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일기(狂人日記) 6- 수박과 칼
김한빈
수욱
칼날이 수박 껍질을 째고 붉은 속살에 들어간다
손에 잡히는 이상한 느낌에 전율한다
그때부터 나는 수박이 생물인지 아닌지 골똘히 연구하기 시작한다
칼날이 생선 배를 따고 들어갈 때 손의 느낌과 비교해 본다
칼날이 닭의 배를 가를 때 손의 느낌과도 비교해 본다
붉은 속살에 점점이 박힌 검은 씨는 젓가락으로 발라내고 입으로 뱉어도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아우성치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수박이 생물임에 틀림없고
반토막난 수박에 아직 생명이 붙어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결국 나는 살아있는 생명체에 칼을 댄 셈이다
수우욱
칼날이 수박 껍질을 째고 붉은 속살에 들어간다
손에 잡히는 이상한 느낌에 전율한다
칼을 쥐고 있는 오른손은 위험하고
수박을 잡아주는 왼손은 수박만큼 위태롭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그런데 수박이 생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문학도시> 2024년 2월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