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차
오늘은 할머니의 기일이다.
청주 큰아버지댁에서 제사를 지낸다.
몇 주 전부터 할머니가 꿈에 가끔 나왔다. 오늘이 가까워져서인가보다.
나는 우리친가 사람들을 만나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늘 긴장된다.
아빠 이야기를 꺼낼까봐, 나와 나의 형제들과 나의 가족들이 잘 살고있는가 평가받을까봐.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잘못은 우리 아빠가 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눈치가 보이나 모르겠다.
아마도 일종의 가스라이팅인가보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아빠가 다른 형제들에게 짐이고 걱정거리이니 나는 그러면 안되었다. 나의 형제들은 그러면 안되었다.
오늘도 준비해서 출발하려하니 배가 아팠다. 긴장하고 초조하면 배가 아프다.
그래도 할머니를 만나러가는 길이라 생각하고 출발했다.
오랜만에 간 큰집이 북적북적했다. 어른들과 나의 사촌들 그리고 우리아가와 조카들.
내가 어쩌면 무서워했던 친가 어른들은 우리 아이에게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 이뻐해주셨다.
나의 아이에게 사랑한다 말해주는 어른들을 보니 그래도 가족이구나 싶었다. 나도 가족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적에도 나에게 이쁘다 사랑한다 말해주셨던 어른들이다.
할머니가 살아계시면 좋겠다. 할머니도 나의 아이에게 이쁘다 사랑한다 말해줬을텐데.
아직 하늘나라가 뭔지, 죽음이 뭔지 모르는 우리아가다. 하늘나라가 우주쯤 되는 줄 알고있다.
"시현이 할머니 할아버지는 평택에 계시지? 엄마도 할머니가 있다? 그런데 멀리 있어, 하늘나라에 있어"
"저 하늘나라에 가면 우주선 타고 토성에 가볼거에요. 토성을 제일 좋아하니까요."
"하늘나라에 가면 토성에 갈거구나, 엄마도 꼭 데리고 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