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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마케터 Nov 13. 2023

가족과 나, 분리하기

오늘 퇴근하는데 아빠, 엄마, 오빠까지 모두가 방에서 나와 인사를 했다. 마치 가장이 귀가했을 때 모두가 나와 인사하는 모습이었다. 멋쩍은 나는 "왜 다 나왔어?"라고 되물었다. 아빠는 웃으며 "4명이 사는 집에서 너 혼자 돈을 버는데 모두 나와봐야지"라고 했다.



나는 부모님 집에 얹혀 산다


독립했을 때 매월 나가는 생활비, 집을 얻기 위한 대출금, 그리고 가족들에게 주는 용돈, 경조사비를 생각했을 때 집에 얹혀사는 게 최선인 줄 알았다. 밖에 나가서도 이만큼 돈은 드니까 그냥 그 돈 부모님께 생활비로 드리자는 생각으로 얹혀살고 있다.


부모님은 일찍이 집을 샀고 그 집이 재개발이 되면서 집값이 꽤 올랐다. 부모님의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집 한 채, 하지만 그것 외에는 1원도 버는 사람이 없다.


아픈 엄마는 그렇다 쳐도 아버지는 아직 한참 건강하지만 방에서 종일 티브이만 보시고 오빠는 이미 말했지만 40대 중반까지 단 한 번도 돈을 번 적이 없다.


그러한 이유로 이 집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유일하게 나다. 나는 매월 꽤 많은 돈을 생활비로 드리고 있으며, 때때로 엄마가 '돈이 없다'라고 징징대거나 혹은 '먹고픈 걸 제대로 사 먹지 못한다'라고 하소연을 할 때면 생활비 외에 또 돈을 드린다.


가끔 쇼핑을 가면 엄마 옷도, 신발도, 액세서리도 다 내가 사준다. 온통 내가 사주고 있지만 엄마는 정말 가끔 오빠가 몇 만 원짜리 뭐라도 사줄 때면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자랑을 한다.


"엄마는 내가 모자란 거 없이 다 해줘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오빠가 고작 몇 만 원짜리 해준 게 그렇게 좋아? 그걸로 나한테 그렇게 자랑을 하게?"


가끔 짜증 나면 나는 그렇게 내뱉는다.


엄마가 힘들다고 죽겠다고 하면 나는 늘 지갑을 열었다. 나 먹는 건 아끼면서도 집에 쓰는 돈은 지갑을 활짝 열곤 한다. 그러고 돌아보면 "뭐 하는 건가" 싶다.



부모님 노후는 어떻게 하셔?


내게는 과분한 남자친구가 내게 물었다. 자신의 부모님은 노후가 돼 있으시기에 따로 용돈을 드리거나 생활비를 마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심 그는 나 또한 부모님께 매월 생활비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나는 남자친구에게 "우리 부모님도 걱정 없다"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엄마는 전에 그런 말을 했었다.


"네 오빠는 너와 달리 스스로 돈을 벌 능력이 없으니 집 한 채 있는 거 오빠에게 주겠다"라고. "너는 생활력이 강하니 엄마가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어떻게든 살지 않겠냐"는 것이다.


엄마의 말에 난 눈물이 났다.


집을 오빠에게 주든 안 주든 나는 그렇게 욕심을 내지도 않았지만 내가 이렇게 악착같이 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지는 생각조차 안 하고. 엄마의 그 말이 너무 모질게만 느껴졌다.


그 이후 나는 오빠가 더 밉다.



나 시집가면 더는 못해


나는 얼마 전에 엄마에게 통보했다. "내가 이 집에 사니까 이렇게 돈을 주고 있지만 나도 시집가면 내 가정 꾸려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돈을 주겠어. 지금 내가 주는 돈이 다른 집으로 보면 자식 몇이 주는 돈이랑 맞먹어."


엄마는 순순히 알겠다고 했지만, 아빠도 엄마도 오빠도 누구 한 명 돈을 벌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생활비를 주지 않으면 어떻게 살지 아득하기만 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생활비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아마 내 가정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엄마는 내가 퇴근하면 "물가가 너무 올랐다. 살 게 없다."는 말을 녹음해 놓은 듯한다. 전 같으면 안쓰러워서 이미 생활비를 주고도 또 이체를 해줬을 테지만 요즘 나는 눈을 딱 감는다.


부모님 입장이라면 "여태 이렇게 키웠는데 그깟 생활비로 이럴 거냐"라고 하겠지만. 내가 돈을 벌고서는 빼먹지 않고 늘 생활비를 이체해 왔으니 나는 충분히 할 만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집을 오빠에게 물려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 꾸역꾸역 이 집에 살고 있는 이유다. 그렇지만 굳이 이 집을 유지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내 통장에서 빼다 쓰나 이 집에서 빼다 쓰나 비슷할 텐데. 굳이 내 통장에서 계속 빼 쓰는 게 꼭 오빠에게 온전한 집 한 채를 물려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같아서 언짢다. 옹졸한 나의 마음은 자꾸 오빠가 언짢다.


엄마의 기울어진 사랑은 내 정신도, 오빠 정신도 온전치 못한 상태로 만들었다. 물론 엄마 탓이 아니라 내가 모자란 탓일 거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둘 다 온전치 못하다.



눈 딱 감기


힘들다 죽겠다 안 된다는 말에 동요하지 않는다. 온통 사줘도 이제 만족하지 않는다. 아빠는 가끔 그런 나를 안쓰럽다고 했다.


돈을 벌어본 적 없는 오빠가 제힘으로 뭣도 못 살까봐 엄마는 어딜 가면 항상 오빠 옷이고 간식이고 사 온다. 그러고는 내 눈치를 보고 숨겨둔다.


내가 준 생활비를 엄마는 오빠 핸드폰비고 옷이고 사는 데 쓴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게 보기 싫은 아빠는 엄마와 자주 싸운다. "그렇게 감싸니 여태 사람 노릇도 못하고 사는 게 아니냐" 듣기 싫은 이야기를 엄마에게 늘어놓으면 엄마는 아빠에게 마음도 말문도 닫는다.


엄마의 희망과 기대는 오빠에 대한 애착과 집착으로 바뀌어 오빠에게 온전히 의지한다. 요즘 엄마는 오빠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가 됐다.


오빠는 그렇게 자신이 그동안 해온 불효를 이렇게나마 갚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봤을 땐, 참 딱하다.


더 안타까운 건 엄마가 달라질 거라고도, 오빠가 달라질 거라고도 생각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른 살 때 엄마가 희귀병을 앓게 되면서 하던 일을 관뒀다. 나는 그때 다짐했었다. 내가 능력 있는 딸이 되자. 그래야 엄마를 책임질 수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서까지 가족을 책임지는 걸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젠 진심으로 가족과 나를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가족들도 내가 아니어도 살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엄마도 오빠를 그만 감싸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년에 오빠가 세무사를 몇 년째 낙방하는 어느 때 "나는 오빠가 합격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가족들 그만 괴롭히게 이제 시험 좀 그만 봐"라고 얘기했다.


40 평생 처음이었다. "나는 너를 믿지 않아. 그만둬"라는 말을. 내입으로 처음 꺼냈다. 그만 둘 줄 알았다. 하지만 오빠는 엄마 앞에서 무릎 꿇고 울고불고하면서 "마지막으로 도전하겠다"는 말을 수십 년째 반복했고 엄마는 또 속아 넘어갔다.


그리고 여전히 오빠는 독서실과 집을 오가며 공부하다가 집에 오면 게임을 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이제 외면하고 싶다. 더 나아지지 않는 엄마와 오빠. 나는 그만 나를 위해 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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