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과잉의 시대, 큐레이션의 안목을 높이는 법
지금 이 순간에도 수억 건의 콘텐츠가 쏟아지고, 또 소비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정보가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보가 넘쳐나서 방향을 잃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택의 가능성이 많아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선택 그 자체가 점점 더 버거워지는 요즘.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그 안에서 덜어낼 줄 아는 힘, 그리고 골라낼 줄 아는 눈일지 모릅니다.
기억 저편의 큐레이션
지금은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읽고, 자동으로 콘텐츠를 추천해 주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시스템보다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부산 사직동의 이층 다락방. 형님이 한 곡 한 곡 정성스럽게 골라 만든 믹스테이프에는, 당시에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인디밴드의 음악들과 팝송들이 아름답게 엮여 있었습니다. Sarah Vaughan의 “A Lover’s Concerto”로 시작하던 그 테이프는, 유행을 좇지 않고 자신의 감각만으로 완성한 조율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큐레이션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모아 정성껏 건넨 그 행위 자체가요. 그 진심은 제게 무척이나 세련되게 다가왔고, 지금도 선명하게 마음 한 켠에 남아 있습니다. 그보다 앞선 시절에는 ‘길보드 차트’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시내 리어카에서 흘러나오던 “몇 월 몇째 주 최신 인기 가요”라는 이름의 컴필레이션 테이프. 기획자도, 이름도 없었지만 그 안에는 당대의 대중들이 선택한 노래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배우 이미연을 모델로 내세운 ‘연가’ 시리즈가 무려 160만 장 이상 팔려나갔고, ‘NOW’나 ‘MAX’ 같은 컴필레이션 앨범은 90년대 음악 팬들의 필청 리스트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모두가, 누군가의 취향과 감각이 모여 빚어진 큐레이션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넘치는 정보, 사라지는 감각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음악은 넘쳐나고 플랫폼은 정교해졌지만, 오히려 “들을 게 없다”는 말이 익숙해졌습니다. AI가 분석해 주는 추천 리스트엔 익숙하고 무난한 곡들만 가득합니다. 낯설지 않은 만큼, 인상도 남기지 않습니다. 형님표 믹스테이프처럼, 누군가의 취향과 진심이 깃든 선곡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추천은 넘치는데, 그 안에 사람의 온기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건 비단 음악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AI가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거대한 데이터셋을 학습한 언어모델이 그럴듯한 문장을 쏟아내는 시대.
그럴듯함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진짜를 가려낼 수 있을까요? AI는 보통 ‘자주 언급된 것’, ‘많이 클릭된 것’을 우선시합니다. 그 결과물은 평균값에 가까운 정답일지는 몰라도, 언제나 가치 있는 선택은 아닙니다. 오히려 깊이를 잃은 피상적 정보에 노출되기 쉬운 구조이기도 합니다.
‘추천’이라는 이름의 설계
이제 큐레이션은 더 이상 미술관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책 큐레이션, 뉴스 큐레이션, 쇼핑 큐레이션, 음악 큐레이션… 우리는 선택마저도 누군가에게 ‘위임’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추천은 정말 ‘나만을 위한 것’일까요? 많은 경우, 그 이면에는 마케팅 전략과 구매 전환을 유도하는 설계, 그리고 광고 알고리즘이 숨어 있습니다. 남이 정한 취향을 소비하면서도 그것이 나의 선택인 줄 착각하게 되는 시대. 끊임없이 제시되는 추천 속에서, 점점 무뎌지는 감각. 그것이 내가 원한 것인지, 원하도록 설계된 것인지조차 모호해지는 순간들. 바로 그때 ‘알고리즘 피로감’은 시작됩니다.
우연과 느림의 복원
그래서일까요. 요즘 저는 다시 종이 잡지를 펼칩니다. 한 달에 적어도 세 번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도서관을 찾습니다. 가장 애정하는 곳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디지털도서관’. 이름은 디지털이지만, 실상은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 있는 조용한 도서관입니다. 본관 뒤편에 다소 숨어 있어 많은 이들이 존재조차 모르지만, 그만큼 고요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품고 있습니다. 유리창 너머 계절의 풍경을 바라보며 책장을 넘기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릅니다. 이곳 정기간행물 코너에는 예술, 건축, 디자인, 문화 잡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편집물 사이를 유영하다 보면, 묵직한 이미지 하나, 짧은 문장 하나가 마음을 붙잡기도 합니다. 잡지를 넘기는 행위에는 목적도 방향도 없습니다. 검색어를 입력해 정답을 뽑아내는 디지털 방식과는 전혀 다른 감각의 흐름. 예상치 못한 주제와 조우하고, 낯선 세계와 연결되는 기쁨.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잊고 지낸 ‘우연의 발견’ 아닐까요? 도서관의 책상에 앉아 잡지를 펼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문장 하나가 오래된 감정을 건드리고, 낯선 이미지 하나가 잊고 있던 꿈을 조용히 불러옵니다. 소란한 세상은 멀어지고, 나만의 속도로 사유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손으로 고르고, 마음으로 담는 일
종이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마음에 닿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조용히 생각을 메모하는 일.
이 아날로그의 감각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능동적인 창조의 과정입니다. 그건 마치 공예처럼—고르고, 느끼고, 다듬으며 하나의 감각을 천천히 빚어가는 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저는 틈날 때마다 플레이리스트를 만듭니다. 길보드 차트를 지나, 형님표 믹스테이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요. 얼마 전 부산으로 향하는 장거리 운전길에, 직접 만든 리스트를 틀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바다와 하늘, 이어지는 고속도로의 리듬 위에 제가 고른 음악들이 하나씩 얹히는 순간들. 그건 단순한 ‘신남’을 넘어서는 감정이었습니다. 도파민처럼 순간적으로 튀어 오르는 자극이 아니라, 엔돌핀처럼 부드럽고 지속적인 행복감이 몸을 가만히 채워갔습니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신나고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함께 옆에서 달려주는 느낌이랄까요. 그날의 리스트는 단순한 곡 모음이 아니라, 기분과 풍경, 그리고 내 안의 리듬이 고스란히 담긴 하나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나만의 큐레이션으로
좋은 큐레이션이란 단지 좋은 것을 모아놓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감각의 실마리입니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되 시대를 놓치지 않고, 모두가 말하는 것만 좇지 않되 진짜 중요한 것을 알아보는 눈.
그런 안목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습니다. 김영민 교수는 말합니다. “자신의 감각이나 지성이 퇴화하지 않으려면, 다양한 양질의 자극에 꾸준히 노출되어야 한다.” 정보가 많다고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보를 만나는 방식,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감각을 단련합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진심은 여전히 귀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큐레이션을 믿습니다. 그것이 정보가 아니라 ‘안목’을 담은 선택이라면, 그 손길 하나하나가 우리 안의 감각을 다시 깨우는 일이 될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