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삶의 애환哀歡을 진솔한 언어로 노래한 시인”
구숙희 시집 8집 시해설
“일상 속에서 삶의 애환哀歡을 진솔한 언어로 노래한 시인”
- 구숙희 시의 세계
시인∙문학평론가 김한빈
시간은 인생의 스승이라고 한다. 계절이 어김없이 바뀌고 세월이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의 한복판에 서서 시인은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고 자연의 변화가 주는 삶의 깨달음을 노래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인생의 여울을 건너간다. 시인은 정작 우리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추억과 그리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하며 독자들에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건네듯 진솔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때때로 엄습하는 삶의 허무를 실존적 자각을 통해 자기성찰의 자세로 극복하기도 한다.
이 시집은 4부로 편성되어 있다. 1부에선 ‘계절의 변화와 상념들’을 노래한다. 2부는 ‘일상생활 속의 시인’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3부에선 ‘자연물’을 제재로 다룬 시편들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4부는 ‘사람과 사람’을 주제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1부 계절의 변화와 상념들
2020년 겨울의 등을 타고/ 동면의 꼬리를 털며/ 긴 터널을 눈 비비고 나온//
실루엣 고드름 사이/ 먼 산 운무 가득 채워/
개울물 소리 흔들며/ 버들개지 눈 떠 봄 마중 나간다//
매화 분홍빛 사연/ 영춘화 잎사귀 노랑/ 노란 희망이 내 가슴 설레게 한다//
꽃가마 타고 오실 울 엄마*/ 마중을 나간다/ 꼬까신 신고 아기 걸음마 아장 아장/
곤줄박이 노래하며/ 꼬리 치켜세우고 폴짝 인사/ 붉게 타오르는 동백꽃 잎에/
불같은 사랑이 인다// 삘릴리 삘릴리//
* 울 엄마 : 봄
-「봄 피리 불면서」전문
봄은 부활의 계절이다. 만물이 겨울잠을 깨고 생동하는 대지에 새 희망이 가득하다. 긴 엄동설한의 고드름을 녹이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가 협주곡처럼 들린다. 봄은 분홍빛으로 새 생명을 알린다. 온 누리에 ‘삘릴리 삘릴리’ 봄 피리 소리가 울려퍼진다. 봄은‘꽃가마 타고 오실 울 엄마’이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시인이 지향하는 최고의 지순한 가치 대상이 어머니이다. 다정하게 ‘울 엄마’라고 호명된 어머니의 부활이 바야흐로 시작된다. 시인은 꽃신 신고 아기처럼 봄 마중을 나간다. 그래서 봄은‘불같은 사랑’의 서곡이다. 시인은 계절의 순환 속에서 자연과 일체가 된다. 봄의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형상화되어 생동감이 넘친다.
톡톡톡 여름 방죽에 걸터앉아/ 은빛 물살을 가르며 튀는 물고기 떼//
발아래 가까이 다가와 발을 간지럽히고/ 매미채라도 있다면 물가로 모여든 물고기/
내일 아침 찬반은 느끈할 텐데/ 떼로 몰려와 물놀이 한바탕하고 논다//
밤이 주는 까망 하늘에/ 어머니는 은빛 자수를 놓아/
하늘에는 은하의 별빛 내리고/ 바다에는 추억이 깔렸대요//
시끌벅적 추억의 메모장 속에 담는/ 또 하나의 페이지를 여는/
보석 주단을 깔고 아름다운 선율 깔고/ 곧 풀벌레들의 공연은 시작될//
한생 추억 먹고 살아가지요/ 숭숭 뚫린 대밭 위 낡은 창살에 기대어/
발 담그며 물장난 찰랑찰랑/ 물속 텀벙 들어가면 하늘에서/ 별빛이 지켜줍니다//
그 아릿한 추억의 장은 바로 방죽 밑/ 풀벌레들 소리가 협주곡 되어/
지금도 귓전에 아련히 들려옵니다//
- 「여름밤」전문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여름날의 자연은 청춘의 계절이다. 방죽 밑 풀벌레 소리 자욱한 여름밤의 추억을 회상하는 시인은 이미 찬반을 걱정하는 일상 속 주부이지만, 자연이 선사해주는 여름날의 향연에 동화되어 있다. “밤이 주는 까망 하늘에/ 어머니는 은빛 자수를 놓아/ 하늘에는 은하의 별빛 내리고/ 바다에는 추억이 깔렸대요//” 특히 이 구절에서 시인의 자연에 대한 모성적 인식이 잘 드러난다. 여기서 ‘어머니’는 삼라만상을 주재하는 절대자이다.
호수에 비친 가을 그림자/ 한 잔 술에 취하고/
단풍잎에 취해 발그레/ 고통으로 얼룩진 세월의 아픔을/
대신 짊어지고 속만 끓이시던/ 어머니의 한숨짓던 모습이 아련하다//
기약 없는 서러운 날들/ 저 달은 알까/
누구를 애태워 우는지도 모른다/ 기약 없는 서러움//
오지 않을 친정 오라비 기다리다 지친 달처럼//
자식의 목숨 연장 기도 끝에/ 어미는 소원을 빌고 또 빌었네//
애태웠던 지난날들이 이제는 저물어갔네/ 진작에 생각하였다면 하는 아쉬움/
무슨 소용 있나 그 눈물 닦아 드렸어야 했는데//
뒤늦게 무덤 옆에서 목 놓아 울음 울고/ 구름 따라 빗방울 흘려 놓고/
어깨짐 다 내려놓고/ 애닲게 목 놓아 그리워하는/
이 가을 그리움만 더해 가네//
- 「가을 그림자」전문
이 시는 추석을 앞두고 성묘 간 시인이 어머니 무덤 옆에서 살아생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애절히 통곡하는 사모곡이다. 시인은 이 시작품을 울면서 지었을 테고 이 시를 다시 읽어도 울면서 읽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한의 정서 한가운데에 ‘어머니’가 있다. 아라리고 스라리는 기억의 한복판에도 ‘어머니’가 자리할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드릴 수 있는 자식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수에 가득 찬 가을의 그림자는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 덕분에 살아남은 시인에게 아쉬움과 그리움만 더해 간다.
2부 일상생활 속의 시인
울적할 땐 종로 6가 화초 시장 한 바퀴/ 휘돌아 나오면 그만한 기쁨이 또 없지//
마음의 편안함 얻고 미소 짓게 되니/ 그 기쁨 무엇에 비하리//
휑하고 머리가 핑그르르 돌 때/ 마음 밭 이곳에 오면/ 창공에 닿을 가벼운 발걸음//
미소 천지/ 웃음 천지/ 보는 것만으로도/ 이게 다 내 것이려니 하고 살아야지//
-「종로 6가 한 바퀴」전문
사람마다 기분을 전환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시인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장소는 역시 시장이다. 이 공간의 특성은 사람들이 붐비고, 서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삶의 애환이 담겨 있고, 성실하고 근면한 생활력을 보여주는 데 있다. 활기찬 시장 동네의 상인들과 장 보러 온 손님들의 웃음소리는 요즘 말로 ‘살아있다’. 게다가 화초 시장의 다양한 꽃들의 향연은‘미소 천지/ 웃음 천지/’이다. 지상에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으랴. 화초의 심성을 닮아 화초를 사랑하는 시인은 화초 구경만으로도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기쁨과 위안을 얻는다.
3월의 마지막 주/ 수많은 희로애락을 실어 나르던/
고삐마다 사연 가득 추억이 배여 있는/ 덜컹거리며 마지막 고별하는 낡은 꼬리들/ 차창 밖 경적 소리는 이제 멎으려고 한다//
반대편 새 선로로 운행할 준비 완료/ 예비 운행 중//
경고음은 아랑곳없이 수학여행 기분/ 슬픔과 기쁨이 한 덩어리져 어우러진다//
동네 노래방 가족이 총출동 시끌벅적/ 춤바람 신바람 노래 바람으로/
아침 댓바람부터 목청껏 목이 터져라 / 흥에 겨워 노래 부르며 춤을 춘다//
기차 고삐 한 칸은 우리들의 것/ 차장 완장 차고 한 번씩 점검 오면/
싸 온 음식을 나누며 먹는 척 딴청부리다가/ 검열을 피하고 다시 신나는 노래로/ 소리 높여 목청을 내뿜는다//
연신 몸을 신나게 흔들어 댄다/ 모두들 가수 겸 댄서가 된다//
주부들 스트레스 다 날리려 기차 여행/ 도착하자마자 토속음식 장터에서/
배불리 먹고 ‘행복 열차’라 써놓은/ 깡통 열차로 옮겨 타 신바람을 가르며/
들바람 둘러 채며/ 산벚과 사진을 찍는다//
물레방아는 돌고/ 봄꽃들은 피어올라 사방 눈웃음 짓고/
즐거운 한낮을 걷다 보니 출출하여/ 한 짐 싸 온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마신다/
행복한 하루를 보내며 웃음꽃을 피워/ 모두 한마음으로 어른이 아이가 되는 날/
마지막 열차를 탄 우리들 추억은 깊어만 간다//
-「정선행」전문
3월 말이면 남녘의 벚꽃 소식도 들려오고 바야흐로 온천지가 울긋불긋 꽃 대궐이 된다. 음력 삼월 삼짇날이면 옛 여인들은 화전을 먹었다. 우리 고전 시가 ‘덴동어미 화전가’도 있다. 전국 명승지에 상춘객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붐빈다. 동네 주민들이 어울려 강원도 정선으로 기차 여행을 나서니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처럼 신난다. 그날만큼은 모두가 가수요, 춤꾼이다. 지난 겨울날의 움츠렸던 일상의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린다. 시인은 상춘 기차 여행을 따듯한 정을 담아 생생하게 묘사한다.
어두운 길만 걸어 온 육십/ 그늘지고 어두운 그림자만/ 뒤따른다/
슬픈 얼굴에 서린 서글픈 빛이/ 파랗게 서 있다//
세상 사람들과/ 어렵게 서서 버틴다//
그 속에 머물러 살다간/ 바보 같은 삶/ 굴레를 벗어나려 몸부림친다//
밤을 까맣게 태워버린다/ 고뇌에 찬 잔영 태워 말리자/
힘을 내자/ 앞만 보고 걷자//
마지막 하나 남은 세상/ 밝게 빛나게//
-「길 위에 서다」
우리의 삶은 아이러니다.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뇌는 끊임없이 교차한다. 아이러니에는 두 가지 상반된 목소리가 있다. 위의 시「정선행」은 기고만장하고 자만심에 가득 찬 허장성세의 알라존의 목소리라면「길 위에 서다」는 의기소침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에이런의 목소리다. 이 두 목소리가 함께 드러난 시가 아이러니의 시다. 시인의 시편들 전체에도 이 두 상반된 목소리가 함께 들어있다면 시집에 수록된 상당수 시가 아이러니의 시다. 아이러니는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겉과 달리 시인이 실존적 자각을 통해 내면을 성찰할 때면 에이런의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시인들은 언제나 ‘힘을 내고’ 희망을 품으며 현실의 질곡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서두에 제시된 ‘어두운 길, 그늘지고 어두운 그림자만 뒤따르는 길’은 고난으로 점철된 삶이요, 후회와 아쉬움만 남은 한평생이다. 그럼에도 ‘밤을 까맣게 태워버린다/ 고뇌에 찬 잔영 태워 말리자/’며 정화의 불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시상을 전환하고, ‘힘을 내자/ 앞만 보고 걷자// 마지막 하나 남은 세상/ 밝게 빛나게//’라며 밝음의 이미지를 대조적으로 내세워 실존적 자각을 통한 현실 극복의 의지를 다짐한다.
3부 자연물
의엿한 군자님/ 한겨울 서리 맞고 절개 지켜 선//
아침에 눈 뜨면 같이 보는 해로구나/ 반기어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온화함//
속까지 시원한 청청함이여/ 씩씩한 군인이 잠자는 나를 위해/ 총대 메고 지켜 셨느니//
하늘의 별과 같고/ 땅 위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봄 오니/ 새끼 치고 동냥 얻어 동네방네 화들짝/ 뿌리내려 이만하면 만족이지//
지난날 우러러 받들던 신념의 달/ 그가 우리 마당에 앉았네//
-「군자란」 전문
화초를 사랑하는 시인은 특히 난을 좋아한다. 난이 품고 있는 군자의 성품을 흠모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굳세고 속으로는 청정한 기품을 가진 군자란의 의연한 모습은 엄혹한 계절을 딛고 곧은 주체성을 견지해온 시인의 자화상이다. 한평생 시인이 추구해온 삶의 방향이다.
땡볕 물 한 방울 없는 섬/ 하늘을 올려다본다//
너도 나 닮았느냐/ 끈질긴 운명처럼/ 하늘 받쳐 앉아/
머리에는 하늘 우산 두르고/ 이슬 머금고 버틴 모진 목숨/
그래서 귀한 대접 받는 몸인가//
지붕은 하늘 닿은 모자/ 낭떠러지 내려다본다 아찔/
닭 쫓던 강아지 지붕만 올려다보며/ 송아지도 따라 하품하는//
지붕 위 목마름이여/ 너도 우리네 인생 닮았네/
힘들게 살다가는 한 생/ 초로 같은 생//
-「기와지붕 위 와송」
이번에는 ‘소나무’를 바라본다. 고통스러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겨내온 소나무는 경외의 대상이다. 한편 그 대상과 시인은 곧 주객일체의 경지에 이른다. 눈비 맞으며 이슬 먹고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온 소나무는 물심일여 곧 시인 자신이다. 니체는 자기운명애를 ‘아모르 파티’라고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고통 없이 무엇으로 만족을 얻을 것인가’라고 했다. 고난으로 점철된 우리네 삶을 껴안고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깨달음을 표현한 시작품이다.
문지방 두 뼘쯤 위/ 제비 부부 둥지를 틀어/ 알을 품고 난 후/
어느새 새끼로 자라고 있었다/ 제비 부부는 연신 바쁜 나날이다/
엄마 제비는 자신은 먹을 시간조차 없었고/ 굶어 가며 새끼들 키우느라 여념 없었는데/
얼마지 않아 아빠 제비가 없어지고/ 허기진 채 혼자 먹이를 물고 왔다 갔다//
어느 날 새 아빠 제비가 등장/ 이삼일 지나 새끼 한 마리 떨어져 죽고 말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입속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며칠 후 또 한 마리의 새끼가/ 입속 가시를 물고 죽고 말았다//
의붓아비 제비가 한 짓 같았다/ 문득 생각을 연결해 보니/
역시 난 명탐정인가 보다/ 제비 부부는 집 밖 그루터기에서/
다투는 소리가 가끔 나기도 했다//
새 아빠 제비는 전혀 일하지 않았다/ 엄마 제비는 아기 새들 없는 곳에서/
부부 싸움을 심하게 하더니/ 집을 나간 얼마 후/
죽었는지 돌아오지 않았다/ 남은 두 마리의 새끼마저 굶어 죽고 말았다//
어쩜 인간사와 많이 닮아 있어/ 그들 부부 사이에도 비극이 되어버려 애달프다/
구슬픈 사연이 뇌리를 스치곤 한다//
- 「제비 부부의 비애」
제비 가족의 비극을 서사적 기법으로 그린 시작품이다. 제비 부부와 새아빠 제비와 남겨진 제비 새끼들을 요즘 세태의 사람으로 치환해도 좋다. 가정이 무너지고 가족이 해체되는 이 시대 병든 모습을 우화적 이야기체를 활용해서 담담히 노래한다. 시인의 관찰력이 대단하다.
4부 사람과 사람
소리쳐 불러 보았지요/ 그녀는 산으로 갔지만/
산에 살지 않습니다/ 해와 달, 별나라에도 없습니다//
아끼던 소유물 다 버리고/ 지아비와 자식 다 버리고/
사랑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갔습니다//
무소유를 부르짖고는/ 흔적을 지우며/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어느 별에서 살고 있는지//
자칭 글래머라 했던/ 그녀 가슴이 작아지고/
없어졌다고 전해왔다/ 낮아진 키/ 이삼십 킬로그램 적어진 몸/
그때 사악하던/ 그 한 사람이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가냘프고 호리호리한/ 순수한 한 사람이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이제 나는 당신만한 체구라 말하고/ 나를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 했다//
가진 거라고는/ 회색灰色 몸둥아리뿐/ 회 두루마기에 회灰 바랑만 있다구요
회 구름과 같이 시주하러/ 나돌아 다닌다구요//
가난 때문에 통했던 그와 나/ 간밤에 산사에 눈이 찾아왔던가요/
조암造巖스님이라 했던가요//
이제 남은 건 젖은 손수건뿐//
- 「그녀」전문
조암造巖스님이라는 여승의 삶을 한 편의 시에 담았다. 그 스님이 돌아가시고 산사에 남은 것은 눈물 젖은 손수건 한 장이라는 구절에서 ‘공수래공수거’의 삶의 실체가 느껴진다. 과거의 인연으로 몇 번 만난 그 스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불도를 수행하며 해탈을 염원했을 것이다. 자기 몸에서 세속의 욕망이 사라지고 ‘순수한 한 사람’으로 재탄생하여 오로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구름처럼 떠돌았던 스님의 압축된 일대기이다.
언니는 나이가 열여섯에 홍역을 앓았다 했다/ 허약체질로 태어나 병치레가 잦았으며/
심해진 홍역 재발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오빠도 그랬다/ 당시는 홍역이 재발하여 그랬다 한다/
어머니 생각은 동네 어른들이/ “저 애미는 아이들 치송 잘 못하네” 라고/
할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에/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았다 한다//
내리 넷을 키워냈지만/ 내다 버린 아이가 더 많았다는데//
병원 한의원 한 번 데려가 보지 못하고 보낸/ 아쉬움에 평생 눈물 뿌리며 슬픔으로/ 아린 가슴 안고 살아오셨다/
한 아이는 살아있는 아이로 보일 셈으로/ 거적때기에 싸서 밤이 이슥하면/ 파묻을 냥/
너도 떠나려나 했지만 겨우 붙들어 놨다/
그때부터 건강한 체질이 아니었음을/ 늘 염려하셨다//
어머니의 기도 덕으로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 같다//
-「어머니의 기도」
자서전과 같은 시다. 자기 전기에 또 다른 한 사람이 언급되어야 한다면 분명히 어머니일 것이다. 과거 가난하고 병 많던 시절에 가족을 위한 헌신과 희생을 하신 분이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늘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어머니는 시인의 언니와 오빠를 어린 시절 병마로 떠나보내고 더 어린 시인을 겨우 붙들어 놨다. 그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의 기도 덕으로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 같다.’
젊고 풋풋하던 청년/ 기웃거리던 세월 지나/
해맑은 미소가 그리도 정겨워/ 가족으로 받아/ 사랑으로 채워가며//
처음엔 몰랐지만/ 투박하고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풀어지고/
정들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 되었지//
장모님이라 않고 어머니라 부르니/ 더 정겨우이/ 가족이 맞구나 싶었다네/
생일에 화분을 보내와/ 꽃대가 돋아 꽃망울이 터져 나와/ 희망의 꽃이 만개하여/
큰 기쁨 안겨 주고/ 어느새 사랑의 꽃이 피고 있었지//
옛말에 잘 키운 아들/ 사돈의 아들이 된다는데/
사돈이 보내준 내 아들/ 백년손님 되어 그리 살갑다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 내 사위 최고라네//
- 「백년지객」 전문
사위 자랑이 정겹다. 백년손님이라는 사위가 처음엔 다소 이물스러웠어도 곧 정이 들고 사랑스러운 가족 구성원이 되었고, 화초를 사랑하는 시인 장모님에게 생일 선물로 화분을 보내고 그 화분의 꽃이 피니 희망과 사랑의 꽃이 핀 것일 수밖에. “사돈이 보내준 내 아들/ 백년손님 되어 그리 살갑다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 내 사위 최고라네//” 사위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하는 장모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시집은 구숙희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이다. 다산의 시인 조병화를 닮아 쉽고 아름다운 언어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겪는 삶의 희노애락을 노래한다. 중국 고전 『시경』이 그러하듯이 갑남을녀의 삶의 애환을 평이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시어로 포착한 수작들이다. 이 시집이 시인 자신의 곡절 많은 삶을 이겨낸 한편의 거대한 자서전이라면 남몰래 흘린 눈물 자국을 지우며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나서는 미래지향적 고백서이기도 하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생전에 이 시집을 읽고 구숙희 시인을 평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그렇다. 미당은 구숙희 시인을 위하여 이 시구절을 예비하였나 보다. 아무튼 이 시집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마음속 깊은 공감과 위안을 주는 아름답고 따듯한 체온을 품은 시편들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