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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털 Nov 01. 2021

MBA 중반부에 접어들며

내 인생 어디로 가는가

21년 5월 14일에 작성한 글. 

MBA의 전반전이라 할 수 있는 5개월 동안, 내 인생은 말 그대로 폭풍처럼 흘러갔다. 그 중 굵직한 세 갈래 바람을 기록한다.




1. 평생을 좋아하던 "예쁜 것들"을 직업 삼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예쁘고 귀엽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했다. 유치원 다닐 때는 귀걸이 달린 머리띠와 빨간 구두를 좋아했고, 중학생 때는 바닐라비, 티니위니의 -그땐 그랬지- 옷을 사기 위해 시험공부를 했다. 고등학생 때는 고속 터미널 지하상가를 누비며 만 원짜리 옷과 신발들을 사 모았고, 결국 대학에서 패션을 부전공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패션 업계에 발을 들였다.


처음 MBA를 생각했을 때도, 나는 국내 백화점용 브랜드에서 벗어나 글로벌 브랜드에 가는 게 꿈이었다. LVMH, Kering 같은 럭셔리 브랜드 하우스의 홍콩, 싱가포르, 도쿄 지사에서 일하는 모습을 그렸고 지원서에도 그렇게 되겠다고 썼다. 사실 인시아드보다 먼저 합격했던 학교들은 럭셔리 매니지먼트 과정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학교들이었다.


하지만 인시아드 MBA에 와서 보니 내 앞에는 상상보다 훨씬 많은 길이 놓여 있었다. 이건 마치 어두울 때는 주위에 길이 두세 개 밖에 안 보였는데, 누가 촛불을 켜서 갖다 주니 또 다른 초가 있었고 보이지 않던 길도 더 많더라는 그런 가사 같은 이야기. 같은 반 친구들의 백그라운드만 간접 경험해도 수많은 길이 있었고,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기업 웨비나, 리더십 스피치로 학생들이 자신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길 부추겼다.




2. 상상도 못했던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내가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업계는 컨설팅이었다. 인시아드 MBA는 졸업생을 컨설팅 펌에 많이 보내기로 유명하다. 한 학기 졸업생 500명 중 100명가량이 컨설팅 펌에 갈 정도. 그렇다 보니 인시아드 학생이라면 컨설팅 리크루팅에 발을 안 담가보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관련 환경에 노출된다. 썸머 인턴십 리크루팅이 시작되는 4월에는 컨설팅 3사인 MBB (McKinsey, BCG, Bain)에서 하는 웨비나와 네트워킹 세션 만으로 일주일 스케줄을 채울 정도였다. 그 회사들의 이름값, 실제로 만난 구성원들의 스마트함, 서로 존중해 주는 조직문화, 무엇보다 강력한 연봉에 이끌려 나도 이 대세에 동참하게 되었고, 실제로 나의 4월은 컨설팅 리크루팅이 다였다. 결과적으로 두 곳에서 최종 면접까지 갔다가 탈락했다. 하지만 리크루팅 과정에서 느낀 바로는, 올 가을에 풀타임 리크루팅에 다시 한번 도전할 것 같다.

그리고 뜬금없게도 이번 여름 인턴십은 제약 회사에서 하게 되었다. 우연히 이 회사의 웨비나를 듣게 되었고, 회사 사람들의 퍼스널리티와 MBA 트랙이 별도로 있다는 것에 끌려 지원한 후 감사하게도 기회를 받은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이지만 업계 리서치를 하고 면접을 보고 현직자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썸머 인턴 2달 정도는 경험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꼈다. 전환되려는 노력보다는 이 업계 자체를 배우고 느끼는 데에 에너지를 써야 할 것 같다. 갑작스러운 제약 업계에서의 경험이 내 인생을 어디로 데려갈지!



3. 파리에서 싱가포르로 이사했다

4월의 폭풍 같은 리크루팅과 스콜 같은 기말고사를 끝낸 후, 캠퍼스를 옮겼다. 백신을 연령 제한 없이 맞을 수 있고 테라스 식당이 열리기 시작하는 프랑스를 뒤로하고, 100가지 서류를 제출하고 200만 원 정도를 지불한 후 정부가 랜덤 지정해 주는 호텔에서 3주간(!) 격리를 해야 하는 싱가포르에 온 것이다. 2021년을 그대로 끌어안은 삶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타이밍에 있어서는 내가 운이 없었던 것이고, 사실 나는 프랑스에 있는 4개월 동안 간절하게 싱가포르에 가고 싶었다. 머리가 크고 나서 겪는 마이너리티로서의 삶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그 와중에 아시아 친구들을 만나면 마스크 위로 눈만 마주쳐도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이 또한 극복해내는 슈퍼 코리안이었다면 좋았겠으나 나는 그렇지는 못했고, 싱가포르에서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나의 배움과 경험을 넓히는 데에도 도움이 될 듯했다.

그래도 보고 싶은 퐁텐블로 친구들!




폭풍 같은 MBA 생활 속에서 정신줄을 똑바로 붙잡고 성실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나는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부딪혀 수업, 시험, 소셜 라이프, 리쿠르팅, 가족 등 나에게 주어진 여러 의무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과 집중을 수차례 반복해야 했고, 그 와중에 프랑스의 부동산법과 싱가포르의 코로나 정책은 나의 옆구리에 간간이 잽을 날려주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겪어봐서 아는 진실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시기를 방관하지 않고 적어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이제 5월 말에 격리가 끝나면 진정한 의미의 싱가포르 생활을 하게 된다. 잔잔한 프랑스에서의 삶을 벗어나 싱가포르에서의 뉴 라이프가 즐겁기를 소망해보며, 과연 내 인생이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켜봐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싱가포르: 초록 식물과 파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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