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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마케터 Nov 05. 2023

착한 딸로 살고 싶었다

내가 아는 한 엄마는 늘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해 일했고 최선을 다해 남편을 챙겼으며 우리에게도 최고의 엄마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남편인 아빠는 제대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아들은 40대 중반이 되도록 백수로 있다. 하나 남은 딸조차 시집을 안 가고 있다.



좋은 딸이 되고 싶었다


엄마는 늘 말했다. "남편 복 없는데, 자식 복이라고 있겠냐." "내가 지은 죄가 많아서 자식들이 하나도 안 풀리나 보다."


엄마는 최선을 다했지만, 노력만큼 보상받지 못했다. 특히 우리집 남자들은 엄마의 노력을 당연시했고 엄마는 그걸 꾸역꾸역 감당하고 있었다.


돈을 버는 일도 집안일도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아버지야 그러려니 해도 오빠는 아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오빠가 안쓰럽다가도 미웠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오빠를 향했다. 저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다가도 어떻게 저렇게 대책이 없을까 하는 마음들이 뒤섞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오빠를 외면하고 싶었다. 사실상 자식 노릇을 하지 못하는 오빠 대신 나는 장녀가 되어야만 했다. 부모님께 짐이 되지 않으려 늘 씩씩하게 나의 현재를 극복해 나갔다.


나의 삶이 어쩌면 엄마를 닮아 있는 건 아닐까 가끔 두렵기도 했다. 어리바리하고 순둥순둥 했던 나는 온데간데 없었다. 강인하고 극복하고 이겨내고.


언제부턴가 엄마에게 난 든든한 딸내미였다. 뭐든 척척 하는 의지가 되는 딸이었다. 물론 나는 그렇지 못했다. 집안의 대소사는 늘 내가 챙겨야만 했고 그때마다 장남 대신이어야만 했다.



내게는 의지할 형제가 없었다


두 명 중에 막내였지만, 다른 집과는 다르게 항상 내가 앞섰다. 아니 그랬어야 했다. 내가 먼저 시도해야 했고 그걸로 오빠에게 가이드가 되어야만 했다.


집에 속 시끄러운 일이 일어날 때면 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고도 사회생활도 연애도 친구 관계도 다 잘하는 딸인 척 살아야만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뭔가를 사서 주기만 하고 정작 나는 누구에게도 받지 못했다. "너는 알아서 잘하니까, 너는 도움이 필요 없으니까"


그런 모습이 연애할 때조차 대입되어 뭐든 괜찮은 척, 이해하는 척, 내가 알아서 하는 척했다. 사실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폭력을 일삼는 남자를 만나면서도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던 건 어쩌면 나 자신이 온전치 못해서였을 것이다. 폭력이라는 이름으로라도 날 사랑해 주니, 내가 기댈 사람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결핍이 또 다른 결핍을 낳고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늘 오빠를 동경했다. 세상에서 제일 냉철하고 똑똑한 사람이었고 닮고 싶었다. 오빠가 하는 건 무조건 따라 했었다. 너무나도 오빠를 좋아했다.


그런 오빠가 무너지는 과정은 참 가혹했다. 모두가 아팠고 오빠 몫까지 가족을 챙겨야 했던 나는 더 아프게 느꼈다. 오빠 그늘에서 자란 나는 지금도 오빠의 그늘 속에서 산다.


도와주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겠다. 나와 오빠는 다른 인격체기 때문이다.



시험, 시험, 시험,, 지겨운 시험


공무원 시험에서 끝나지 않은 오빠의 시험은 회계사, 세무사까지 도전하게 된다. 최근에는 세무사 시험을 몇 년째 보고 있지만 우리는 이제 누구도 오빠의 합격을 희망하지 않는다.


한 번도 합격 소식을 들려주지 못한 오빠를 누구도 믿지 못한다. 슬프게도 그렇다.


나도 한때는 9급 공무원 시험을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오빠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나도 오빠처럼 될 것만 같았다. 딱 2년, 나는 미련 없이 관뒀다.


나의 지난날들은 착한 딸, 오빠처럼 되지 말자 그런 생각을 많이 해왔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너무 결핍 덩어리였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충분히 사랑스럽고 충분히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나는 계속 배우고 또 배우고 자신을 다그치고 극복한다. 그렇기에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노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때때로 가족들은 얘기한다. "너는 그렇게까지 안 살아도 되지 않느냐. 적당히 해라" 하지만 나는 오늘도, 아마 내일도 또 극복하고 도전할 것이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자, 앞으로도 살아갈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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