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프라의 공통 규격이 지난 12개월 사이 자리 잡은 과정
작년 이맘때만 해도 'MCP'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은 소수의 개발자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 공개된 숫자를 보면 분위기가 완연히 달라졌죠. 한 달에 9,700만 번 다운로드. 2024년 11월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와 견주면 16개월 만에 약 48배 커진 셈입니다. 실험실에서 조용히 굴러가던 규격이, 산업 인프라 축에 공식으로 들어섰다고 보면 됩니다.
본격적인 얘기로 들어가기 전에 MCP가 대체 무엇인지부터 같이 풀어보겠습니다.
이름이 낯선 분을 위해 쉬운 비유로 가볼게요.
ChatGPT나 Claude 같은 AI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씁니다. 다만 혼자서는 내 구글 캘린더를 들여다보거나 회사 슬랙 메시지를 읽어오지 못하죠. AI에게 "내일 회의 일정 확인하고 팀에 공유해 줘"라고 부탁하려면, AI가 구글 캘린더와 대화하는 법도 알고 슬랙과 대화하는 법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외국 여행 가서 각 나라 말을 따로따로 배워야 주문을 할 수 있는 상황과 비슷하죠.
문제는 앱마다 '말'이 전부 달랐다는 점입니다.
구글 캘린더에 묻는 방식, 슬랙에 묻는 방식, 노션에 묻는 방식이 제각각이었어요. AI 회사는 앱이 하나 늘 때마다 '또 새로 배워야' 했고, 앱 회사는 'ChatGPT용, Claude용, Gemini용'을 따로따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양쪽 다 힘든 구조였던 셈입니다.
MCP는 여기에 '모두 같은 말투로 대화하자'는 약속을 들고 왔습니다. 앱은 MCP 방식으로 창구 하나만 열어두면 되고, AI는 MCP만 읽을 줄 알면 어떤 앱과도 연결됩니다. 휴대폰 충전기 얘기를 떠올려 보세요. 예전엔 안드로이드는 마이크로 USB, 아이폰은 라이트닝, 노트북은 또 다른 모양이라 집에 충전기가 서너 개씩 굴러다녔습니다. 지금은 거의 다 USB-C로 바뀌면서 하나만 있어도 대부분 충전이 되죠. MCP가 AI와 앱 사이에서 하는 일이 바로 그 'USB-C' 역할입니다.
실제 구조는 이렇습니다. 어느 회사가 자기 서비스를 AI에 연결하고 싶으면 'MCP 서버'라는 창구를 하나 만들어 둡니다. AI 앱은 그 창구에 말만 걸면 해당 서비스의 데이터와 기능을 끌어다 쓸 수 있어요. 양쪽이 같은 규격을 쓰기로 약속했으니 중간에 번역기를 둘 필요가 없어진 거죠. 이게 왜 그렇게 난리인지는 다음 섹션 숫자들이 말해 줄 겁니다.
원래 MCP는 Anthropic이 내부용으로 만들어 공개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런데 작년 12월 리눅스 재단 산하 'Agentic AI Foundation'으로 기증되면서 특정 회사의 것이 아닌 오픈 표준이 됐습니다. 이 재단에는 OpenAI와 Block이 공동 창립 멤버로 이름을 올렸고, AWS·Google·Microsoft·Cloudflare·Bloomberg가 지원 멤버로 붙어 있죠.
공개된 MCP 서버는 1만 개를 넘었습니다.
Claude, ChatGPT, Cursor, Gemini, Microsoft Copilot, VS Code 같은 주요 AI 도구가 전부 MCP를 기본으로 받아들이고 있고요. 10만 건 수준이던 월 다운로드가 16개월 만에 9,700만까지 불어난 속도는, 인프라 프로토콜 역사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궤적입니다.
저는 이 지점이 제일 흥미로웠습니다. 개별 AI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그들을 연결하는 배관'에 이만한 자본과 참여가 몰린다는 건, 이제 승부처가 모델이 아니라 생태계라는 뜻이거든요. 2년 전만 해도 '어느 모델이 제일 똑똑한가'가 대화의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어느 모델이 무엇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됐습니다.
지난 3월 9일, MCP 공식 블로그에 2026년 로드맵 문서가 올라왔습니다.
MCP 리드 메인테이너 David Soria Parra가 쓴 글인데, 네 개의 우선순위를 제시합니다. 그중 일반 독자에게 의미가 닿는 세 가지를 골라 풀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MCP는 기술자 한 명이 자기 노트북에서 쓰기 좋은 구조로 돌아갔습니다. 이제는 수많은 사용자가 동시에 찾는 서비스 위에 올라가야 하는 단계죠. 서버를 여러 대로 쪼개 띄워도 대화 세션이 꼬이지 않도록, 그리고 서버가 어떤 기능을 제공하는지 굳이 연결하지 않아도 외부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규격을 다시 짜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공장으로 치면, 컨베이어 한 줄만 쓰던 라인을 여러 줄로 늘리고 각 라인 입구에 품목 안내판을 세우는 공사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결정은, 전송 방식을 새로 추가하지 않고 기존의 Streamable HTTP 한 갈래를 다듬어 가겠다고 못 박은 부분입니다. '선택지를 늘려 혼란스럽게 만드는 대신 쓰던 걸 다듬는다'는 태도인데, 표준이 성숙기로 접어들 때 나오는 전형적인 결정이죠.
'Task'라는 이름의 규격이 작년 말 실험용으로 올라갔습니다. AI 에이전트가 다른 에이전트에게 일을 맡기고, 결과를 돌려받는 방식에 관한 약속입니다. 실제 현장에서 돌려보니 부족한 게 드러났습니다. 작업이 일시적으로 실패했을 때 몇 번까지 다시 시도할지, 결과를 얼마나 오래 보관할지 같은 세부 규칙이 비어 있었던 거죠.
2026년에는 이 틈을 메우는 작업이 이어집니다.
일단 써보고 부족한 곳을 메우는 방식인데, 사람 팀으로 치면 '누가 무슨 일을 언제까지 마치고, 실패하면 어디에 보고한다'를 문서로 남기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로드맵을 보면 앞으로도 이 패턴을 유지하겠다고 명시했습니다. 실험적으로 내보내고, 쓰이는 걸 보고, 고친다.
로그인 한 번으로 회사 계정을 연결하는 통합 인증(SSO), 누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 남기는 감사 기록, 보안 게이트웨이 동작 방식, 회사 정책에 맞는 설정 이동 같은 항목이 올라와 있습니다. 회사에서 쓰려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안전장치들인데, 이걸 '덤'이 아니라 정식 로드맵 항목으로 올렸다는 건 기업 시장을 본격적으로 의식한다는 신호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부분을 아직 전담하는 Working Group이 꾸려지지 않았다는 대목입니다. '이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직접 작업을 정의해 달라'고 공개 모집 중이죠. 필요가 가장 구체적인 현장이 규격을 쓰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데, 기존 표준 기구들의 관성과는 결이 다릅니다.
네 번째 우선순위는 '거버넌스 성숙'인데, 누가 어떻게 규격을 결정할지에 대한 내부 절차 정비라 일반 독자와는 거리가 있어 짧게만 남깁니다. 지금까지 모든 제안이 코어 메인테이너 전수 검토를 받아야 했던 걸, 분야별 Working Group에 일부 권한을 넘기는 방향으로 간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소수 결정에서 분산 결정으로' 옮겨가는 중이죠.
저는 세 번째 항목이 가장 눈에 남았습니다. 기술이 재미있는 단계에서 '회사에서 어떻게 써야 하나'로 관심사가 옮겨갔다는 건, 이 표준이 유행 국면을 지났다는 방증이기도 하거든요.
시장조사 기관 Forrester가 작년 말 발표한 2026년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예측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기업용 앱 벤더의 30%가 자체 MCP 서버를 출시할 것이다." 풀어 쓰면,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들이 AI 에이전트가 자기 앱 안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전용 창구를 스스로 깔겠다는 얘기입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기업이 AI를 도입할 때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기존에 쓰던 시스템과 어떻게 붙이느냐'입니다. 지금까지는 벤더마다 연결 방식이 제각각이라, 연결 자체가 별도 프로젝트였죠. 벤더들이 MCP를 기본으로 장착하면 고객사는 '어떤 AI를 쓸지'만 고르면 됩니다. 벤더 자물쇠가 풀리는 효과가 생기는 거죠.
반대로 벤더 입장에선 AI 에이전트가 자기 앱 안으로 들어와 작업과 거래를 만들어 주길 원합니다. MCP를 달아두면 그 통로가 열리고, 에이전트가 늘어날수록 자기 앱이 쓰이는 횟수도 늘어나게 돼 있습니다. 양쪽 이해가 맞으니 채택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어요.
Forrester의 30%라는 숫자가 실제로 맞을지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드러날 겁니다.
다만 이미 큰 SaaS 벤더들이 MCP 서버 발표를 하나둘 내놓고 있는 걸 보면, 방향만큼은 확실해 보입니다.
정리하면, 지난 1년 사이 MCP는 세 단계를 빠르게 통과했습니다.
개인 개발자용 도구로 시작해, 리눅스 재단 산하 오픈 표준이 되고, 이제 기업 시장의 사실상 표준 자리를 노리는 단계로 올라왔습니다. 체감하기에는 빠른 속도지만, 표준이 자리 잡는 전형적인 궤적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과정에서 MCP가 '조용히 깔리는 배관'이 되어가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화려한 모델 경쟁은 매주 뉴스에 오르지만, 몇 년 뒤에 판을 결정짓는 건 보통 이런 배관 표준일 때가 많아요. 전기 콘센트 규격이 그랬고, USB가 그랬고, HTTP가 그랬죠. 사용자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대체로 이쪽이었습니다.
2026년 말에 이 글을 다시 꺼내 보고 싶습니다. Forrester가 말한 30%가 맞았는지, 9,700만이던 월 다운로드가 어디쯤 가 있는지 확인해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거든요. 표준이 자리를 잡는 시기에 그 현장을 지켜본 기록으로 남기는 의미도 있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