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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Dec 09. 2024

칭찬은 바이올린도 춤추게 한다

바이올린을 다시 배운지 두 달이 다 되간다. 레슨비와 연습 시간이라는 벽을 넘어 얼마나 꾸준히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저지르고 싶었다. 정돈된 소리를 내지 못해 끼익끼익 거리는 취미생 수준으로 독주회를 할 것도 아니고, 마흔 중반에 굳이 베워서 무엇할까 하는 고민이 스쳤지만 이내 접어두었다. 망설임에 머물면 결코 시작할 수 없을테니까.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노라 마음먹고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하다보니 성과에 집착하고 수익화에 매달리는 건조하고 재미없는 삶을 몇 년 보냈다. 내세울 만한 성과는 만들지 못한 채 스트레스는 늘어가고 우울증이 반복되는 현실. 삶의 의미와 방향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걸까.


삶 전체를 돌아보고 '나'를 깊이 들여다보며 여러 책에서 얻은 조언을 바탕으로 내 삶에 “재미”라는 양념을 넣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회사 업무, 책 읽고 글 쓰는 것과 아주 다른 영역의 무언가를.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이올린과 통기타, K-pop댄스. 일단 해보고 재미없으면 중간에 빼야겠단 생각이다.


바이올린 레슨 첫 날, 설레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만났다. 중학생 때 멋모르고 학교 관현악부에 입단하여 단체레슨으로 삼 년 정도 받은 경험이 있긴 한데 그 이후로 처음 잡아본다는 나의 바이올린 역사를 선생님께 간략히 설명했다. 실력 테스트 같은 첫 시간, 선생님은 이 정도면 잘하는 편이라고 칭찬해주시며, 배우지도 않은 비브라토까지 하는 건 훌륭하다고도 했다. 그 후로 여덟 번의 레슨을 받는 동안 잘 따라오고 있다, 잘 하신다는 칭찬을 매번 빠트리지 않으셨다.


기타 선생님도, 댄스 강사님도 다들 잘한다고 하셨다.


기타 선생님은 "습득력이 아주 좋으세요. 집에서 매일 15분 만이라도 연습하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저와 이중주를 할 수도 있을거에요."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선생님과 함께하는 이중주'에 말에 꽂혀 꽤나 들떴다.


K-pop 댄스는 올 초에 집에서 차로 15분을 가야하는 학원에서 야심차게 도전했었는데 수업 난이도가 높아서 도저히 재등록을 할 수 없었다. 다들 적절한 웨이브와 리듬을 살려 추는데 나 혼자 허우적대는건 춤 기본기가 없는 내가 복습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다행이 걸어서 갈 수 있는 학원에 개설된 "왕초보반"을 발견, 이미 3회차 수업이 진행되었지만 '왕초보'라는 단어를 믿기에 망설이지 않고 등록했다.


3회차 동안 안무 배우기가 거의 끝나있어서 처음 온 나를 위해 선생님은 안무 전체를 복습해주셨다. 5회차인 수업에서 영상 쵤영이 예정되어있었다. 왕초보들을 위해 강사님이 안무를 쉽게 바꿔주셨다고는 해도 베이비몬스터의 'Drip'이란 곡은 처음 듣는데다 박자도 제법 빨라서 수업 끝날 즈음에는 몸과 정신이 분리된 느낌이었다. 영상 촬영을 하는 5회차이자 내게는 두 번째 수업 시간, 여러 번 복습 끝에 어찌어찌 촬영을 끝냈다. 댄스 강사님은 2회차 만에 안무를 다 외우다니 대단하다며 꾸준히 나오면 금방 잘하게 될 거라고 거듭 칭찬하셨다.


여기저기서 칭찬을 들으니 좀 우쭐했다.


'내가 미술은 영 꽝이어도, 음악과 체육에는 소질이 좀 있지. 그럼.'


그리고 삼일이 지났을까. 나의 의기양양함이 폭삭 가라앉는 경험을 했다.


 두 달만에 바이올린 교재 한 권을 끝내게 되어 다음 레벨 교재를 사고는 어쩐지 다른 사람들의 실력이 궁금한 마음에 유튜브에서 검색해보았다.


"스즈키 바이올린 3권"


 나와 같은 아마추어들의 연습 영상이 꽤 있었는데, 나보다 더 거친 소리를 내는 분도 있지만 훨씬 세련된 연주를 하는 분도 있었다. 그랬다. 내 바이올린 실력은 그저 지극히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럼 그렇지.'


난 재능이 있는게 아니라 선생님의 아낌없는 칭찬에 착각을 단단히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알고리즘을 타고 보게 된 또다른 영상은 이런 나의 착각을 제대로 부수었다. 입시생과 취미생을 대하는 레슨 선생님 태도  차이를 보여주는 상황극으로 영상 속에서 입시생에게는 야박하고 냉정한 선생님이 취미생에게는 칭찬을 듬뿍 해주었다.


'이거 아무나 못하는 거에요.'

'와!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으세요.'

'진짜 잘하시는거에요.'


내가 들은 말과 큰 차이가 없는 칭찬이다. 하... 원래 그렇게 우쭈쭈해주는거구나.


그러고보니 기타 선생님이 한 말도 핵심은 '매일 연습 15분'이지 이중주가 아니다. 댄스 강사님의 말에서도 '빠지지 않고'가 중요한 거였다. 두 달 동안 혼자 들떴던 걸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신기한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배움에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이제 현실을 정확히 알았지만, 재능 없음에 낙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실력을 올바르게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하는 정도다. 마음이 처지지 않을 수 있는 건 그 동안 꾸준히 들어 온 칭찬과 격려 때문인 것 같다. 음정을 잘못 짚었다고 해서, 안무를 틀렸다고 해서 눈치보거나 주눅 들지 않고 웃으며 넘길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단단해진 것 같다.


보통의 두뇌를 가진 끈기없는 나였어도 학생이던 시절에 이런 칭찬을 들었다면 공부에 큰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을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배움이 더뎌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자연스럽게 생겼을텐데. 아쉬운 마음이다.


사람이 가지는 5단계 욕구를 설명하는 매슬로우 이론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존경 욕구'가 있다. 존경 욕구란 자존감, 자신에 대한 존중,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등이다. 꼬부랑 할머니일지라도 아름답다는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존경 욕구는 어린이 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는 존경 욕구가 무척 컸나보다. 요즘 들은 칭찬에 세상 잘난 사람처럼 으스대며 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칭찬에 인색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존경 욕구는 누구나 큰 비중으로 갖고 있지 않을까.


나는 이번에 세 분의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칭찬 릴레이를 통해 실제 내가 대단하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칭찬을 해주는 행위'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완벽하게 경험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칭찬에 너그러운 문화가 되길 바란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한다는 말을 해줌으로써 어려운 일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줄 수 있다. 나아가 삶이 행복해진다. 진심이 담긴 몇 마디 말이면 되니 얼마나 쉬운가.


평가하는 사회보다 칭찬하는 사회.

자존감이 충만하고 구성원이 행복한 사회.

그런 대한민국이...언젠가는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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