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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룩 Jul 08. 2021

자유를 좇는 알고리즘

Project. ZIP 6월 전시, 박성준 전

Set the Rule


 당신은 스스로 정한 규칙이 있는가?


  어떤 것을 해내겠다, 혹은 이것은 하지 않겠다 따위의 의지와 목표를 담은 것이 아니라 어떤 규칙성이 어긋났을 때 느껴지는 피로도를 회피하기 위한 스스로의 방어기재로서 규칙말이다. 살면서 생기는 나만의 기준과 습관이랄까.


 1) 물건을 놓는 위치, 혹은 배치   

 2) 자기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 혹은 범위  

 3) 관계를 시작하고 맺어가는 습관

 4) 아침에 눈을 뜨고 문 밖을 나서기까지의 루틴

 규칙은 경직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삶을 온전히 누리기 위한 시스템이다. 현재를 기준으로 평생 쌓아온 경험으로 말미암아 형성된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본인이 가장 편한 방식으로, 가장 익숙한 형태로 구축해간다. 그것이 공개적이든, 은밀하든 간에 우리는 삶의 방식을 설정하기 마련이다.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수많은 가설들 중에 검증받은 것들이 현재 '나만의 규칙성'으로 남는다.

 물론 규칙이라고 말하기에는 소박하고 습관이라고 말하기에 꽤 이성적인 이러한 행동양식은 꾸준히 변한다. 그럼에도 우린 각자가 가진 이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면서 누군가를 특이하다고, 자유롭다고, 혹은 평범하다고 느낀다. 오늘 소개할 수집가는 내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자유롭고, 또 그 어떤 사람보다 꾸준한 사람이다. 자유롭기 위한 규칙들을 설정해놓은 모순덩어리. 우린 그의 단출한 수집품들로 그가 좇는 자유와 그 사람이 가진 알고리즘을 이해해본다.


 그는 바라다. 불교의 우담바라에 바라를 따왔고,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한다.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꽤 많은 종교를 따르고 있다. 


드러냄 

 

 전시장을 세팅하는 바라는 보면 자신의 방안에 놓인 그대로를 재현하고자 기억을 더듬는다. 집에 있는 찬장과 그의 수집품들을 DP하는 모습은 마치 장인이다.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 장인이었고, 섬세한 아키비스트였다. 이전 전시자들은 전시장 구성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지만 그는 본인이 편하게 느끼는 그대로를 재현하고자 했다. 자신이 가장 편안한 상태로 감상하는 그 상태 그대로.

 앞서 말했듯 그는 정말 자유롭다. 그리고 자유를 꿈꾸고 자유를 추구하는 본인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무역업을 하면서도 새벽과 밤에는 아버지의 목장일을 돕는다. 돕는다기 보다 스스로 목장일을 선택했다.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것도 그의 선택이다. 바라는 본인이 선택하고 책임을 지고, 또 실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본인의 '드러냄'이 보다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스스로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규칙들이 꽤 많다. 견디지 못하는 것을 마주하지 않기 위한 자기만의 방을 구축해놓았다. 그것이 굳이 남들에게 공감을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는 그 선택과 실행, 책임을 지는 행동까지 본인의 결정 권한, 범위 안에 두고 싶었던 거다. 18세기 프랑스 자유주의 정신이랄까..

  

여행과 술


 바라의 수집품은 여행에서 모은 술병 미니어쳐다.

 바라와 여행은 떼어놓을 수 없다. 그는 독립적인 여행을 추구한다. 많이 소비하고 돌아오는 여행이 아니라 부딫히는 여행을 추구했다. 최소한의 금액을 가지고 온전히 그 나라를 느끼기 위한 여행을 즐긴다. 소비를 위한 여행이 성행하는 요즘 그의 여행은 불확실하고 또 안전하지 않다. 엄두를 낼 수는 없지만 분명 고리타분하지 않았으리라.

 여행에 딸려오는 것은 술병 미니어처였다. 사실 그 미니어처들은 한국에서 구하는 것도 가능할 정도로 익숙한 것들이다. 미니어처는 분명 술이 들어있지만 마시는 용도가 아니다. 원본보다 훨씬 작은 크기기로 만들어진 미니어처는  온전한 음주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술을 담고 있는 모순적인 녀석이다. 왜 굳이 그는 여행지에서 술병 미니어처를 사왔을까? 물론 술병만 있는 것은 아니고 체게바라가 그려진 담배(그는 비흡연자다), 러시아에서 파는 미니벨도 있었지만 대체로 기념품은 아니다.

 우린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 나라를 상징하는 기념품을 사온다. 기억보다는 기념. 추억보다는 증명의 용도일 것이다. 바라는 우리 일상에서도 볼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사왔다. 여행지의 전략과 크게 부합하지 않는 미니어쳐들, 단순히 생각했을 때, 첫 단추가 꿰어진 순간 그 행위는 규칙이 되었을 테고, 자신만의 방에 전시가 되기 시작했을 것이라 예상해본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사온 것은 기념품이 아니라 기억의 오브제였다. 그는 여행에서의 사건들을 기억한다. 그 때의 감정을 기억한다. 미니어처들은 기억을 소환하는 연성 재료다. 알고리즘이다.


 미니어처와 그것에 담긴 바라의 기억과 감정은 그만의 방 한 켠에 조명을 받고 서있다. 추억을 소환하는 오브제가 기억의 주인만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마치 쓰임을 알 수 없는 것들이 요란하게 배치되어 있는 무속인의 방과도 같다.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우린 바라의 삶을 그의 이야기들을 통해 이해하고 또 그의 삶의 방식을 사랑한다. 그의 속내를 완벽하게 알 수는 없어도 우린 그가 추구하는 자유와 도달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니까.


 바라의 천진함, 자유로움, 또 그 속의 규칙성을 사랑한다. 마치 자유가 경쟁의 동의어처럼, 책임을 회피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린 우리 시대에 바라가 추구하는 자유는 정말 특별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라의 자유를 존중하고 또 동참한다. 낭만과 자유를 추구하기 위한 당신의 열렬한 채찍질로서 규칙성과 일관성은 나에겐 다신 없을 특별함이다. 비교로 인한 낙담, 혹은 우월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온전히 나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유는 소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태도다. 나에게 집중하는 태도가 자기만의 방, 규칙, 알고리즘을 만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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