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오래된 기사식당에서 마주한 맛있는 위로
누구에게나 그런 식당이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유명하지도 않건만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는 곳, 고민할 겨를도 없이 편안하게 발걸음이 향하는 그런 식당 말입니다.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어스름한 저녁, 따뜻한 밥 한 끼가 간절히 그리워질 때, 저에게는 언제나 ‘쌍다리돼지불백’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쌍다리돼지불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예전에는 ‘쌍다리 기사식당’이라는 소박한 간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성북동에 처음 자리를 잡고 이 동네에서의 삶을 시작할 무렵, 제가 제일 처음 밥상을 받았던 곳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낯선 동네, 낯선 시간 속에서 그 따스한 밥상이 얼마나 든든하게 느껴졌는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특별히 무엇을 먹어야겠다는 계획이 서지 않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이 집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유 없이 그냥 마음이 기우는 곳, 제게는 그런 곳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성북동 골목 어귀에 자리한 이 식당은, 오랜 세월을 조용히 견뎌온 기사식당입니다. ‘쌍다리’라는 이름은 실제 이 동네에 있었던 두 개의 다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간판은 오래되어 빛이 바래고, 실내는 꾸밈없이 소박합니다. 화려한 인테리어나 유행하는 조명 따위는 없건만, 문을 밀고 들어서면 은은한 숯불 향이 먼저 마음을 다독여줍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공간 안에는, 말없이 정직한 손맛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단연 돼지불백입니다. 테이블 위에 불판은 없고, 고기는 주방에서 연탄불에 정성껏 구워져 나옵니다. 주문을 넣고 잠시 기다리면, 하얀 쟁반 위에 밥과 국,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돼지고기가 정갈하게 담겨 나옵니다. 고기는 얇고 넓직하게 썰어져 있으며, 달짝지근한 간장 양념이 한 점 한 점에 골고루 배어 있습니다. 젓가락으로 한 점 집어 입에 넣는 순간, 연탄 특유의 깊고 그윽한 불향이 먼저 퍼지고, 곧이어 부드럽고 촉촉한 육질이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겉은 살짝 그슬렸지만 속은 놀라울 만큼 부드럽습니다. 씹을수록 고기의 진한 풍미가 입안에서 천천히 꽃 피웁니다.
이 집의 진가는 쌈에서 완성됩니다. 상추 한 잎을 펼치고 따뜻한 밥을 살짝 얹은 뒤, 불향 가득한 고기 한 점, 아삭한 무생채, 알싸한 마늘무침을 올려 조심스럽게 감싸면—그 한 쌈에 이 식당의 정성과 따뜻함이 오롯이 담깁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그 조화로운 맛은 그저 ‘맛있다’는 평범한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시원한 조갯국이 고기의 진한 불향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 부추무침이나 김치가 중간중간 입맛을 상쾌하게 환기해 줍니다. 어느 것 하나 튀거나 모자라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이 정확히 제자리에 놓인 듯한 완벽한 밥상입니다.
반찬이 부족하면 셀프로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점도 이 집의 조용한 배려를 느끼게 합니다. 옆자리에 앉은 손님과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모두가 같은 이유로 이곳을 찾아온 듯한 따뜻한 공기가 흐릅니다. 누구든 편안하게 자리할 수 있는 식탁, 말없이 받아주는 너그러운 공간. 그 무엇보다 믿음직한 식당입니다.
식사의 마지막은 늘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따뜻한 믹스커피입니다. 종이컵에 담겨 나오는 그 달콤한 한 잔은, 고소한 커피 향과 함께 속을 부드럽게 감싸며 식사를 행복하게 마무리해 줍니다. 커피를 손에 들고 문을 나서는 길, 오늘 하루의 피로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듭니다. 마음까지 따스해지는 한 끼란, 아마도 이런 식사일 것입니다.
‘쌍다리돼지불백’은 특별한 날을 위한 식당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하루, 어떤 이유 없이도 그냥 생각나는 곳입니다. 성북동에 살면서 이 집을 자주 찾는 것은 단순히 배가 고파서만은 아닙니다. 하루를 다정하게 받아주는 한 끼가, 조용히 제 일상 한쪽을 든든히 채워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따금 누군가 “너희 동네 가면 뭐 먹을까?” 하고 물으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돼지불백 드시죠. 쌍다리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