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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러 생각

87년 체제 이후, 새로운 40년

by 윤여경

나는 지난 120년 동안 약 40년 단위로 세대교체와 더불어 사회시스템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가장 최근의 변화는 1985년이었고 2025년 다시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2025년은 어떤 시대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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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일어난 현상만 보면, 크게 개인의 중요성이 높아졌고, 환경문제와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의 틀이 마련되었다. 절대적 가치가 아닌 상대적 가치에 대한 존중이 높아졌고, 개인 스스로의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이와 동시에 기존 전통적 가치로 여겨졌던 공동체적 의식, 지나친 경쟁, 도덕적 권위 등 여러가지 유익했던 가치의 상실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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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체제는 대학생들이 주도했다. 70~80년대 대학생들은 민주주의 운동을 통해 민주화를 이룩했고 이들은 대거 정치인이 되어 국회에 진출했다. 다른 한편 열심히 공부한 대학생들은 고시를 통해 정부의 고위관료가 되어 효율적 행정과 인권중심의 사법 시스템을 만들어갔다. 이렇게 한국은 엘리트 정치인과 고위관료들의 주도로 세계화에 걸맞은 민주주의+법치주의 시스템을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어 여러 방면에서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 이는 정말 대단한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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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은 또 변한다. 40년이 지나면서 세상이 바뀌고, 세대도 사회의식도 많이 바뀌었다. 이젠 지난 40년의 성취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때가 온 것아다. 이런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윤석열이 당선되었다. 선진국의 국민들이 지난 40년의 성취를 뒤로 돌리는 선택을 하다니… 나는 크게 좌절했다. 40년의 변화가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가는 것이라는 점에 씁쓸했다.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 책읽기와 글쓰기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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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점차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일부 엘리트 정치인들을 낡은 세대로 여기기 시작했다. 민주화 운동 세력에 다소 억눌려왔던 엘리트 고위관료들은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기반으로 민주화운동 세력을 폄하하고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정권이 들어섰고, 3년의 폭정을 경험한 국민들은 우리 사회의 고위관료들도 낡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엘리트 민주화운동 정치인들은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을 수 없었다. 이들은 2024년 총선에서 국회에서 쫓겨났다. 국민들은 가장 먼저 국회개혁을 이루어냈다. 그 결과가 현재 국회의원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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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총선 결과는 엘리트 고위관료들이 기대했던 결과가 아니다. 새롭게 구성된 국회 권력은 국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엘리트 고위관료들의 폭정에 제동을 걸었고, 무엇보다 고위관료들의 오랜 부정부패와 무능이 드러냈다. 결국 윤석열은 일부 고위관료들과 함께 12월3일 계엄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미 새롭게 깨어난 국민들과 국회는 계엄을 해제했고, 내란을 주도한 세력들을 제압했다. 탄핵 이후 이어진 고위관료들의 내란 동조 행태가 불안불안하지만 어찌어찌 진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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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4일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조기대선이 시작되었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교체한 국회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고, 국회를 대표하는 이재명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런데 지난 5월1일 대법이 이재명의 무죄를 유죄로 파기환송하면서 국민들은 또 다시 고위관료에 분노하게 되었다. 사법부에 대한 이런 대대적인 분노는 처음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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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0년 동안 국민이 사법부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것은 아니다. 사법부는 일제시대, 해방시대, 군부정권에서 납득하지 못할 판결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사법부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다. 사법부의 여러 실책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국가폭력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치학자들이 민주주의는 가장 최선의 정치체제가 아니라 가장 덜 나쁜 정치체제라고 강조하듯, 법치주의에 있어 사법부는 국가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가장 덜 나쁜 권력이라는 점을, 지난 120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그 암묵적 공유가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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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 매번 매순간 조마조마 했지만… 정말정말 다행이다. 지난 5개월동안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보면 정말 아슬아슬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이 변하고 있다. 대선을 한달 남긴 지금 이미 많은 것이 변했다. 국회가 바뀌었고, 행정이 곧 바뀔 것이다. 국민들이 사법부에 분노하면서 사법개혁에 대한 문제의식도 높아졌다. 민주주의와 산업주의 그리고 법치주의를 주도한 엘리트 정치인들과 고위관료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세대가 바톤을 넘겨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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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나도 당분간 혼란은 얼마나 계속될 것이다. 길어도 5년은 넘기지 않을듯 싶다. 5년뒤에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을듯 싶다. 새로운 시대는 어떤 세상이 될까. 앞으로의 40년이 기대된다. 남은 내 인생은 이 40년 안에서 살아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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