 쓰였는가,라는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려 합니다. 저는 지금도 글을 쓰고 싶은 걸까요? 그렇다면 다시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도 글을 쓰고 싶습니다. 다시 쓰지 못했던 이유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어느 순간 느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인공 지능의 힘을 빌려 쉽게 쓰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글은 생명력을 잃고 구조만 남아 그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씩 공허해지는 마음의 그릇을 가지고 하루를 거르고, 두 번을 거르다 보니 어느새 쓰지 않고 읽는 것조차 소홀히 하는, 또렷하지 못한 매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생성형 AI 활용도가 높아진 세상에서 글 쓰는 작업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글쓰기는 구성력을 키우고, 머리의 끈기력을 기르고 자기 형성을 이뤄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사이토 다카시, <글쓰기의 힘>
얼마 전 지리산 노고단길에 다녀왔습니다. 산을 오르던 길에 처음 보는 풀과 처음 보는 생명체를 마주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각각 배초향과 박각시였습니다. 그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조사를 했고, 일반 풀과 다르게 이런 특징이 있구나, 나방과 다르게 이런 특징이 있구나, 와 같은 그들만의 특징을 발견하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이 발견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욕구는 나의 발견과 깨달음을 세상에 공유하고 싶은 욕구, 누군가와 공감하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망과도 같았습니다.
이런 순간마다 떠올리는 시가 있습니다.
내가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
내가 만일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 주거나
한 괴로움을 달래 주거나
또 힘겨워하는 한 마리의 로빈새를 도와서
보금자리로 돌아가게 해 줄 수 있다면
내 삶은 정녕 헛되지 않으리
- 에밀리 디킨슨 , <내가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
그녀의 시는 언제든 저를 삶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 줍니다. 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 걸까요? 저는 저를 위해 글을 쓰고 싶습니다. 스스로 해석한 관점을 구조적으로 정리해 내 머릿속 서랍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와 비슷한 주파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 깨달음의 공명이 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