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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마케터 Oct 27. 2023

엄마는 옷가게에서 일했다

아빠는 피아노 회사에 다녔지만 박봉의 월급으로 네 식구가 살기엔 역부족이었다. 물론 아빠가 제대로 월급을 온전히 가져다준 적이 없었기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평생 월 100만 원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살림이 나아진 건 엄마가 일을 하면서부터이다.



맞벌이부부의 일상


엄마는 집 근처 교복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교복사업이 엄청난 호황을 누린 때였다. 유명 연예인을 내세워 TV 광고를 하는 브랜드는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엄마는 지인의 제안으로 교복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여름, 겨울 두 계절만 판매를 했음에도 교복점은 한 해를 먹고살 만큼의 수익이 나왔다.


그리고 봄, 가을에는 AS를 해주거나 추가 판매를 함으로써 소소한 수익을 내는 구조였다. 엄마는 옷 판매를 좋아했다. 아니 어쩌면 악착같이 우리를 키워내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엄마가 아르바이트를 한 건 오빠가 중학생 때쯤이었던 거 같다. 그때 엄마는 판매를 매우 잘해 매장 한 개를 통째로 맡아서 했었다.


그래서인지 월급도 꽤 많이 받으면서 그때 이미 아빠 월급을 훌쩍 넘는 수준이 되었다.



엄마는 늘 바빴다


거의 쉬는 날 없이 1년 365일 일하는 엄마는 몸이 망가졌다. 예민하고 짜증 내는 일이 일상이었다. 물론 그때 엄마가 돈도 잘 벌었으니까 아빠를 무시하는 일도 종종 관찰되곤 했다.


이때까지 몇 십만 원씩 생활비로 주던 아빠가 한심해 보였던 것이다. 우리 식구들은 엄마 눈치 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때때로 나는 좋았던 거 같다. 큰 어려움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엄마 몸과 맞바꾼 여유였다.


안방 서랍 속에는 만 원짜리가 꽤 많이 있었다.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으로 엄마는 오빠와 내게 안방에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돈을 꺼내 쓸 수 있게 했다.


그때쯤 엄마와 아빠는 허구한 날 싸웠다. 싸움이 크게 번지는 일도 많았고 다행스럽게 아빠가 엄마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자해를 하고 아빠는 물건을 던지는 식으로 싸우기에 이르렀다.


내 기억에 엄마는 종종 집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시늉을 했었고 혹은 머리를 방바닥에 내리치며 죽어버리겠다고 윽박을 지르곤 했다.


평소 말이 없는 아빠는 가만히 있다가 엄마를 달래다가 결국은 물건을 던지거나 깨뜨리는 방식으로 싸움을 끝내곤 했다.



그냥 헤어졌으면..


부모님의 싸움은 일주일에 4-5일이 반복되었다. 나와 오빠는 부모님의 싸움을 피하고자 문을 닫고 방안에 갇혀 지내곤 했다.


참 다행스러운 건 나와 오빠는 누구 하나 엇나가지 않고 착실하게 자랐다는 것이다.


나는 종종 기도했다. 그냥 헤어져달라고. 당신들의 언어폭력은 나의 삶을 갉아먹었다. 엄마가 들어오면 늘 반복되는 싸움들. 나는 차라리 헤어졌으면 하고 바랐다.


나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진 못했다. 하지만 내 기억은 늘 미화되어 있다. 나 스스로 내 기억을 그렇게 바꿔버린 것이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지. 나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지."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밖에서 절대 집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미화된 기억과는 다르게 별반 추억이 없는 내게는 밖에서 자랑할 만한 기억 같은 게 없었던 것이다. 그저 엄마가 울고불고 소리치고 아빠를 원망하던 기억들이 가득하다.



가족도 스스로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여자의 인생은 남자가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혼을 해도 함께 책임지고 부담을 지는 것이지 남자 잘못 만나 인생이 망가졌다고 말하는 엄마가 싫었다.


반대로 엄마가 더 똑똑했다면 아빠를 다르게 바꿀 수도 있지 않았나. 아빠 눈치만 보고 원망하면서 그걸 그대로 자식들에게 노출하는 게 난 싫었다.


물론 사람은 바꿔 쓰는 게 아니고 가르친다고 따라 하는 아빠도 아니고. 뭐 엄마는 엄마 나름의 사정이 있긴 하겠지.


하여간 엄마는 죽도록 열심히 살았다. 나는 어렸을 때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엄마만큼 우리를 잘 기르기도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빠와 싸우고 난리를 쳤긴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엄마로서는 최고였다.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우리를 키웠음은 확실하다.


그 과정에서 삶에 대한 원망이 모두 아빠에게 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빠도 아빠 나름대로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봐도 엄마는 보통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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