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보 타케히코 명예교수 강연(2)
'“주민이 주인이다” 일본 정촌에서 배우는 자치의 힘' 기사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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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계획을 수립해나갈 때 자치는 비로소 살아있게 됩니다.”
호보 교수는 두 번째 강연에서 일본 정촌 사례를 통해 주민 주도 자치의 현실과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지역 자치의 성패가 ‘주민이 무엇을 지향하고 어떻게 참여하는지’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가 주도의 일방적인 정책이 아닌, 지역사회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와 여론 형성 과정을 중요하게 짚었다.
호보 교수는 이 강연에서 자치의 본질을 다시 상기시켰다. “주민의 의지가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것.
“진정한 출발점은 국가나 제도가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살아가려는 주민들의 실천입니다.”
1) 압도적 여론이 바꾼 간척 사업 중단
시마네현 공공개발사업 반대 운동은 각종 개발사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 국가가 주도한 대규모 간척 사업(신즈코, 나카오미 호수 간척)이 지역 여론의 압도적 반대 속에 결국 중단된 사례다. 당시 지역 주민들이 진행한 반대 서명운동에는 총 51만 명이 참여하며 거대한 국가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호보 교수는 이 운동을 회고하며 “저도 처음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 생각했지만, 주민들의 압도적 지지가 쌓이면서 정부조차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두 가지 요소로 ‘여론의 힘’과 ‘학문적 검증’을 꼽았다. 생태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간척이 초래할 피해를 논리적으로 반박했고, 주민들은 강에서 살아가는 어부, 생물, 물 자체의 이야기를 들으며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간척은 2000년대에 공식적으로 중단됐다.
“강의 문제는 강에게 물어보라.”
호보 교수가 인용한 이 말은, 주민의 삶과 지역 생태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야말로 정책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함을 일깨운다.
2) 자립을 선택한 섬마을, 아마정
인구 2천300명 규모의 시마네현 아마정은 정부가 추진한 세 지자체 합병 정책을 거부하고 독립을 선택한 지역이다. 당시 아마정 정장은 “우리 섬의 문제는 우리가 결정한다”며 주민들의 자율적 판단을 강조했다.
아마정은 수비전략과 공격전략이라는 두 가지 접근으로 자립 기반을 다졌다. 먼저 정장을 비롯한 공무원과 의원들이 급여 일부를 반납하고, 노인들은 버스요금 할인 혜택을 자진 반납하는 등 절약운동이 주민 전반으로 확산됐다. 이를 통해 3억 엔의 재정을 모은 후, 지역 특산물 판매와 냉동기술 개발을 통해 수익 기반을 넓혔다.
또 하나의 대표 사례는 ‘섬 유학’이다. 외지 청년이 지역 고등학교에 입학해 섬에서 배우고 살아보는 프로그램으로, 지역사회 학습과 인성 교육을 중시하며 전국의 주목을 받았다. 그 결과 입학생과 학급 수가 늘었고, 연고 없이 귀어·귀촌한 청년층이 지역 인구의 3분의 1에 이를 정도로 증가했다.
3) 운난시의 실험: 지역자주조직(RMO)
시마네현 운난시는 6개 정촌이 합병해 만들어진 도시로, 합병 이후 정촌 단위의 주민 의사 반영이 어려워지자 ‘지역자주조직(RMO, Regional Management Organization)’을 설립했다. 각 지역자주조직은 과거 공민관을 ‘지역교류센터’로 확대 개편해 주민 활동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 조직은 수도 검침, 생활지원, 돌봄 업무 등 다양한 행정 사무를 단순한 보조금이 아닌 사무 위탁 방식으로 수행하며, 지역 내 다양한 기관과 단체가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돼 유연하고 효율적인 운영을 이어간다. 현재 30개 지역자주조직이 운난시 전역에 분포해 있으며, 이는 농촌 지역자주조직의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4) 아이 키우기 좋은 농촌, 오오난정의 선택
농촌에서도 육아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가 오오난정이다. 일본의 많은 농촌 지자체가 고령화 문제에 집중할 때, 오오난정은 ‘아이 키우기 좋은 마을’을 핵심 비전으로 삼았다. 그 결과, 사망률과 출생률을 감안해도 전입자가 전출자보다 많은 순유입 현상이 발생했고, 합계출생율도 5년 평균 2.2명에 달해 도쿄의 평균(1.4명)을 크게 웃돌았다.
5) 내발적 발전의 대표, 시모가와정
시모가와정은 일본에서도 자립형 지역 발전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대부분이 국유림으로 구성된 산간 지역에서, 지자체는 자체 산림 3천ha 확보라는 목표를 세우고 매년 50ha씩 조림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벌목, 산림 바이오매스 발전, 전력 판매 등으로 수익을 창출해 재정 자립을 실현했다.
특히 다른 지자체들과 달리, 대기업 유치나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인 실행조직과 연구조직을 구축해 지역발전 방향을 명확히 설정한 점이 인상적이다.
월간 옥이네 94호
글 박누리
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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