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4개의 원자폭탄만큼 데워지는 중
올여름은 정말 너무너무 덥습니다.
아침 출근길부터 아스팔트가 달아오르고, 차창을 열면 바람 대신 뜨거운 열기가 밀려듭니다. 잠깐의 외출도 고된 노동처럼 느껴지고, 에어컨 없이는 일상조차 불가능해졌습니다. 서울의 열지수는 50도에 육박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체감온도 60도를 기록했습니다. 이쯤 되면 “이상기후”라는 말이 더 이상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기후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 위기’가 되었습니다.
사계절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때 우리는 “사계절의 나라”라는 말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봄꽃이 피고, 여름엔 장마가 지나고, 가을은 단풍으로 물들고, 겨울엔 눈이 내리는 자연의 순환은 우리 삶의 리듬이자 감정의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짧고 거세졌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한국의 여름은 약 20일 길어졌고, 겨울은 22일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기온 상승 속도는 세계 평균보다 두 배나 빠릅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계절의 감각을 잃고 있습니다. 계절이 무너진 자리에 남은 것은 점점 뜨거워지는 여름과 그에 따른 불안감입니다.
식탁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습니다
기후 위기는 이제 농업과 식량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온에 취약한 배추, 고추, 감자, 사과 같은 작물들은 점점 제때 자라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고랭지에서도 예전만큼 배추를 수확하지 못하고,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닥치며 작물 품질도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재료들이 머지않아 귀한 음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식량 부족 → 물가 상승 → 생계 위협으로 이어지며, ‘기후 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 가혹하게 다가옵니다.
도시 전체가 잠긴다면
기후 위기의 결과는 뜨거움만이 아닙니다.
기온이 지금보다 3도 더 오르면, 서울 상암동과 인천, 김포 같은 저지대는 바닷물에 잠길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미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이 비슷한 재난을 겪고 있습니다. ‘100년에 한 번’ 올 비가 한 달에 두세 번 쏟아지고, 유럽, 중국, 미국 도시들이 물에 잠겼습니다. 기후 재난은 미래의 가상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입니다.
건강도 기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폭염은 단순히 불쾌한 날씨가 아닙니다.
고온다습한 날씨는 심혈관계 질환을 악화시키고, 호흡기 질환, 신장 질환에도 영향을 줍니다. 노인, 어린이, 임산부, 야외 노동자는 특히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모기와 진드기 같은 해충이 늘어나며, 말라리아, 뎅기열, 라임병 같은 열대병도 우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임신 중인 여성은 폭염에 더욱 민감하고, 조산 위험이 60% 가까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나왔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기후 위기의 첫 번째 피해자가 되고 있는 셈입니다.
지구는 지금 열을 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실효과는 원래 지구를 살기 좋은 온도로 유지해 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온실가스가 과도하게 늘며, 지구는 열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혀버렸습니다. 마치 두꺼운 이불을 덮은 채 숨조차 쉬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과학자들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단 0.01% 증가해도, 매초 4개의 원자폭탄이 터지는 열을 가둔다고 말합니다.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이미 그 열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타노스의 핑거스냅이라도 필요할까?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단번에 세상의 절반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지금의 기후위기도 막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현실에는 그런 손가락 하나 튕기는 해결책은 없습니다. 우리는 속도를 줄이고, 소비를 멈추고, 구조를 바꾸는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기후위기를 멈추는 데 필요한 건 신비한 초능력이 아니라,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와, 함께 바꾸려는 사회적 의지입니다. 결국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개개인이 애써도 위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개인의 실천, 그러나 함께여야 합니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에코백을 사용하는 것—모두 작지만 소중한 실천입니다.
그러나 기후 위기를 멈추기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위기는 함께 만드는 시스템으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정보와 실천이 나란히 가고, 이를 지지할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정부가 방향을 잡고, 기업이 구조를 바꾸며, 시민이 행동할 수 있을 때 변화는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 가능성을 우리는 이미 본 적이 있습니다. 1992년, 슈퍼스타들이 무대에 올라 환경을 노래했던 환경콘서트 〈내일은 늦으리〉. 그날의 외침은 음악을 넘어, 모두가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였습니다. 기후 위기 앞에서도 우리는 다시, 그렇게 함께여야 합니다.
이제는 선택의 시간입니다
이 더위는 단지 유난스러운 여름이 아닙니다.
이상기후는 먼 나라의 이야기도, 뉴스 속 통계도 아닙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멈추고, 바꾸고, 선택한다면 다음 세대는 조금 덜 뜨겁고, 조금 더 살기 좋은 여름을 맞을 수 있습니다. 타노스의 스냅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겐 ‘함께할 의지’가 있다면, 아직 희망은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