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식사 되나요?"
혼밥이 자연스러워졌다고는 하지만 식당 종류에 따라 덜컥 들어가기 어려운 곳도 있다. 저녁엔 고깃집으로, 낮엔 점심특선을 운영하는 식당들이 내겐 그런 곳이다. 그래서 다짜고짜 자리차지하기 전에 입구에서 1인 식사가 되는지 일단 물어본다. 문 가까이 있어야 거절 당하더라도 덜 민망하게 재빨리 발길을 돌릴수 있으니까.
덕은지구는 고층 아파트와 지식산업센터 건물이 가득한 곳이다.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강변북로로 합류할 때 강변북로에 이미 차가 가득하여 속도가 나지 않는 것같으면 상암동 쪽으로 우회하여 서교동으로 가곤 했다. 그때 그 길목에 있는 곳이 덕은지구다. 그 때만 해도 낡은 아파트와 80년대 수퍼마켓 같은 단층 상가가 조금 보이는 곳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개발이 예고된 모양이었다. 개발정책에 동의하지못한 주민들이 투쟁을 불사한다는 과격한 내용을 담아 붉은 글씨로 쓴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있었고 플래카드는 일이년 후 내가 회사를 퇴사할 때까지 여전히 붙어있었다. 그게 오륙년 전쯤인 것 같은데 어느새 아파트와 오피스가 가득한 빌딩숲이 되었다.
차가 덜 막히는 점심시간 즈음 덕은지구에 도착하였으나 직장인 점심시간인 12시에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식사를 하기는 미안한 마음인지라 1시가 넘을 때까지 기다렸다. 1시 반쯤 되자 지난 번 왔을 때 눈여겨본 곳 중 한 식당으로 가 출입문을 열고 몸은 반만 들어간 채 두리번거리니 손님들이 나간 테이블을 정리하던 직원(혹은 아르바이트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 직원은 1인 식사는 안 된다며 그 이유를 덧붙였는데 출입문과 직원 사이에 거리가 좀 있어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그 곳에서 밥을 먹을 수가 없다는 건 명확했다.
나는 조금 풀이 죽었다. 일부러 바쁜 시간대를 피해왔는데도 문전박대를 당하다니...
다른 식당을 갈까 싶어 발걸음을 옮기던 중 배가 고파서인지 많은 간판 사이로 분식집과 한식부페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런 곳은 1인 식사가 무시당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늘은 가고 싶지 않았다. 날은 흐리고 스산하여 챙겨먹었다는 느낌이 드는 식사가 하고 싶은 까닭도 있지만, 지난 번에 보아둔 식당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왔다는 이유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식당에서도 거절하면 어떡하지? 망설이는 중에 발걸음은 이미 다른 식당 앞에 멈추었다. 가게 앞에는 점심특선으로 준비된 대여섯 가지 메뉴를 소개하는 배너가 눈길을 끌었고 그 앞에서 좀더 망설인 끝에 한 번 더 용기내보기로 하고 출입문을 열었다.
식당 한 켠에서 이미 혼자 식사 하고 있는 손님에 눈에 들어왔지만 혹시나 해서 손가락으로 숫자 1을 만들어보이며 물었다.
"1인 식사 되나요?"
사장님이 아닐까 추정되는 분이 환한 미소로 맞으며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들어오라고 한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신이 난 나는 얼른 입구 쪽 자리에 앉았다. 혼자 식사 하고 있는 손님과 같은 줄이다. 왠지 혼밥은 그 쪽 테이블에서 해야할 것 같았다.
이미 한 차례 거절당해서일까. 사장님이 보인 친절이 퍽 크게 다가왔다. 말투도 친절했지만 얼굴 가득한 미소는 배고파 집에 돌아온 자식을 반겨주는 엄마의 마음 같았다.
마음이 편해지니 허기가 제법 크게 느껴졌다. 연탄직화 고추장불고기, 연탄직화 간장불고기, 우삼겹된장찌개숙성돼지김치찌개, 한라산 치즈계란찜 등 점심특선 모든 메뉴가 다 맛있을 것 같고 한 입씩 다 맛보고 싶은 맘이다.
연탄직화 고추장불고기를 고르자 처음 안내해주신 사장님이 다정한 태도로 밑반찬을 준비해주신다. 야채값 비싼 요즘에 상추와 파김치까지 준비된 정성스러운 한상차림이다. 조금 기다리자 주문한 고추장불고기가 나왔고 상추에 불고기와 파채, 쌈장과 생마늘을 넣어 야무지게 쌈을 싸먹는다. 친절함이 깃든 음식은 더 맛있는걸까. 친구와 다음 달에 맥주 한 잔 하기로 한 약속은 무조건 여기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식당을 소개하니 친구도 좋을 테고 나도 친절함에 보상하는 기분이고 식당 매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야말로 일석삼조다.
사장님이 드나드는 손님들에게 화장실 위치며 주차공간이 어딘지 설명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는데 한결같이 친절하다.
'덕은지구 1등 식당은 여기네.'
물론 나에게 한정해서지만, 이런 식당이 장사가 잘 되지 않으면 어느 곳이 맛집이라 소문날까. 여간해서는 리뷰를 쓰지 않는 나지만 이곳만큼은 리뷰를 꼭 써야겠다. 계산을 마치고 일부러 영수증을 받아온 뒤 카페에 오자마자 영수증 리뷰를 썼다. 친절하고 맛있는 집이니 잘 되셨으면 좋겠다고. 내돈내산임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미 내가 쓴 리뷰 말고도 많은 리뷰가 있었지만, 혼밥을 주저하는 누군가에게 나의 리뷰가 이 식당으로 향하게 하는 방향키가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