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줄곧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륜에 대해서는 유독 지나치게 죄악시한다고 생각해 왔다.
인간도 아니라는 뜻의 不倫.
그 단어 자체도 너무하다고 생각해 왔다.
상대방의 인생에 큰 시련을 안겨주는 가학적인 행동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서로만 바라보자는 그 헌신적이고 무거운 맹세를, 그리고 결혼이라는 엄연한 계약을 위반한 것도 맞다.
그리고 애초에 기혼자라면 다른 사람에게 더 설레거나 가까워질 수 있는 은밀한 환경을 피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이 늘 그렇게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교통사고처럼 만난 그 사람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어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나 크고 강해서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결혼 상대에게는 죽을죄를 지은 것이 맞지만, 제삼자인 우리가 이 불륜을 저지른 사람들을 인간이 아니라고 손가락질하며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하는 부류의 죄인지는 늘 갸우뚱했다.
서른다섯 해의 삶을 살면서 내 지인의 불륜을 목격하게 되는 일들이 생기곤 했다. 나는 그들의 불륜을 들으며 딱히 어떤 잣대를 들어 판단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나의 친구였다.
1. 미나는 일본인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별거한 지 오래, 구두 상 이혼을 하기로는 합의는 했지만 아직 법적으로는 기혼 상태라고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땐 늘 싱글이라고 자기를 소개했지만 결혼한 사실을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나는 그녀가 여러 남자들과 잠자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를 믿어서인지 자기 얘기를 줄줄 터 놓았다.
"난 말이야. 처음에는 조금 주저했거든? 근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이 잘생기고 멋진 남자들이 나한테 욕망을 내비치는데, 내가 굳이 마다해야 할까?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주고 하기도 하거든. 그래서 와이낫이라는 생각을 했어."
미나가 언급한 남자 중에는 내가 아는 유부남 케이도 포함됐었다. 그는 아주 가정적인 남자로 소문이 났었는데, 그가 이렇게 뒤에서는 콩깍지를 까는 유형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조금 메스꺼웠다. 그 남편의 아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딱히 미나에 대해 별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녀는 어쨌든 남편과 이혼이 합의된 상태 아닌가? 버젓이 사랑하는 아내가 있으면서 욕망을 못 참는 그 남자가 더 문제 아니야?
2. 세라는 남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나이뿐만 아니라 한눈에 봐도 남편과 그녀의 취향은 너무나 달랐다. 예술을 사랑하고 세심하고 고급스러운 그녀의 취향에 반해 그녀의 남편은 투박하고 푸근한 인상 좋은 아저씨 같았다. 그녀는 외동이었고, 이른 나이에 아빠가 돌아가셨다. 외로운 마음에 그녀는 젊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을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세심한 감정선과, 까다로운 취향에 꼭 들어맞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매일매일이 불안하고 죄의식으로 가득 찼지만 멈출 수 없는 격정의 연주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세라의 삶의 모든 촉수가 이 남자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그 남자는 유부녀를 만난다는 부담감과 죄책감에 압도당해 세라를 떠났다. 한바탕 꿈이 끝나버렸고 세라의 남편은 이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한번 남편이 아닌 남자에게 사랑을 느낀 세라는 다시 남편의 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혼을 결정했다.
3. 은지는 참 예쁘고 똑똑한 아이였다. 솔직하기까지 했다. 은지와 얘기하고 있으면 그녀의 매력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한 번은 좀 특이한 남편의 취향을 내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남편은 자기 통제 하에 은지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가져보는 것을 줄곧 제안하곤 했다고 한다. 통제하라고 함은 남편이 상대 남자를 알게 하고, 또 영상으로 남편이 이 장면을 볼 수 있게 함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정말 이해되지 않는 취향이지만 별별 판타지가 다 있네 하고 웃어넘겼다. 은지는 타고난 아름다운 외모에 매력도 철철 흘리고 다니는 타입이라, 그녀가 결혼한 사실을 다 알지만 주위엔 늘 남자들이 득실거렸다. 그녀는 그중 제일 잘 생기고 몸 좋은 남자 한 명을 골라 혹시 이런 플레이(영상촬영과 자기 남편과의 대화 등)에 관심이 있는지 물었다. 평범한 남자라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예상대로 그는 거절을 했고, 그래도 잠자리를 했다. 그녀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 남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취미가 있는지, 어떤 노래를 듣는지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그 남자의 외모가 좋았고, 잠자리가 궁금했고, 즐기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일은 남편에게 함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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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불륜을 당한 친구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한 번도 통화해보지 않은 그녀가 갑자기 통화되냐며 다급히 전화를 하기에, 전화를 받자마자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하고 물었는데
"남편이 바람피운 걸 발견했어.. 어떡해.."라고 말하는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내 억장도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의 워너비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할 만큼 사이가 좋아 보이던 커플이었는데... 믿기지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의 공부를 위해 자기가 번 돈을 지원해 주고, 직장도 옮겼다. 그녀는 늘 남편에게 관대했고 진정한 행복을 바라줬다. 그녀가 한 배려와 희생을 읊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남편과 오랜 시간 동안 살았기 때문에 모든 디바이스의 패스워드며 클라우드며 다 공유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남편의 메신저를 봤다가 모든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남편과 상간녀의 은밀하고 끈적한 대화를 다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바람을 피우는 것을 방관한 친구들도 이미 꽤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녀의 친구들이기도 했다. 모두가 눈감고 어느 누구도 자기에게 귀띔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녀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나는 그녀와 같이 울고 분노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 그동안 너무 관대했던 걸까. 도덕적 잣대가 아예 없었던 걸까.
옆 나라 잔치 얘기 듣듯 불륜을 목도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