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한 웹툰 작가가 네이버 예약을 통해 선착순 150명을 뽑아 사인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그러나 예약 시작 시간이 잘못 설정이 되어, 예약에 실패한 사람들이 생겨나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이에 작가는 사과문을 올렸고 그 사과문에는 “예약 과정 중 불편 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사과문의 의도와는 다르게 ‘심심한 사과’의 정확한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심심한’을 ‘재미없는’과 동일한 뜻으로 받아들여 ‘이 상황이 심심하냐’라는 등의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비난에 대한 반발 또한 나타났는데 ‘심심한 사과’의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작가를 비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일어난 반응은 애초에 사과문에 어려운 표현을 쓰는 것이 잘못이라는 입장이었다. 작가는 결국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는 표현이 들어간 두 번째 사과문을 올리게 되었다.
이 기이한 연쇄적 사회현상은 여러 매체를 통해 한국 및 해외 여러 곳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 사건과 같이 거론되는 화두는 문해력(文解力) 저하였다.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고 책이나 신문을 읽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어 사람들의 문해력이 낮아졌다는 것이 주요 매체들의 견해였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문해력만 따지기는 어려운 것이, 문해력만이 문제였다면 사람들은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사전이나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는 점과, 이런 표현을 썼다는 것으로 작가에 대한 비난이 일어났다는 점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이 사건의 원인은 ‘다른 언어 영역에 대한 배척 본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 문화권이나 국가에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언어도 달라진다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집에서 편하게 구어체와 비속어를 쓰는 나도, 회사에서는 전문적인 용어로 메일을 쓰고 발표를 한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날 때는 언어, 문화, 역사 등에 관련된 주제가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에, 그 주제에 맞는 언어를 주로 쓰게 된다. 만약 내가 직장도 없이 가족과 친구들하고만 종일 같이 있다면, 굳이 더 많은 단어를 배우거나 이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화 주제가 언제나 비슷할 테니까.
그러나 현대 사회의 인간은 단순히 한 환경에만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여러 환경을 전전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상호 간 언어의 영역을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내가 A라고 말하는 것을 어떤 사람은 A-1으로 해석을 하기도 하며, 서로 알지 못했던 영역에서 온 언어들이 만나 충돌을 하기도 한다. (너 왜 그런 식으로 말해? 등) 그런 과정에서 본인과 타인이 가진 언어의 영역을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성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언어의 간격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본인의 언어영역이 침범당한다고 인지하는 사람도 있다. 타인의 언어가 본인의 언어를 침범한다는 사고방식은 다른 언어 영역을 적극적으로 배척하고 자신의 언어 영역만을 고수하거나 심지어 강요하는 모습을 드러내게 만든다. 이를 보고 이기적이라거나 반지성주의에 눈이 멀었다면서 힐난할 수도 있겠으나, 사투리를 사용한다고, 원어민 억양이 아니라고, 외국어를 쓴다고, 외래어가 우리말을 오염시킨다고, 거부감을 드러내거나 배척하는 모습이 아직도 흔한 것을 생각해보면.......인류는 그 동안 본인의 언어 영역과 다른 언어 영역을 내편과 다른 편, 침범과 방어로 나누는 기준으로 삼아왔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건 유전자 속에 숨겨져 있던 우리의 본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내가 운영 중인 한국인-한국어 학습자 언어공부 모임에서도 다른 형태의,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여기에서는 서로 간의 문법 교정 / 발음 피드백을 교환하며 공부를 하는 곳인데, 유독 신규 회원에게서, 특히 한국인 회원에게서만 자주 보이는 모습이 있다. 한국어 학습자의 언어 영역을 본인이 규정하거나 교정하려는 모습이다.
한국어 학습자가 한국어 표현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고급스러운 표현을 사용하려고 하거나, 혹은 드라마에서 들어본 비속어에 대해 질문을 하면
“이런 표현은 어려우니까 알 필요 없어요"
“이런 표현은 나쁜 말이니까 배우면 안 돼요.”
“이런 말은 한국에서 생활하면 안 쓰니까 배울 필요 없어요.”라면서, 본인이 가진 언어적 잣대를 휘두르며 학습자의 노력과 호기심을 막아선다.
그들은 진심을 담아서 주는 피드백일수도 있겠지만, 이건 다른 언어 영역을 배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행동이다. 정작 한국어 학습자가 모임 밖에서는 어떤 한국어 표현과 언어를 사용할지에 대한 파악도 하지 않은 채 ‘나의 언어 영역에서는 저런 단어들이 없거나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으니, 너도 쓸 필요 없다’라고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언어 영역 및 언어가 사용되는 환경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 모습은 한국어 학습자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보여서는 안 될 모습이다. 오히려 다양한 언어의 영역들을 알려주고,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정확한 대상과 상황을 안내한 다음, 그 사용방안은 각자의 재량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다방면으로 적용가능한 해결책을 여러모로 모색해봤지만, 어떤 것이 좋은 해결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직접적으로 부적절한 부분을 알려주려고 하면 오히려 반감이 생겨 ‘언어 영역의 침범’이라고 인식할지도 모르고, ‘이런 표현 알아두면 좋아요’라거나 '이러한 언어의 영역이 있어요'라고 말을 하자니 제대로 받아들일지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어 공부도 그렇지 않던가? 중요한 영어 표현이라고 누군가 알려줘도 실생활에 쓸 일이 없으면 쓸모없는 언어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글을 쓴다거나, 가르치려드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직접 말하기보다는 인터넷 게시물이나 유명한 구절 등을 통해 상대방이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예전에 알고리즘을 통해 알게 된 ‘주둥이방송’이라는 유튜버가 방송 중에 한 이야기를 첨부함으로써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려운 말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다. 맞춤법 틀려도 사는데 지장 없다라고 말하는 친구들은, 왜 그러냐면 너네가 끼리끼리 놀아서 그래. 보통은 잼민이들이 그러거든요. 넌 아직 잼민이라 그래. 니들이 놀아봤자 그냥 한두살 형들이랑 놀잖아. 저는 사회 나갔는데도 잘 모르겠는데요. 그거 진짜 끼리끼리 놀아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