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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 Mar 13. 2020

고속버스 옆자리에 앉은 남자 이야기

시큼한 냄새가 대화로 연결되었다

추상은 공통점을 찾으려는 마음의 습관이다. 감각도 추상을 거친다. 다른 감각은 신경세포에서 느낀 감각을 시상(視床)이라는 중계장치를 거쳐 대뇌에 전달하는데, 후각만이 중계장치 없이 바로 전달한다. 게다가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와도 연결되어 있어서 감정과 기억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다른 감각보다 냄새가 오래 기억나는 이유다. <김진해. 직거래하는 냄새 中. 한겨레 칼럼>                                      


서울에서 몇 가지 일을 마쳤다. 집에 가려고 고속버스 좌석 예약을 하였다. 단독 좌석이 있는 우등이나 프리미엄 고속버스가 아닌 두 명이 같이 앉을 수 있는 자리만 있는 일반버스였다. 스의 중간 부분 통로 옆 좌석으로 정하였다. 모바일상으로는 예매한 사람이 많지 않아 빈 좌석이 많았다. 출발시각까지 승객이 없을 경우, 2인이 앉을 넓은 자리를 혼자서 차지하며 갈거라 기대하였다.


버스에 올라타고 보니 예매할 당시 보였던 많은 좌석들이 승객들로 꽉 차 있다. 내가 앉아야 할 자리에 중년으로 보이는 남성 두 자리를 다 차지하며 앉아있었다. 연녹색 체크 모자를 쓰고 재킷에 양복바지를 입고 있지만 신발은 정장 스타일의 옷어울리지 않게 남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여기가 제 자리인데"


당황해 하며 내가  말하자 창쪽으로 가서 자릴 잡았다. 남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둘이 앉기에는 자리가 좁았다. 서로 몸이 맞닿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옆에서 술냄새가  풍겨왔다. 시큼하면서 속 글거리게 하는 냄새였다. 술에 기름기 있는 안주를 먹은 것이 틀림없었다. 가 술을 마셨다는 내 생각에 확신을 들게 하는 증거 한 가지 더 있었다. 남자의 얼굴이 마치 술을 거나하게 걸친 것처럼 빨갰던 것이다.


이대로 두 시간 넘게 동행 아닌 동행을 하며 한 공간에서  같이 앉아 목적지에 갈 생각을 하니 암담했다. 암울한 마음을 최민석 작가의 <베를린 일기>에서 말한 산전수전 겪은 조선인 '양경종'도 아마 모를 것이었다.


"아저씨, 혹시.. 술 드셨어요?" 나는 참지 못하고 불쑥 옆 석 남자에게 물어봤다.

"아니라예." 옆 자리 남자 부드럽고 겸손하게 말.

"정말요?" (이 말을 듣는 누군가는 나를 두고 무언가를 남자에게 캐묻는 애인인 줄 알겠다.)

"안 먹었어요." 남자는 '안'이라는 말에 강세를 줬으나 여전히 순하게 말한다

"미안해요. 이 부근에서 술냄새가 나서요."  화를 마치기 위해 내가 서둘러 다.


몇 마디 붙여봤을 뿐인데 옆좌석 남자의 말씨가 범상치 않다. 말투는 평상시 내가 들었던 우리말 같지 않은 억양이 있었. 경상도도 아니고 강원도, 제주도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남자는 대답을 어느 집 막둥이처럼 잘한다. 듣다 보니 남자의 말투가 편안 느낌을 주었다.


버스에서 낯 모르는 사람과 잘 얘기하지 않는 내 성격과 달리 옆사람에게 관심이 갔다. 알고 봤더니 연변 사람이었다. 충청도 서천에서 일한다고 하였다.

"거기(연변)도 한번 가야 하는데. 놀러 갈 곳은 많고 시간이 없네요."

"유랑은~~ 혼자 다녀요?" 앞의 한 단어를 길게 빼는 말투다. 분명 관광을 '유'이라고 하였다.

"아니오. 식구들끼리도 가고 친구 하고도 또 직장에서도 가요. 자도 가고 싶은데 두려운 것이 아직 마음에 있어요."

"혼자 가니까 두려워요? 하하하" 갑자기 남자가 큰소리로 웃었다.

"혼자 다니면 좋아요." 홀로 여행을 많이 다녀본 양 말했다.

"다녀봤어요? 남자들은 거리낄 것이 없죠. " 

"지금~~ 무서울 것도 없어요. 어디를 가나 씨씨 티브이 다 있고, 그리고 전화 한 통이면 금방 (경찰들이) 오니까."

"연변도 그래요?"

"아, 그래요. 질서가 아주 좋아요. 옛날에는 깡패도 많고 이랬는데 시진핑이 올라오면서 몽땅 없애버렸어요. 싸움 못해요." 당연하다는 듯이 남자가 힘주어 말했다.


" 네. 다 맛없어요."


중국의 음식에 대해서도 말했다. 중국요리가 맛있고 한국에서 하는 중국 요리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짜장. 짬뽕. 탕수육과 유산슬, 팔보채도 맛없다고 콕 찍어 말했다.


우리의 중국음식이 현지의 음식과 완전히 다르다고 하였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는 밥을 못 먹어서 살이 '몇 근' 빠졌다고 했다. 중국 음식이 맛있다고 할 때 나는 "우리 음식이 다 맛있어요."라고 유치한 면도 있지만 운을 맞추듯이 남자의 말에 대꾸했다.


몇 해 전 중국 여행에서 산더미 같이 쌓인 음식에 금방 질려서 얼마 못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다. 처음 온 우리나라에서 그는 한국 음식을 못 먹었고 처음 간 중국에서 나는 중국 음식을 못 먹었다. 각자 나고 자란 곳에서 먹어본 음식이 입에 맞기 때문이리라.


옆자리 남자와 연변에 관한 여행 정보에서 시작하여 맑은 영혼의 소유자이자 애국 시인인 윤동주, 백두산, 북한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변 사람은 북한 여행을 할 때 우리보다 여권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들었다.


예전에 북한과 관계가 좋았을 때 직원들과 함께 금강산 관광을 했다. 관광을 시작하는 날은 공교롭게도 연수의 마지막 날, 평가하는 날이었다. 사유서를 쓰고 담당자에게 해명을 하며 같 연수를 받고 있었던 후배교사와 함께 연수 평가를 포기했다. 금강산 단체 여행을 선택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다. 그 얼마 후 북한 금강산여행이 막혔기 때문이다. 연수점수는 당연히  후배교사와 나란히 꼴찌다.


그때는 금강산의 일부와 멀리서 주민의 주택과 생활모습을 보았다. 북한을 다시 가서 주민의 의식주생활과 관광명소를 자세히 보고 싶다. 연변에서 북한 여행권을 만들 수 있다니 부러운 생각마저 다.


"차가 집집마다 두 대, 세 대씩 있어요. 연길시 건물 건물에 꽉 차요. 주차할 자리가 없어요. 집 밖 길 위에 세워야 해요. 그렇게 많아요. 그런데 연길 시내에는 차가 많아서 서고 서고 하는데 고속도로에는 이렇게 많이 없어요. "


고속도로에서 버스가 정체되자 남자가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중심지, 연길시의 주차난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이면 연에 도착다. 나는 연길시에 살고 있는 28만 동포 중 한 명을 버스에서 만나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덩치가 크다고도 말할 수 없는 내가 버스 좌석을 좁다고 느낄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앉는 것인지, 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는 지 궁금하다. 예전에는 일반고속버스의 좌석이 좁은 줄 몰랐다. 겨울이라 두툼한 옷을 입어서인지 살이 많이 쪄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일반 버스가 답답한 기분마저 든다. 예전보다 한국인의 체격이 많이 커졌고 외국인도 많이 들어오므로 버스 좌석의 크기가 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좌석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긴장을 하고 다리를 오므려 앉아 있으니 힘들었지만 연변 동포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불쾌했던 냄새가 대화의 물꼬가 되어 장시간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 동안 신기하게도 그에게서 냄새는 나지 않았다. 불편함은 좌석의 크기에 한정되었다.


나이 듦이란 이렇게 나이와 성과 국적을 불문하고 마음을 열어서 정보공유를 하는 즐거움이 있다. 살아가는 햇수가 늘어날수록 경험치가 쌓여서, 어떤 상황에서 사람의 행동패턴과 감정은 비슷하다는 믿음에서일까.


사물과 직거래하는 '냄새'를 그에게 '술 냄새'라는 구체적인 표현을 쓰며 들이대었다. 그는 나를 어떤 냄새로 기억 것인가. 그에게서 시큼한 냄새를 맡고 불쑥 질문을 건넨 나에게서 그가 불쾌감과 함께 다른 냄새를 맡았다면 사하고 싶다.


그 남자가 이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내가 교사라는 직업상, 여행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성격으로 그 남자에게 '연변의 냄새'를 맡았으며 질문의 시작을 '냄새'로 했다고 말이다. 이 자리를 빌어 친절한 자세로 대화에 응한 연변 남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추상화가 덜 된 냄새는 주로 사물과 직거래한다. '입냄새, 발 냄새, 방귀 냄새, 짜장면 냄새, 곰팡이 냄새.. ' 끝이 없다. 추상보다는 구체에 가까우니, 냄새를 풍기는 사람을 직접 겨냥한다. 그래서 우리는 늦은 밤 옆 사람이 뭘 먹고 마셨는지를 쉽게 알아차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냄새'도 맡는다. 미국인들은 봉준호 감독에게서 '마늘냄새'를 맡았을까? <김진해. 직거래하는 냄새 中. 한겨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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