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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방자치 역사를 통해 본 한국 읍면자치의 과제

읍면자치공동행동 1차 집중학습회, 추가기록(2)

by 월간옥이네


이 글은 읍면자치공동행동 1차 집중학습회 당시 현장에서 오간 추가 설명과 질의응답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월간 옥이네 94호 지면에 다 담지 못한 내용을 온라인 단독으로 발행하는 보충 기획입니다.


동양대 황종규 교수는 읍면자치 공동행동 집중학습회에서 일본 지방자치의 역사와 현실을 통해, 한국 읍면자치의 본질과 과제를 짚으며 이해를 도왔다. 그는 “우리가 일본 지방자치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히 다른 나라 사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방자치가 가진 한계를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함”이라고도 밝혔다.


일본 지방자치의 역사로 본 자치 개념의 변천

황종규 교수

에도시대와 조선시대의 근본적 차이

황 교수는 일본 지방자치 역사를 크게 세 가지 시기로 나눠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에도시대의 자치적 분권, 메이지유신 이후의 중앙집권화, 그리고 전후 민주적 지방자치의 출범과 최근의 광역화 흐름이다.

특히 에도시대 일본과 조선시대의 지방행정을 비교하며 그 차이를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초기부터 중앙정부가 지방관을 파견해 지방을 통제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에도시대에 중앙정부의 행정이 지역까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번(藩)이라는 지역 단위가 각각 자치적으로 운영됐고, 중앙정부의 영향력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 점이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그는 “행정이란 중앙정부가 결정한 사항을 현지에서 집행하는 것”이라며 “자치란 스스로 결정한 일을 스스로 실행하는 것으로, 두 개념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고 부연했다.


전쟁과 중앙집권의 시작, 메이지 시대

일본이 본격적으로 중앙집권화된 것은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부터다. 메이지 정부는 전국의 번을 폐지하고 ‘부(府)’와 ‘현(県)’이라는 새로운 행정구역을 만들어, 중앙정부가 전국을 직접 지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황 교수는 “이때부터 일본이 본격적으로 중앙집권적 행정 시스템을 갖췄고, 이 과정에서 지역의 자치가 위축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지방자치의 민주적 전환과 광역화 딜레마

전후 일본은 1946년 평화헌법 제정 이후 민주적 지방자치를 확립했다. 경찰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누고, 교육 역시 읍면 단위에서 독자적으로 운영하게 하는 등 지방의 자치권을 확대했다.

그러나 1999년 이후 지방분권과 함께 추진된 자치단체 대규모 통합은 또 다른 중앙집권의 흐름이었다. “당시 일본은 지역 스스로 책임지라는 ‘지역주권론’을 내세웠지만, 이는 결국 농촌과 낙후 지역이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한국 읍면자치가 마주한 법적‧제도적 과제


“법령 범위 내 자치”라는 한국 지방자치법의 한계

황 교수는 일본 헌법 제93조와 비교하며 한국 지방자치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일본 헌법은 지자체가 법 앞에서 국가와 대등하다고 명시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자치권을 법령의 ‘범위 내’에서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령뿐 아니라 장관의 훈령까지도 지방자치를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는 지방자치를 중앙정부의 하부기관으로 전락시키는 ‘독소 조항’으로 해석됩니다.”

그는 일본 헌법 제95조를 예로 들어 “국가가 특별법을 제정하려면 지역 주민의 투표로 동의를 얻어야 한다”며 “한국도 이를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주민 투표권, 한국이 앞서지만…”

한국이 일본보다 앞선 제도로 평가할 부분도 있었다. 황 교수는 “일본에서는 외국인은 주민으로 인정되지 않고 투표권이 없다”며 “반면 한국은 외국인이 일정 기간 체류자격을 얻으면 지방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는 지방자치의 본질보다는 제도의 차이일 뿐이라며, 주민자치와 관련해 보다 근본적인 권한과 책임을 논의해야 한다고도 했다.


“마을만들기 아닌 정(町)·촌(村) 만들기여야”

한국에서 흔히 오해되는 ‘마을만들기’ 개념에 대해 황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에서 ‘마을만들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작은 마을 단위가 아니라, 훨씬 큰 ‘정(町)’과 ‘촌(村)’ 단위의 자치를 의미합니다. 일본 지자체는 500개가 넘는 마을만들기 조례를 통해 주민 주도적 자치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개념이 지나치게 축소되어, 단지 소규모 마을 사업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용어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어 그는 정(町)과 촌(村)에 대한 이해 부족이 주민자치회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부락회나 정내회는 정·촌보다도 훨씬 작은 생활 단위에서 조직되고 운영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를 읍면 전체를 포괄하는 단위로 오인하면서, 현재의 ‘주민자치회’와 혼동되고 있습니다. 이런 개념적 혼란은 결국 읍면자치의 본질을 흐리게 만듭니다.”


“치안권은 자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

황 교수는 일본 지방자치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치안권’을 꼽았다. 일본은 지역이 경찰 조직을 운영하며, 이는 국가가 아닌 지역 주민의 통제 아래 있다.

“치안권을 국가가 독점하면 자치가 아닌 행정이 됩니다. 미국의 보안관처럼 지역이 스스로 고용하고 책임지는 구조가 돼야 합니다.”


“세원이 부족해 읍면자치 어렵다는 건 오해”

그는 자치 재정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일본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아오가시마촌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구 166명의 아오가시마촌은 연 예산 104억원을 운영하며, 대부분 국가에서 재정을 지원받습니다. 우리가 세원이 없다는 이유로 읍면자치를 포기하는 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방자치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우리가 결정해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정 문제는 결국 국가가 지방을 어떻게 지원하고 권한을 배분할지의 문제입니다.”

그는 특히 자치와 행정의 차이를 강조했다.

“행정은 지역에서 조세를 징수해 중앙으로 보내는 것이고, 자치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우리가 지역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치는 민주주의이며, 자치를 실현하는 것은 곧 해방의 의지와 연결됩니다.”


자치, ‘자연권’인가 ‘국가의 부여권’인가

황 교수는 행정학적 관점에서 지방자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정학계의 큰 논쟁은 지방자치를 국가가 헌법에 의해 부여한 권리로 보느냐, 아니면 자연적으로 주어진 ‘자연권’으로 보느냐입니다.”

그는 자치를 자연권으로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행정은 효율성과 표준화를 지향합니다. 반면 자치는 협동과 자급의 원리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갑니다. 이 차이를 무시하면 여러 제도를 오해하게 됩니다.”


황 교수는 특히 지난 64년 동안 읍면자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각종 제약을 받아온 한국의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이제 읍면 단위에서 ‘협동과 자급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운동이 시급하다고 거듭 언급했다.


“지방자치라는 것은 단지 행정제도를 바꾸거나 법령을 고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주민이 스스로 협력하며 자급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역량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자치의 길입니다.”


박누리

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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