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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일생'이라는 조각보

아버님 회고록을 정리하며

by 허근

우리나라 전통공예 중 ‘조각보’는 여러 조각의 자투리 천을 모아 쓸모 있는 보자기를 만드는 한국 고유의 민속문화이다. 비록 옷이나 이불을 만들다가 남은 천을 모아 보자기를 만들었지만, 선과 색상, 규칙과 불규칙이 어우러져 독특한 조형미를 구성하는 우리나라 대표 이미지 중의 하나다.

몇 달 전 고향에 내려갔더니 아버님이 자료를 한 뭉텅이 내놓으시면서 정리를 해달라고 하셨다. 거기에는 신문 기사를 오려 붙인 스크랩북, 명함, 사진, 지금은 볼 수 없는 축하 전보, 원고지에 쓴 여행기, 퇴임사, 각종 기고문, 부모님 편지, 각종 상장, 청첩장과 부고장 등 아버님이 걸어온 길의 자투리 기억과 기록들이 모여 있었다. 이걸 가지고 자신이 걸어온 길의 조각보를 만들어 달라는 암묵적인 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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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하고 자료를 받아 들고 집으로 오기는 했으나 책상 위에 펼쳐 놓으니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했다. 자료들은 가정과 직장, 시간과 공간, 부모님과 지식, 기억과 기록 등이 서로 엉켜있었다. ‘정리할 수 있을까?’


우선 모든 자료를 스캔해 원본 이미지 파일을 만들고 하나하나 내용을 검토해 시간과 주제별로 분류했다. 1차 분류된 자료를 7개 대분류로 나누고 시간별로 세분화하여 2차 정리했다. 아래한글로 원고를 정리하고 포토샵으로 스캔한 이미지를 자르고 보정했다. 신국판 크기로 아래한글에서 최종 편집해 보니 약 200페이지 분량이 나온다. 추가되는 아버님 원고와 기억되는 시간으로 수정하고 정리한 것이 이 책, ‘一松 許順七 걸어온 길’이라는 조각보이다. (아래한글로 최종 정리중이며 2026년 1월말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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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걸어오신 길을 하나하나 엮어 조각보를 만들고 나니 마치 내가 그 길을 걸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나라면 ‘저 시간, 저런 상황에서 아버님처럼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결코 내 머릿속으로는 판단할 수 없었다. 아버님은 그 시간을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살아오셨으니까.

이제 아버님은 百歲를 바라보는 연세인데도 정정하시니 자식들 처지에서는 감사할 뿐이다. 아버님이 먼저 요청하기 전에 자식들이 먼저 삶의 기록을 만들어 드려야 했는데 죄송할 따름이다. 부모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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