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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방자치, 에도시대부터 이어진 주민 주권의 역사

읍면자치공동행동 1차 집중학습회, 추가 기록(1)

by 월간옥이네

읍면자치공동행동이 주최한 제1차 집중학습회는 ‘일본 지방자치의 역사’를 단순한 해외 사례가 아닌, 한국 읍면자치의 현실과 미래를 돌아보는 거울로 삼고자 마련됐다.


에도시대부터 시작된 일본 주민자치의 전통, 메이지 시대의 중앙집권화, 전후 민주적 자치 회복과 그 이면의 딜레마까지 - 일본의 자치 역사와 현실을 통해 우리는 ‘자치는 행정이 아닌 민주주의’라는 본질적 질문 앞에 서게 된다. 한국 읍면자치의 과제와 희망, 그 단서를 이 기록에서 찾을 수 있길 바라본다.


이 글은 읍면자치공동행동 1차 집중학습회 당시 현장에서 오간 추가 설명과 질의응답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월간 옥이네 94호 지면에 다 담지 못한 내용을 온라인 단독으로 발행하는 보충 기획입니다.


박경 교수

[Q&A] 일본 지방자치의 역사적 배경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목원대 박경 명예교수는 일본 지방자치의 역사적 기원과 흐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1990년대 초반에서야 시작됐지만, 일본은 더 긴 역사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 지방자치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찾을 수 있습니까? 전후 헌법과 함께 시작된 것인가요, 아니면 봉건제 시절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인가요?”


이케가미 히로미치 전 이사장은 에도시대(1600~1868년)에서 일본 지방자치의 기원을 찾았다.


“일본 지방자치는 전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에도시대부터 존재했던,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자치구조입니다. 당시 일본은 전국이 약 300개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지역은 일정 수준의 자치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 행정 책임자들이 있었고요. 실제로 농민들이 권리를 요구하며 일으킨 봉기만 에도시대 동안 3천 건이 넘습니다.”


이케가미 전 이사장은 “흥미로운 점은 그 봉기들이 대부분 폭력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됐다는 사실”이라며, 이러한 경험이 일본 지방자치의 전통을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잠깐!

"일본 에도시대는 막부(중앙 군사정부)에 충성을 바치는 대가로 각 번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세습이 허용된, 전형적인 봉건제 사회였습니다. 다만, 이케가미 선생은 이 시기 번국의 자율적인 운영이 분권적 지방 운영의 경험과 문화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자치제의 뿌리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번의 주민들이 직접 주권을 행사하지 못한 점에서, 현대적 의미의 자치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농민(또는 농노)의 반란이 민중의 민주적 의식 형성에 기여했다는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겠습니다."

-동양대 황종규 교수의 추가 설명


그러나 일본의 지방자치 역사에도 어두운 시절이 존재했다. 그는 특히 1940년 ‘국민총동원령’을 통해 국가가 마을 단위까지 직접 간섭하던 시기를 설명했다.


“국가가 마을의 일상에까지 강하게 개입한 것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 시스템을 한국에도 그대로 강요했고, 이는 식민지 조선의 마을 조직을 통해 국가 권력이 침투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는 오늘날 한국의 이장 임명제와도 연결됩니다.”


IMG_3576.JPG 박경 교수의 질의를 이케가미 전 이사장(가운데)이 메모하며 듣고 있다.


그는 이어 전후 일본에서 일어난 지방자치의 부활을 설명했다. 전후 고도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심각한 환경 문제가 주민자치 운동을 촉발했고, 주민들의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혁신 지자체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려 나섰고, 이를 통해 주민이 진정한 주권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국가가 아니라 지역 주민이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당시 주민자치 운동의 정신이었습니다.”


이케가미 전 이사장은 이어 1999년 일본에서 있었던 지방분권일괄법 제정 이후, 지방자치단체 지원금이 대폭 삭감된 고이즈미 정권 시기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법적으로는 지방자치가 강화됐지만, 동시에 지원금 삭감으로 지방은 다시 위기를 맞았습니다. 정부는 시정촌을 대규모로 합병하려 했지만, 전국의 주민들이 끝까지 저항하면서 결국 합병을 제한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이 또한 주민자치가 지닌 힘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끝으로 그는 일본의 경험이 한국 지방자치에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주민 의견 없이 정당이나 파벌의 이해관계로 정책이 결정된다면, 주권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지역의 일은 국가가 아니라 주민이 결정해야 합니다. 한국의 읍면자치가 꼭 참고해야 할 부분입니다.”



[추가 해설] “합병은 자치력 약화시키는 정치적 전략”


‘헤이세이 대합병’에 대한 추가 설명도 이어졌다. 1999년 일본 정부가 추진한 합병은 전국 기초지자체 수를 대폭 축소했지만, 도쿄도 같은 지역은 합병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합병하지 않으면 지방교부세를 주지 않겠다며 압박했습니다. 가난한 지역은 강제로 합병됐지만, 도쿄도는 지방교부세 의존도가 낮아 대부분 버텼습니다. 이는 지역의 재정 독립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케가미 전 이사장은 일본의 도주제(都州制)에 대한 질문에 답하며 이러한 합병 움직임이 결국 ‘작은 정부론’이라는 정치적 전략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도주제의 제안 배경에는 공무원 수를 줄이고 인건비를 삭감하려는 목적이 숨어있습니다. 경제단체들이 주도해 공공부문을 축소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결국 이는 자치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재정문제는 권한만큼 중요한 변수”

이케가미 전 이사장은 국가 부채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군국주의 흐름 속에서 군사비 지출이 늘어난 일본 정부가, 한편으론 행정 효율성을 이유로 지방자치단체 합병을 추진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라 꼬집었다.


“일본 정부가 군사비 등 불필요한 지출로 발행한 적자 국채는 국민총생산(GDP)의 250%에 달합니다. 지방의 재정이 아니라 국가의 재정 운영이 비효율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자치단체가 주민을 위해 사용하는 돈은 오히려 건전한 부채입니다.”


그는 읍면자치의 가능성을 재정적 관점에서 막연히 부정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중앙정부의 재정 운용 문제와 지역의 자치권 문제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결국 자치는 주민이 자신의 돈을 스스로 쓰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잊으면 자치는 불가능합니다.”





박누리

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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