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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Sep 29. 2024

김시우 시집 해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

김시우 시집 해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한 순수서정의 미학 

    

                                                        김한빈 (시인문학평론가)     



     

들어가는 말  


   

 이 시집은 자연과 인간의 삶, 그 안에서의 감정과 관계를 섬세하게 탐구하는 순수서정적인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시는 개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모두 자연의 이미지와 삶의 여정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시집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깊어지는지를 탐구하며, 궁극적으로는 삶의 본질과 의미를 천착하고 있다. 전체 80여 편의 시를 편의상 사계(四季)에 따라 1~4부로 분류하고, 그 가운데 14편의 수작들을 선별하여 이를 중심으로 일별하도록 한다. 

    

1. 자연과 인간의 교감  

   

 「꽃 속에 詩가 있다」, 「해돋이」, 「춘삼월」, 「둑방길 30리」, 「겨울 우포늪」, 「길」 등

 이 시편들은 자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감정과 사색을 담지하고 있다. 자연은 시인의 감정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삶의 여정 속에서 함께하는 동반자 역할을 한다. 시인은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과 고요함, 때로는 고독을 느끼며,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통해 삶의 깊이를 탐구한다.  

   

2. 삶의 여정과 기억     


 「대왕암」, 「참으로 위대한 일」, 「나를 잊지 말아요」, 「눈물」, 「영축산을 그리다」, 「강」 등

 이 시편들은 삶의 여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것들이 남긴 흔적을 다룬다. 시인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과 감정이 어떻게 남고, 그것들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탐구한다. 특히 「대왕암」과 「영축산을 그리다」는 역사와 불교적 상징을 통해 인간 존재의 깊이를 탐구하며, 「참으로 위대한 일」과 「눈물」은 인간의 본능적 생존과 감정을 표현한다.    

 

3. 가족과 사랑, 그리고 집     


 「우리 집」 등

 이 시는 시집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며, 인간 관계와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다. 시인은 가족과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통해 인간의 감정적 유대와 사랑을 표현하며, 그 안에서의 삶을 성찰한다. 「우리 집」은 시집 전체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시로, 인간 관계 속에서의 안전과 안식, 그리고 추억을 담고 있다.    


      

본론


 이제 수작 시 14편의 작품들을 개별적으로 살펴보자.     

백사장의 초롱한 눈망울들/ 한곳으로 모은 곳은 저기, 저/ 하늘과 바다가 하나 된 수평선//     

인연의 시작은 만남/ 큰 것이 큰 것을 만나 햇덩이를/ 낳는 저기, 저//     

마지막 안간힘에 실핏줄이 터져/ 동녘을 붉게 물들이는/ 인연이 남긴 속 깊은 얘기//     

옥동자를 갈망하며/ 베넷 물 받쳐 들고/ 문밖을 서성이는 남정네처럼//     

새해 새 아침/ 크고 뚜렷한 것이 쉬 나타나기를/ 손 모아 기다리는 마음//     

세계평화를 간원하나이다/ 국태민안을 간구하나이다/ 가족의 평안을 간청하나이다//     

선한 마음 품어 안고/ 해야 떠라/ 세상을 밝히는 맑은 해야 떠라///

                                                           - 「해돋이」 전문    

 

 이 시는 새해 첫날 일출을 통해 새해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소망과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해돋이’를 인연의 시작으로 묘사하며, 일출 장면을 인생의 중요한 만남과 연결 짓고 있다.

 도입부에서 백사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천지가 맞닿은 수평선으로 향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2연에서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큰 것이 큰 것을 만나 햇덩이를/ 낳는' 것에 비유해, 우주적인 만남이자 새로운 탄생의 순간으로 형상화한다. 3연에서 해가 떠오르기 전의 순간을 '마지막 안간힘에 실핏줄이 터져/ 동녘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으로 그리며, 일출의 장엄함과 동시에 그 안에 담긴 깊은 이야기를 암시한다. 4~5연에서 원단(元旦) 아침을 맞이하며, 일출을 기다리는 마음을 '베넷 물 받쳐 들고 문밖을 서성이는 남정네'에 비유한다. 이는 새해를 맞이하며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 두 연에서는 세계 평화, 나라의 안정,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선한 마음을 품고 세상을 밝히는 '맑은 해'가 떠오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 시는 ‘해돋이’를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류와 개인의 희망과 바람이 담긴 중요한 상징으로 승화시킨다.

 결국, 이 시는 새해의 첫 일출를 바라보며 개인적인 소망을 넘어, 인류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마음을 담고 있다. 이는 ‘해돋이를 통해 새해와 함께 새로운 희망과 다짐을 노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너를 보듯 꽃을 보자/ 꽃 속에 詩가 있다//     

꽃술에서 ㄱ ㄴ을 읽고/ 꽃잎에 ㅏㅓ를 펼쳐 놓으면/ 詩가 된다//     

꽃이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말하는/ 소리를 듣자/

꽃에 맞는 색깔의 언어를 입히자/

꽃의 향기를 버무려 맛을 낼 줄 알면/ 시인이다//     

너를 보듯 꽃을 보자/ 꽃 속에 詩가 있다//

                                                - 「꽃 속에 詩가 있다」 전문     


 이 시는 이 시집 전체의 서시(序詩)이고 일종의 메타시(Metapoetry)이다. 이때 메타시는 시에 관한 시, 곧 시의 어떤 속성에 관한 반성과 성찰과 인식을 추구하는 시편들을 총칭한다. 흔히 ‘시에 대한 시’, ‘시 쓰기에 대한 시’로 정의된다.

 이 시는 꽃을 통해 시를 발견하는 과정을 묘사하며, 자연과 언어의 아름다움이 결합된 예술적 창작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꽃을 바라보는 것을 시를 쓰는 행위와 연결 짓고, 꽃 속에서 시의 영감을 찾고자 한다.

 시의 첫 구절, "너를 보듯 꽃을 보자"는 대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태도를 강조한다. 시인은 꽃을 단순한 자연의 객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보듯이 정성을 다해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 ‘너’는 시적 화자가 추구하는 절대적 가치일 수도 있고, 그런 맥락에서 이전의 ‘님’, ‘당신’ 등의 친근한 표현이기도 하다. ‘꽃’은 자연 혹은 삼라만상의 시적 대상이다. 그 속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이 시(문학 장르의 시, 진정한 가치나 진리)가 된다.

 다음으로, 꽃술에서 'ㄱ ㄴ'을 읽고/ 꽃잎에 'ㅏㅓ'를 펼쳐 놓는다는 표현은 꽃을 통해 한글의 기본 자음을 떠올리고, 이를 시적으로 배열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는 시인이 자연의 구체적인 현상이나 사태를 관찰하고, 그 속에서 언어의 조각들을 발견해 시를 창조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꽃이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말하는/ 소리를 듣자”는 구절에서 자연 만물이 독자성을 갖고 주체적으로 존재하는 의미를 탐구하고, "꽃에 맞는 색깔의 언어를 입히자"는 구절에서는 자연의 심묘하고 복잡다양한 본질을 파악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시를 구성하는 언어의 선택이 꽃의 색깔처럼 적절하고 아름다워야 함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꽃의 향기를 버무려 맛을 낼 줄” 아는 능력은 시인이 자연 만물이 갖는 경이롭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의미를 발견하고, 자연의 감각적인 요소들을 시에 녹여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너를 보듯 꽃을 보자/ 꽃 속에 詩가 있다"라는 수미상관 구조로 반복을 통해 주제를 강조하여 마무리하며, 꽃을 통해 시의 영감을 찾고, 그것을 시로 풀어내는 과정이 시인의 중요한 역할임을 상기시킨다.

 이 시는 자연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이 곧 시 창작의 본질임을 나타내며,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강조한다. 시인은 꽃 속에서 시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삶과 자연의 깊이를 표현하는 예술적 행위를 노래하고 있다.    

 

말랑말랑 젖먹이 살갗 같은/ 햇살에 나비 되어 날고 싶은 날//     

간밤 이슬비에 목련이 피어/ 목련이 피어/ 산모롱이 돌아가는 겨울 그림자//     

숨비소리에 봄이 있건만 돌담을/ 꽉 껴안은 담쟁이/ 마른 줄기엔 아무런 소식 없다//     

꽃송이에 앉은 작은 새야/ 꽃잎 떨구지 마라/ 떨어지는 꽃잎에 춘삼월이 간다//

                                                          - 「춘삼월」 전문     


 봄을 맞이할 때마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떠올리거나 정지용의 「춘설 」, 서정주의 「상리과원(上里果園)」을 다시 읽고 싶다. 김시우 시인도 순수서정의 미학으로 봄을 노래한다. 이 시는 봄의 절정인 춘삼월의 풍경과 감성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인은 봄의 따스한 햇살, 피어난 목련, 그리고 자연의 변화를 통해 계절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덧없음을 표현하고 있다.

 첫 구절에서 "말랑말랑 젖먹이 살갗 같은 햇살"이라는 표현은 봄 햇살의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햇살 아래에서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봄은 생동감과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2연에서는 "간밤 이슬비에 목련이 피어"라는 반복적인 구절을 통해 목련이 피어나는 순간의 경이로움과 동시에 겨울이 남긴 잔영을 산모롱이로 표현하며, 겨울이 완전히 떠나기 전에 봄이 찾아온 순간을 그린다. 이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시작이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3연에서는 "숨비소리에 봄이 있건만"이라는 표현으로 봄의 생명력과 활기를 느낄 수 있지만,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듯 담쟁이의 마른 줄기에는 여전히 봄의 소식이 없는 모습을 그린다. 이는 봄이 오긴 했지만, 아직 모든 생명이 깨어나지 않은 상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일종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꽃송이에 앉은 작은 새야, 꽃잎 떨구지 마라"라는 구절로,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꽃잎이 떨어지면 춘삼월, 즉 봄의 한 순간이 지나가버린다는 것을 암시하며, 봄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덧없음을 서정적으로 표현한다. 이때 ‘작은 새’는 짧은 봄을 만끽하는 존재이며 대자연 앞에 선 작은 인간 존재이며, 동시에 시적 화자의 분신이기도 하다.

 이 시는 봄의 풍경을 통해 자연의 생명력과 동시에 그 속에 담긴 순간의 덧없음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춘삼월의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봄의 아름다움 속에 깃든 일시적인 순간들을 통해, 삶의 순간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벚꽃잎이 하르르 떨어지는 낙동강/ 둑방길 30리//     

칠백 리 산야를 휘돌아 온 강물이/ 마지막 오금을 펴고 바다와 몸 섞기 전/

잠시 쉬어가는 여기//     

꽃 문을 열고 꽃길을 걷자//     

눈썹이 하얗도록 뛰어다닌/ 춥고 어두웠던 모난 겨우살이//     

꽃나무 등걸에 봄비가 스며들어/ 꽃 피고, 꽃 핀 가지 하늘을 덮는 봄날/

가슴 속에 흐르는 산골 물소리/

꽃바람에 씻는 오늘/ 낡은 발걸음 흥얼흥얼 걸어보자//

                                                     - 「둑방길 30리」 전문     


 이 시는 강서 낙동강의 벚꽃 둑방길을 배경으로, 봄의 생동감과 함께 지나온 시간의 회고를 아름답게 형상화하는 순수서정의 미학을 보여준다. 시인은 벚꽃이 흩날리는 낙동강의 풍경 속에서 인생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봄의 생명력과 그 안에 깃든 희망을 표현한다.

 도입부에서 "벚꽃잎이 하르르 떨어지는 낙동강/ 둑방길 30리"라는 구절을 통해 봄날의 평화로운 풍경을 묘사한다. 벚꽃이 흩날리는 둑방길은 시각적으로도 아름답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간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연에서는 "칠백 리 산야를 휘돌아 온 강물이/ 마지막 오금을 펴고 바다와 몸 섞기 전/ 잠시 쉬어가는 여기"라는 표현으로, 낙동강이 바다와 합류하기 전 잠시 쉬어가는 순간을 묘사한다. 이는 인생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긴 여정을 지나온 강물처럼 우리도 때로는 멈춰서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함을 암시하며 동시에 시적 화자의 현재 위치를 제시한다. "꽃 문을 열고 꽃길을 걷자"는 구절에서는 이제 막 피어난 봄을 맞이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봄은 새로운 시작과 생명의 재탄생을 의미하며, ‘꽃 문’은 벚꽃 터널의 입구이면서 지상지고의 아름다운 미적 영역의 입구를 상징한다. 시인은 이 상황을 꽃길을 걷는 행위로 표현한다.

 3연에서 "눈썹이 하얗도록 뛰어다닌/ 춥고 어두웠던 모난 겨우살이"라는 구절을 통해 지난 겨울의 고단함과 추위를 회상한다. 겨울의 모난 삶을 지나 이제는 봄비가 스며들어 꽃을 피우는 시기임을 말하며, 이는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나 다시 피어나는 희망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가슴 속에 흐르는 산골 물소리/ 꽃바람에 씻는 오늘/ 낡은 발걸음 흥얼흥얼 걸어보자"라고 표현하며, 마음속 깊이 간직한 자연의 소리를 느끼며, 봄에 동화되어 일체감을 이루는 내면화 과정을 걸쳐 새로운 시작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가자고 다짐한다. 이 장면은 고된 겨울을 지나 봄의 아름다움을 구가하며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 시는 자연의 변화와 함께 인생의 여정 속에서 맞이하는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노래하며, 지난 고통과 아픔을 극복하고 봄의 생명력을 수용하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바다에 펼쳐진 한 권의 역사책/ 오랜 세월/

거친 풍파에 글자는 남김없이 흘려내려도/ 유사(遺事)가 기록한 엄연한 사실//     

활짝 핀 한 떨기 연꽃/ 물때가 앉아 색깔은 바래어도/

불성에 뿌리를 둔 시들지 않는 향기/ 입심으로 전해오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     

혼령은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겠다는 마지막 맹서/한시도 잊은 적 없어/

해저로 잠행하며 일으키는 물보라//     

비릿한 해조음이 콧등에 와 닿는 저기/ 바다로 흩어져 부채꼴 주상절리가 된 감은사/

당간지주, 법당 기둥에 쟁여있던/ 독경 소리 바람결에 들려오고//     

통일의 위업을 새긴 벌판엔/ 동서 3층 석탑만이 덩그런 절터/

금당 밑 배수로도 막혀/ 쉴 틈 없이 깨어 움직이는 여정//      

높은 파도로 해안을 하얗게 거품 칠해도/ 길이 열려있는 대왕암은/

내일도 강건하고/ 전설이 지배하는 동해는 오늘도 우렁차다//

                                                    - 「대왕암(大王岩)」 전문     


 이 시는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수한 문무대왕(626년~681년)의 호국 염원을 담은 문무수중릉인 ‘대왕암’을 중심으로 동해의 역사와 전설을 깊이 있게 묘사하며, 자연과 역사, 신화가 어우러진 장엄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시인은 ‘대왕암’을 단순한 자연경관으로 보지 않고, 오랜 세월을 간직한 역사의 한 페이지로서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1연에서 "바다에 펼쳐진 한 권의 역사책"이라는 표현으로, ‘대왕암’이 마치 오래된 역사책처럼 오랜 세월을 거쳐왔음을 강조한다. 거친 풍파에 글자는 지워졌지만, 그 속에 담긴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사라지지 않고 엄연한 사실로 남아있다는 점을 통해 자연이 기록한 역사의 흔적을 암시한다.

 2연에서 ‘대왕암’을 "활짝 핀 한 떨기 연꽃"에 비유하며,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신성함이 시들지 않음을 강조한다. 연꽃의 색은 바래어도 불성에 뿌리를 둔 향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표현은, ‘대왕암’이 가진 영적인 의미와 그 속에 담긴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나타낸다. 3연에서는 2연의 내용을 구체화한다. ‘대왕암’과 관련된 전설을 언급하며, "혼령은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겠다는 마지막 맹서"라는 구절을 통해 대왕암에 얽힌 전설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음을 암시한다. 이 전설은 ‘대왕암’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며, 동해를 지키는 혼령의 맹세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표현한다.

 4연에서는 ‘감은사’와 관련된 역사적 흔적들을 묘사한다. "바다로 흩어져 부채꼴 주상절리가 된 감은사"는 자연과 인간의 역사적 유적이 하나로 엮여 있음을 보여주며, 바람결에 들려오는 독경 소리는 마치 문무대왕의 간절한 호국 염원처럼 들리며 과거의 소리를 현재로 가져와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물길이 열려있는 대왕암"이 내일도 강건할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하며, 동해의 강력한 자연과 그 속에 담긴 전설이 오늘도 우렁차게 살아 있음을 강조한다. ‘대왕암’은 동해의 힘과 역사를 상징하며, 그 속에 담긴 전설과 신화가 여전히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시는 대왕암을 통해 동해의 장엄함과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신화적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어우러진 장대한 서사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먹고 사는 일은 참 지난(至難)한 일이다/ 먹기 위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고층 건물 외벽을 타야 하고/ 물질하는 해녀의 숨비소리를 들어야 한다//     

모기와 싸우면서/ 모기를 잡으면서 먹는 것이 생명을/

담보해야 할 만큼 절박한 일인가를 생각한다/ 가당치나 한 일인가?/

비교 불가한 모기를 생솔가지를 태우며 쫓고/ 전자총을 마구 휘둘러도 먹기 위해 달려드는/

어처구니없는 이 현실//     

처참한 주검의 냄새가 실내에 가득해도/ 또다시 덤벼드는 모기의 본능/

만물을 복종시키고 우주를 유영하는 유일신 인간을/ 먹잇감으로 삼는 모기는/

먹는 일은 사는 일임을 알려준다//     

가난한 농부도 그러했다/

처자식의 밥그릇을 채우기 위해 진종일/ 뛰어다닌 발등을 주무르며 웅얼웅얼 돌아누웠고/

가난을 이어받은 그 아들도 긴 겨울 양식이/충분치 않음에 늦은 나이/

공사판의 질통을 찾아다녔다//     

사는 일은 먹는 일이다/ 누구나 고래가 되고 싶고 사자가 되기 위해/ 

몸을 다듬는 거, 잘 먹고 잘살기 위함이 아닌가?/ 

모기의 먹이 집착이 저렇게 강하지 않았다면/ 

수억 명의 인간 생명을 빼앗고도 지금껏 살아남아/ 끊임없이 인간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먹는 일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 「참으로 위대한 일」 전문     


 이 시는 "먹고 사는 일"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생존 본능과 그것이 가진 엄중한 중요성을 탐구한다. 시인은 먹고 사는 일의 어려움과 절박함을 다양한 상황과 이미지를 통해 생생하게 묘사하며, 이를 통해 인간 삶의 본질을 깊이 있게 성찰하고 있다.

 도입부에서에서 "먹고 사는 일은 참 지난(至難)한 일이다"라는 구절로 시를 시작하며,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강조한다. 고층 건물 외벽을 타고 일하거나, 바다에 잠수하여 물질하는 해녀의 고된 삶을 예로 들어,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실의 가혹함을 표현한다.

 2~3연에서는 모기와의 싸움을 비유로 들며,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인간의 처지를 묘사한다. 모기와 같은 하찮은 존재도 먹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드는 모습은, 생존이 얼마나 절박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모기라는 작은 존재가 먹이를 구하는 데 집착하는 모습을 통해, 생존을 위한 본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4연에서 이러한 시상을 인간 세계에 유추적으로 적용하여 농부와 그 아들의 삶을 통해, 먹고 사는 일이 세대를 이어 계속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그의 대표 저서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이 이전 수렵채집 사회보다 더 고단한 삶을 초래했다고 역설했다. 가난한 농부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그 아들도 그 힘든 삶을 이어받아 생존을 위해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은 먹고 사는 일이 인간 존재의 핵심임을 나타낸다.

 마지막 연에서는 "사는 일은 먹는 일이다"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를 선언하며, 먹고 사는 일이 곧 인간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시인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을 "참으로 위대한 일"로 의미 부여하며, 먹고 사는 일이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숭고하고 필수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 시는 먹고 사는 일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이고 위대한 과업임을 강조하며, 생존을 위한 투쟁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강인한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시인은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측면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위대함을 찬미한다.     


억겁의 연이 닿아야 푸른 풀잎에/ 파름한 꽃송이가 핀다는 걸/ 알아요/

물망초 푸른 꽃잎처럼/ 빛나는 청춘이었다는 것을/

활짝 핀/ 꽃내음 달빛에 아롱이던 그날/ 한 매듭 맺는 통증이/ 

마음속 석순으로 자란다 해도/ 맞아요/ 물망초 꽃말이에요/

기쁨으로 다가왔던 그 빛나던 순간들/

꽃잎에 새기지 못하고/ 빛바랜 잎사귀로 강물에 휩쓸려도/ 바람의 한마디/

나를 잊지 말아요//

                                                - 「나를 잊지 말아요」 전문     


 이 시는 사랑과 기억에 대한 깊은 감정을 담아내며,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간절한 메시지를 전한다. 시인은 물망초라는 꽃을 중심으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그야말로 순수서정시, 리리시즘(lyricism)의 극치를 보여주는 단연시다.

 "억겁의 연이 닿아야 푸른 풀잎에/ 파름한 꽃송이가 핀다는 걸/ 알아요"라는 구절은 오랜 시간과 인연이 있어야 비로소 피어나는 사랑의 소중함을 나타낸다. 물망초의 푸른 꽃잎이 사랑의 청춘을 상징하며, 그 빛나던 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표현한다. 이어서 "활짝 핀/ 꽃내음 달빛에 아롱이던 그날"은 사랑의 절정을 표현하며, 그 순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했는지를 회상한다. 하지만 "한 매듭 맺는 통증이 마음속 석순으로 자란다 해도"라는 구절은 그 사랑이 끝나면서 남은 아픔과 그리움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음을 나타낸다.

 물망초의 꽃말인 '나를 잊지 말아요'를 중심으로, 사랑했던 순간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부탁이 시 전반에 흐르고 있다. "기쁨으로 다가왔던 그 빛나던 순간들/ 꽃잎에 새기지 못하고"라는 표현은 아름다운 순간들이 영원히 간직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아쉬움을 담고 있다.

 마지막 구절에서 "바람의 한마디 나를 잊지 말아요"는 이 모든 감정을 하나로 묶어 사랑했던 이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를 강조한다.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버린 사랑이지만, 그 사랑을 잊지 말아달라는 마음이 애절하게 느껴진다.

 이 시는 사랑의 아름다움과 그리움, 그리고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물망초라는 상징적 꽃을 통해 형상화하며, 사랑의 기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준다.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간절한 부탁은 시인의 깊은 감정을 담아 독자의 마음에 울림을 준다.  

   

나는 본다/ 밤새껏 줄기차게 내리는/

빗방울을 헤아리다 지쳐 고개 숙인/ 가로등을 …넷 다섯 여섯…/

개울물이 되어 논밭을 적시고/ 강물이 되어 물고기를 키워야 할 빗방울//     

모자를 눌러쓰고 거울 앞에 선/ 가로등 같은 내 모습/

도랑에 스며들지 못하고 얼어버린/ 맑고 고운 눈물방울들/ 흔적만 남은 눈물 자국//     

나는 안다/ 벌 떼도 잠이 든 비거리에서/ 홀로 어둠을 쫓는 가로등의 속내를, 하나 둘 셋…/

더 많은 눈물 흘리지 않아/ 냇가에 닿지 못해 말라버린/ 굵고 뜨거운 눈물방울들/

흔적도 없는 눈물 자국//     

나는 별이 되리라/ 눈물 없는 곳에서 눈물처럼 말갛게 태어나/

눈물로 꽃 피우는 풀포기에도/ 희망의 빛이 되는/

살아있는 작은 별이 되리라/ 눈물 없는 곳에서 눈물처럼//

                                                           - 「눈물」 전문    

 

 이 시는 눈물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탐구하는 순수서정시이다. 시인은 가로등과 빗방울, 그리고 눈물을 통해 외롭고 고독한 감정을 표현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1연에서 시인은 밤새 내리는 빗방울을 헤아리며 지친 가로등을 바라본다. 가로등은 고개를 숙인 채 빗방울을 헤아리지만, 그 빗방울들은 결국 강물로 이어져 생명을 키우는 중요한 존재다. 이 빗방울은 삶의 고난과 아픔을 상징하며, 그 고통이 결국 생명을 키우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2연에서는 시인은 자신을 가로등에 비유한다. 도랑에 스며들지 못하고 얼어버린 눈물방울들, 그리고 그 눈물의 흔적만 남은 모습은 시인의 고통과 슬픔을 표현한다. 이 눈물들은 냇가에 닿지 못해 말라버린, 사라져버린 희망을 상징하며, 시인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는 결심을 드러낸다.

 3연에서는 시인은 고독 속에서도 어둠을 밝혀야 하는 가로등의 속마음을 이해한다. 가로등처럼 외로운 존재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그 빛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나타낸다. 냇가에 닿지 못해 말라버린 눈물은 시인이 겪은 깊은 아픔을 상징하며, 그 아픔이 결국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음을 표현한다.

 마지막 연에서 ‘하강-상승 구조’로 시상이 전환된다. 시인이 "나는 별이 되리라"며 눈물 없는 곳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눈물로 꽃 피우는 풀포기에도 희망의 빛이 되는 작은 별(눈물의 승화)이 되겠다는 다짐은 시인이 고통과 슬픔을 넘어 새로운 희망과 빛을 찾고자 하는 염원을 나타낸다. 눈물처럼 맑고 순수한 존재가 되어, 눈물의 질곡에서 벗어나 밝은 미래를 소망하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때 비애와 순수라는 ‘눈물’이 동일 시어의 이중적 의미 사용으로 돋보인다. 

 이 시는 고독과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재생의 의지를 아름답게 형상화하며, 눈물이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 존재의 고통과 그것을 넘어선 새로운 시작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다.   

  

내 몸은 하늘에 있고/ 내 발은 하늘 아래 첫 땅 영축산 정상 너럭바위/

아스라이 사슴목장 같은 저곳은/ 연(緣)줄에 얽매여 아등바등 흔들리다/ 공(空)이 될 속계//     

한발 비켜선 법계의 골짜기 통도사/ 팔작지붕 위로 불향이 강올차게 피어올라도/

그 향긋한 향기/ 마음을 다스려주는 따스한 향기/

품을 수 없는 마음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가을 산을 그린다//     

조락(凋落)한 상수리 이파리/ 바람 따라 배회하는 싸리잎에도 물감을 입히고/

단풍 드는 활엽수 옆으로 드넓은 억새평원/ 

말끔하게 빗질하고 고개 내민/ 억새의 서걱대는 소리도 그리고//     

마지막 화룡점정 화폭 중앙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동서남북 어디에도 있고/ 한 길 깊이의 가슴속에도 있는 자애로운 눈빛/

자비로운 미소까지 붓질하면/ 절로 말문이 트이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 「영축산을 그리다」 전문     


 이 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영축총림 통도사를 안고 있는 영축산의 경관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서 느끼는 깊은 깨달음과 영적 체험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영축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과 그 속에서 느낀 내적 성찰을 통해, 자연과 불교적 깨달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마음속 화폭에 그림처럼 그려낸다.

 도입부에서 시인은 "내 몸은 하늘에 있고/ 내 발은 하늘 아래 첫 땅 영축산 정상 너럭바위"라고 표현하며, 영축산 정상에서 느끼는 하늘과 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감을 묘사한다. 사슴목장 같은 아득한 풍경을 "연줄에 얽매여 아등바등 흔들리다/ 공이 될 속계"라고 표현함으로써, 세속적인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나 공(空)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2연에서는 한국 3대 사찰의 하나로,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있어 불보(佛寶) 사찰이라고 하는 통도사를 배경으로 불향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그린다. "팔작지붕 위로 불향이 강올차게 피어올라도/ 그 향긋한 향기"는 불교적인 신성함과 평온함을 상징하며,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시인의 염원을 담고 있다. 그러나 "품을 수 없는 마음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가을 산을 그린다"는 표현을 통해, 시인은 마음의 번뇌와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내면적으로 형상화한다.

 3연에서는 자연의 변화와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묘사한다. "조락한 상수리 이파리/ 바람 따라 배회하는 싸리잎"과 "단풍 드는 활엽수 옆으로 드넓은 억새평원"은 가을의 정취를 담아내며, 자연의 생명력이 어떻게 흘러가고 변화하는지를 표현한다. 억새의 서걱대는 소리까지 그림에 담아내려는 시인의 의도는 자연 속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감각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욕구를 나타낸다.

 4연과 5연에서 시인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불교적 깨달음을 화폭의 중심에 그려 넣는다. 동서남북 어디에나 있는 자애로운 눈빛과 자비로운 미소를 통해, 불교적 깨달음이 온 세상과 자신 속에 동시에 존재함을 표현한다. 이는 조주(趙州) 선사가 갈파한 불성(진리)의 편재성(遍在性, ubiquitous, omnipresence)을 말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가자, 가자, 저 피안의 세계로 가자)"라는 싼스끄리트 진언과 함께 불교적 경구를 읊조리며, 시인은 자연 속에서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깊은 염원을 드러낸다. 특히 후반부는 ‘문학은 모두 상호 연관성을 가진다’는 이론에서 출발한, 줄리아 크리스티바의 상호텍스트성을 잘 보여준다.

 결국 이 시는 영축산의 경관을 통해 불교적 사유와 깨달음을 탐구하며, 자연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고자 하는 시인의 깊은 내면을 담아내고 있다.   

  

까르륵거리는 아가의 웃음소리엔/ 청정한 개울물소리가 난다//     

골짜기를 더할 때마다 물줄기는 굵어지고/ 읍내를 지날 때쯤/

강의 모습을 갖춰 물소리는 단단하다//     

어디서 오느냐고 묻지 않는다/

개수대를 맴돌았던 공장지대에 머물렀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     

물안개로 피어올랐다면 천상의 무희가/ 물방아를 돌렸다면 풍년가를 불렀을까?//     

흘러간다는 건/ 세월이나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함께 어울려 물의 소리로/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는 일//     

중요한 것은 강물의 깊이다/

불빛에 흔들리고 오폐수가 스며들어/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물빛이 변해버린 강/

자정능력을 믿기에/ 산 그림자를 드리운 채 강은 조금씩/저 혼자 깊어 간다//

                                                              - 「강」 전문  

   

 이 시는 ‘강’을 인생행로의 여정으로 노래한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연상시킨다. 강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변화를 탐구하며, 그 속에서 인간 존재와 삶의 깊이를 성찰하고 있다. 강의 흐름과 깊이를 묘사하며, 그것이 어떻게 삶과 연결되는지를 탐구하는 시적 여정을 담고 있다.

 1연에서 "까르륵거리는 아가의 웃음소리엔/ 청정한 개울물소리가 난다"는 강의 순수한 출발점을 나타낸다. 아가의 웃음소리는 강의 시작과 같은 순수하고 맑은 소리를 상징하며, 2연에서 "골짜기를 더할 때마다 물줄기는 굵어지고/ 읍내를 지날 때쯤/ 강의 모습을 갖춰 물소리는 단단하다"는 구절은 강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강물이 흐르면서 점점 더 강해지고 형태를 갖추어가는 과정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성장을 나타낸다.

 3연에서 "어디서 오느냐고 묻지 않는다"는 강의 기원이나 과거보다는 현재의 모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를 나타낸다. 과거의 공장지대와 개수대의 기억은 중요하지 않으며, 현재의 강의 모습과 그 소리, 즉 현재를 중시하는 시인의 시각을 드러낸다.

 4연에서 "물안개로 피어올랐다면 천상의 무희가/ 물방아를 돌렸다면 풍년가를 불렀을까?"는 강이 가진 신비로운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강의 물안개가 천상의 무희를 연상시키며, 물방아와 풍년가는 자연의 주기성과 조화로움을 상징한다. 이 상상은 강이 단순한 물리적 존재를 넘어서서 더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5연에서 "흘러간다는 건/ 세월이나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함께 어울려 물의 소리로/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는 일"이라는 구절은 강의 흐름이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삶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중요한 행위임을 나타낸다. 강은 세월과 바람을 넘어서서, 물소리로 세상을 표현하고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후반부에서 "중요한 것은 강물의 깊이다"는 강의 깊이가 그 본질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불빛에 흔들리고 오폐수가 스며들어/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물빛이 변해버린 강"은 강의 외적 환경이 어떻게 강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정능력을 믿기에/ 산 그림자를 드리운 채 강은 조금씩/ 저 혼자 깊어 간다"는 강이 스스로의 본질을 유지하며 점점 더 깊어가는 과정을 통해, 내적 성찰과 자아의 깊이를 상징한다.

 이 시는 ‘강’을 통해 시간의 흐름, 삶의 깊이,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며, 강의 본질적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깊이를 성찰한다. 강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존재로 묘사되며, 그 깊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둘레길 15km를 걸었다고 우포늪을 말하지 마라/

두 발로 밟은 건 대대들의 농로를 걷듯/ 살뜰한 국토의 한쪽 땅을 밟았을 뿐/

70만 평에 고인 물을 남김없이 퍼내고/ 켜켜이 쌓인 퇴적토를 밟아도/

1억 몇천 년의 시간을 밟을 수 있으랴//     

두 눈에 심은 건 생이가래, 가시연은커녕/ 물속에 뿌리 박은 헐벗은 왕버들 몇 그루/

출사 온 카메라도 오후의 나른함에/ 눈시울 껌벅이며 물 위를 향했을 뿐/

기러기는 모르겠고/ 모래톱에 섬이 되어 졸고 있는 쇠오리 떼//     

두 귀로 듣는 건 제방을 굴러가는 자전거 바퀴 소리/

하늘이 내려앉은 물 위로 떠도는 흰 구름 소리/ 물가에 모여 노는 겨울 진객 큰 고니 떼/

꿍꿍 주둥이 부딪치며 살아가는/ 얘기가 골짜기를 채우고/

하늘 귀에 닿게끔 덩달아 왝왝 꽥꽥//     

흰따오기 어디쯤 둔 아쉬움 가슴에 담고/ 긴병꽃풀, 남생이 와글거리는 계절/

그리운 얼굴로 만나기 위한 발걸음이/ 꿍꿍 고갯길을 넘어가는 소리를 뒤따른다//

                                                      - 「겨울 우포늪」 전문   

  

 이 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천연 늪이자 생태계 박물관인 ‘우포늪’을 걸으며 느끼는 감상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를 탐구한다. 시인은 ‘우포늪’의 물리적 특성과 그 속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과 인간 존재의 한계를 성찰한다.

 도입부에서 "둘레길 15km를 걸었다고 우포늪을 말하지 마라"는 시인의 경험이 우포늪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15킬로미터를 걸었다고 해서 우포늪의 전체를 경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대들의 농로를 걷듯"은 그저 단순한 농로를 걷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며, 우포늪의 진정한 깊이를 이해하는 데는 미흡함을 드러낸다. 시인은 우포늪의 거대한 면적과 오랜 역사를 경험으로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2연과 3연은 ‘두 눈에 심고, 두 귀로 듣는’ 시각과 청각의 대구를 이루는 짝이다. 2연에서 "두 눈에 심은 건 생이가래, 가시연은커녕/ 물속에 뿌리 박은 헐벗은 왕버들 몇 그루"는 시인이 우포늪에서 직접 관찰한 것들이 실제로 우포늪의 본질을 담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카메라와 함께한 방문조차도, 그저 자연의 겉모습만을 포착했을 뿐이다. "기러기는 모르겠고/ 모래톱에 섬이 되어 졸고 있는 쇠오리 떼"는 자연의 일부를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인은 우포늪의 복잡한 생태계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3연에서 "두 귀로 듣는 건 제방을 굴러가는 자전거 바퀴 소리/ 하늘이 내려앉은 물 위로 떠도는 흰 구름 소리"는 우포늪의 주변 소리와 자연의 조화를 나타낸다. 시인은 우포늪의 소리와 풍경을 듣고 있지만, 그것이 우포늪의 전체를 담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한다. "겨울 진객 큰 고니 떼"와 같은 자연의 존재가 우포늪의 생명력을 상징하지만, 그것도 자연의 일부일 뿐, 우포늪 전체의 의미와 깊이를 완전히 담기에는 부족함을 드러낸다.

 마지막 연에서 "흰따오기 어디쯤 둔 아쉬움 가슴에 담고/ 긴병꽃풀, 남생이 와글거리는 계절"은 우포늪의 풍경과 생명들을 나타내며, 그것을 만나는 것이 간절한 소망임을 표현한다. "그리운 얼굴로 만나기 위한 발걸음이/ 꿍꿍 고갯길을 넘어가는 소리를 뒤따른다"는 우포늪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기 위한 긴 여정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아쉬움을 나타낸다.

 이 시는 우포늪을 직접 걷고 경험한 것으로서 그 깊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다양한 감각으로 표현한다. 시인은 자연의 겉모습과 소리, 생명들을 통해 우포늪의 일부를 경험하더라도, 그 진정한 의미와 깊이를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자연의 생태계와 그 속의 존재들은 단순한 관찰과 경험을 넘어서는 깊이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진지한 접근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비틀거리는 것은 발걸음이 아니라/ 인정을 나눈 눈동자/

밑에서 열네 번째 하나 두울…/ 상하 구조가 같은 벌집같이 생긴 저기/ 저/

스물다섯, 스물네엣… 위에서 열두 번째//     

흔들거리는 것은 아파트가 아니라/ 세월을 마신 눈동자/ 좌우대칭이 닮은 옆에서 두 번째/

불 꺼진 저 집 아래 연속극에/ 시선을 둔 아내가 청력을 모으고 있을/

거실 불이 밝은 저기 저 집//     

꿈을 좇던 열정은 식었어도/ 꿈에 젖어 사는 집//     

추억을 공유하며 서로의 눈동자에/ 서로를 심어 놓고 사랑으로 가꾸는 집//     

내가 가야 할/ 내가 있어야 할/ 저 집으로 가기 위해 비틀거리는 눈동자는/

흔들거리는 아파트를 향해/ 마음 손이 먼저 현관문을 더듬는다//

                                                         - 「우리 집」 전문     


 가장의 귀가를 제재로 한 대표적인 시 작품은 김현승의 「아버지의 마음」과 박목월의 「가정」이다. 김시우 시인의 「우리 집」은 ‘고독하고’, ‘얼음과 눈이 덮인 길을 걸어온’ 가장이 더 세월을 지낸 후의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이 시는 아파트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그 공간에 깃든 감정과 추억, 사랑을 탐구한다. 시인은 단순한 건물의 구조를 넘어, 그 안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조명하며, 그 공간에서의 인간적 연결을 강조한다.

 1연에서 "비틀거리는 것은 발걸음이 아니라/ 인정을 나눈 눈동자"라는 구절은, 신체적인 비틀거림이 아니라 감정적, 심리적 불안정함을 의미한다. 여기에 따라 "밑에서 열네 번째 하나 두울…"과 같은 구체적인 수치 표현은, 시인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구조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그 집이 가지는 물리적 특성을 나타낸다. "상하 구조가 같은 벌집같이 생긴 저기"는 아파트의 복잡한 구조와 그 안에서의 삶의 복잡함을 상징한다.

 2연에서 "흔들거리는 것은 아파트가 아니라/ 세월을 마신 눈동자"는 아파트의 외적 흔들림이 아니라, 시간에 따른 감정적 흔들림을 강조한다. "좌우대칭이 닮은 옆에서 두 번째/ 불 꺼진 저 집 아래 연속극에/ 시선을 둔 아내가 청력을 모으고 있을"은 일상적인 풍경을 세밀히 관찰하며, 가정 내에서의 삶의 일면을 드러낸다. 이 구절은 가족과의 연관성, 그리고 서로의 삶에 대한 관심을 묘사한다.

 3연에서 "꿈을 좇던 열정은 식었어도/ 꿈에 젖어 사는 집"은 과거의 꿈과 열정이 사그라졌지만, 여전히 그 꿈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집을 의미한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도 여전히 감정과 추억이 깃든 공간을 표현하며, 그 집이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나타낸다.

 마지막 연에서 "추억을 공유하며 서로의 눈동자에/ 서로를 심어 놓고 사랑으로 가꾸는 집"은 집이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랑과 추억으로 가득한 장소임을 강조한다. "내가 가야 할/ 내가 있어야 할/ 저 집으로 가기 위해 비틀거리는 눈동자는/ 흔들거리는 아파트를 향해/ 마음 손이 먼저 현관문을 더듬는다"는 물리적 공간인 아파트를 넘어서서 감정적으로 집을 찾아가려는 시인의 노력을 표현한다. 이 구절은 마음과 감정이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으로 향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시는 아파트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서 그 공간에 담긴 감정, 추억, 사랑을 탐구한다. 시인은 아파트의 구조와 생활을 세밀히 관찰하면서, 그 공간이 가지는 심리적, 정서적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시는 집을 단순한 거주지로서가 아니라, 추억과 사랑으로 가득한 의미 있는 장소로 그리며, 그곳으로 향하는 마음의 여정을 표현하고 있다.  

   

해거름에 오거리 건널목 벤치에 앉아/ 곧게 뻗은 길을 본다/

신호에 따라 차량이 멈춰서고/ 오가는 사람의 그림자는 길게 드러눕는다/

바쁘게 달려가고 멈추는 저 많은 차/ 큰길로만 달려왔을까?/

좁고 굽은 산길로 달려오지는 않았을까?/ 묻지 않는다, 어느 길로 왔는지//     

어떻게 와서 나는 여기 앉아 있는가?/

사위를 둘러봐도 내가 걸어온 길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 기찻길 따라 바다가 보이는 산동네/

바다가 보이지 않는 변두리만 맴돌다 저쪽/ 

양옥집과 판잣집이 마주한 사잇길로 온 것 같은데/ 아파트 숲에 가려 사라져 버렸다/

돌아갈 길도 잃어버린 나는 무엇인가?/ 굽은 길은 펴고 좁은 길은 넓혀/

큰길은 더 큰 길로 살아 움직이고/ 고샅길, 자갈길은 기억에서 지워진다//     

붉은 노을도 사위어 가는 하늘에/ 거리는 하나, 둘 불을 밝히고/

내 옆에 선 당신은 어디서 어떤 길로 왔는가?/

모두가 걷고 싶은 큰길/ 새가 노래하고 꽃만 피었을까?/

가보지 못해 더 궁금한 큰길에 대한/ 아쉬움도 접고 내가 걸으면 내 길이 되는 비렁길/

내가 걷지 않으면 큰길도 내 길이 아닌/ 내가 선택한 길, 내게 주어진 이 길을 따라/

인생길 덧없다며 누구나 향하는 저 길//     

함께 걷는 길에는 손잡을 힘이 있다/

혼자보다는 둘, 여럿이 걷는 길에 서로를 토닥이며/ 말동무 되어 걸어가야 한다는 거//     

커튼에 가려진 저 길도 어둠 속에 잠길 때/ 세상을 향해 부끄럼 없이 살았노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마음의 길도 살뜰히 걸어가야겠다//

                                                              - 「길」 전문     


 이 시는 앞서 언급한 「강」과 연관된 작품으로 삶의 여정을 '길'이라는 상징을 통해 표현한다. 시인은 해거름에 오거리 건널목에서 길을 바라보며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회상하며 성찰한다. ‘길’은 단순한 물리적인 길을 넘어서, 삶의 선택과 경험, 그로 인해 형성된 인생의 궤적을 상징한다.

 시인은 다양한 길-큰길과 작은 길, 곧게 뻗은 길과 굽은 길, 아파트 숲에 가려져 사라진 길 등의 이미지를 통해 고난의 과정이 없는, 평탄한 듯한 삶에 의문을 제기하고, 특히 과거와 현재가 대비되며 속력 추구와 합리화라는 근대화‧문명화의 과정에서 정다운 인간다운 길을 상실한 것에 대해 성찰한다.

 이어서 시인은 3연에서 안락하고 편이한 삶의 길을 추구하기보다 “내가 걸으면 내 길이 되는 비렁길”, “내가 선택한 길, 내게 주어진 이 길”을 걸으며 주체성을 담지하는 순명의식을 보여준다. 4연은 인생무상이라는 평범한 진리에 순응하면서도 동행(제휴와 협력, 상생)의 손을 잡고 공동체적 삶에 대한 신뢰를 견지하며 상호격려와 상호소통의 당위성을 제시한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세상을 향해 부끄럼 없이 살았노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마음의 길도 살뜰히 걸어가야겠다"라는 다짐을 통해, 도덕적 순결성 추구와 동시에 ‘소이부답(笑而不答)의 경지를 제시한다. 이는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며, 부부작어인(俯不作於人: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음)하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시는 인생의 길에서 만나는 여러 갈림길과 선택의 순간들을 담담하게 회상하며,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내적 결의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마무리     


 이 시집은 자연과 인간, 그 사이의 심오한 관계를 중심으로 순수서정의 담론을 전개한다. 시인은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로 제시하며,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느끼는 정서와 사상을 자연 속에 투영한다. 시인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와 본질을 실존적으로 탐구하며, 그 과정에서 생명, 사랑, 기억, 고독, 희망 등의 다양한 주제를 노정하고 있다.

 시집의 후반부로 갈수록 시인은 더 내밀한 감정에 집중하며, 특히 이 시집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4부의 「강」과 「길」이라는 상징시에서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지 성찰한다.

 높은 언덕에 올라 도도히 흐르는 인생의 강을 관조하는 「강」과,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과 윤동주 「서시」의 두 시적 화자가 노년에 이르러 나지막히 대화를 나누듯 이중적 화음이 연주되는 「길」에서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통찰하는 시적 사유의 의미망 속 그 저변에 융융히 흐르는 시인의  순수서정의 미학을 감지할 수 있다. 비단 의미 영역뿐만 아니라 고도의 비유와 상징, 운율에 대한 섬세한 배려, 상호텍스트성의 도입 등 시적 형상화의 다양한 기법을 구사한 여러 시편에서 시문학의 완성을 추구하는 시인의 열정과 노력을 느낄 수 있다    



2024년 8월 시집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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