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무심코 도전할 수 있는 소소한 '삶 바꾸기 행위'들이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 혹은 아침 일찍 일어나 종이 한 면 가득 떠오르는 생각을 무작정 적는 모닝 페이지가 있을 수 있겠다. 생각나는 걸 또 적어보자면, 언젠가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글에 등장한 '찬물 샤워(부자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찬물로 샤워하고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한다고 했다)', 산뜻한 차림으로 밖으로 나가 공복에 한 시간 뛰고 오는 운동도 포함될 수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시도했거나, 시도하려 했고, 모두 철저하게 실패했다. 단 한 가지도 아직 유효하게 하는 행위가 없다.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라지만, 나의 경우엔 그 반대였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건 무척이나 힘들었으며, 모닝 페이지는 한 페이지를 무조건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더운 한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내가 찬물 샤워를 할 수 있을 리 없고, 오르막길을 조금만 올라도 숨이 차 힘들어하는 내가 한 시간을 뛰는 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고, 그런 행위의 다짐과 그 행위를 무난히 해낼 수 있어 금세 다른 삶의 맛을 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거의 자기 직전에 찾아옴으로……, 나는 자기 전 무언의 자신감에 한껏 부풀었다가, 고작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아 금세 차갑게 식곤 했다(괜히 새벽에 한 번 일어난 탓에 아침 기상 시간이 더 늦어져 땡땡 부은 얼굴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렇게 되면, 굿 라이프, 더 나은 인생은 겪어낼 수 없는 것일까. 그럴 것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지 못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하지 못하고, 운동조차 어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데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리가! 나는 나를 자책하며, 자기 전 엄청난 포부로 적었던 '내일 할 일 50가지' 정도를 적은 종이를 북북 찢는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은 무언가를 마음먹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어려울 것이 없었다. 하면 하고, 아님 말고. 이런 식으로 계획을 섣불리 만들어내고 있으니, 뭐가 제대로 될 리가 없지.
그랬다. 나는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위한 그 어떤 노력도 다시는 해내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나는 너무나 나약하고, 너무나 변덕이 심하고, 자기 합리화에 최적화된 인간이기에.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뭐라도 좀 해내고 싶다는 그런 생각. 의지가 있다면, 거뜬히 해낼 수 있는 '나에게' 맞는 무언가를 한번 찾아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그때 나는, 나의 욕구에 집중했던 것 같다. 일단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갈구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에 관련해 잘 몰랐기에, 나는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서른이 넘고 나니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라고 수없이 말하고 다니는 나였지만, 일 년에 꼭 한 번쯤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이 방향이 맞는 것인지,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나조차도 잘 모르겠는 순간이 꼭 왔고, 지금이 딱 그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나는 알아야 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내 삶에서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균형을 잡아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우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골랐다. 딱 한 가지였다. 책을 읽고 싶었고, 글을 쓰고 싶었다.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는 책을 모조리 읽어내고 싶었고, 그때마다 떠오르는 것을 기록하여 나의 양분으로 삼고 싶었다. 그러면, 책을 읽으면 되었다. 간단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마트폰 때문이었다.
눈떠서부터 나는 스마트폰을 찾는다. 시간을 확인하고, 홀린 듯이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들어가 밤새 일어난 어떤 일이나 친구들의 행적을 모조리 훑는다. 연예 기사도 좀 보고, 시사도 좀 보고, 그러면서 사람들이 남긴 댓글을 읽고, 그러다가 예능의 웃긴 장면이 담긴 짧은 영상을 오랫동안 본다. 그렇게 일어나서, 씻고는…… 다시 본다. 영상을. 사람들이 올리거나, 예능, 드라마, 영화의 명장면을 조각낸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먹을 때도 내 손엔 늘 스마트폰이 함께 한다. 나는 그것을 놓을 생각이 없고, 스마트폰은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손바닥을 점령하고 있다(손바닥뿐만 아니라 나의 정신까지도.).
그렇게 하루를 그냥 보낸 적이 허다했다. 봤던 영상을 또 보거나, 웃긴 영상을 친구들과 공유하면, 금세 해가 저물었다. 내가 시간을 그냥 보냈단 말인가, 이런 생각에 혼란스러워질 때 나는 다시 내일을 계획한다. 내일은 조금 더 '건강한' 삶을 살아야지, 하며. 진짜, 이래서는 안 되었다.
어떤 것을 할 때는, 그러니까 그것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야식에 푹 절여진 내 몸이 어느 순간 너무 무겁게 느껴졌을 때 나는 운동을 시작했고 본래 몸무게로 돌아오는 일을 늦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옆에서 아무리 말해도 본인이 느끼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충격요법을 쓰기로 했다. 생전 들여다보지 않았던 스크린타임 시간을 확인한 것이었다.
7시간 49분. 정확히 7시간 49분이었다. 내가 오전 열 시에 일어난다고 했을 때, 7시간 49분 동안 스마트폰을, 그러니까 쭉 이어서 보지 않아도 어쨌든 본 시간을 합하면, 거의 하루가 그냥 가는 셈이었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깨운(열어본) 횟수는 무려 300회가 넘었다. 미친. 미쳤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황금 같은 7시간 49분을 버렸다. 집에 함께 있는 엄마와 동생, 심지어 강아지와 눈을 마주하거나 그들을 부린 횟수보다 스마트폰을 가까이 한 횟수가 훨씬 많았다.
나는 그날밤, 온갖 영상이 뿜어내는 전자파와 픽셀에 잔뜩 절여져 알 수 없는 분비물을 흘리며 점점 몸집이 커져가는 괴상한 뇌가 나오는 꿈을 꿨다. 끔찍했다. 정말로. 그래서 나는 아마도 꿈에서 결심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찾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으로 가려던 손을 거두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안경을 쓰고, 벽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일찍 일어났다곤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늦게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우선 샤워부터 했다. 그리고, 이부자리 정리. 간단한 스트레칭. 그것들이 끝난 후엔 아침을 먹었고, 아침을 먹을 땐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살짝 확인하고, 밤새 온 문자에 답했다. 그리곤, 다시 방으로 향해 스마트폰을 멀찍이 두고 읽을 책을 골랐다. 스마트폰을 보지 않을 작정이었다.
'스크린타임 줄이기 운동'의 첫행보는 성공적이었다. 전화나 메시지 같은 연락에 아예 답을 하지 않을 순 없으므로, 그것과 무엇을 검색하는 시간, 아주 잠깐 SNS에 들어갔다가 황급히 빠져나오는 시간까지 합하여 그날은 3시간을 기록했다. 스마트폰을 59번 깨웠다. 그리고, 책을 세 권이나 읽었다. 오래전부터 읽기로 벼르고 있던 책을 해낸 것이었다. 드디어!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날 머리가 굉장히 가벼움을 느꼈다. 나와 관계없는 이들의 일상을 보며 부러워하지 않아 내 일상이 소중해졌고, 음식 먹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어 맛있는 행복감을 느꼈다. 머리가 아프거나 목, 어깨가 당기는 일이 줄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아예 스마트폰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행위를 줄이고 집중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겠다는 나의 포부, 순항의 기미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