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마 난 죽기 전까지 '단단한 사람'을 꿈꾸며 지금처럼 물러 터져 있겠지.
단단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크기도 가늠이 안 되는 벽 앞에 선 것 같다. 대표적으로, 결혼 후 직면한 남편이 그랬다. 난 죽어도 쨉이 안 되겠구나. 한껏 작아지고 쪼그라든 내가 되었다. 제법 즐거웠던 회사에서도 그랬다. 무쇠심줄 같은 여자 부서장을 만나 1년 가까이 매일 윽박을 당하다 보니, 어느덧 내 심장은 한껏 쪼그라들어 버렸고 호흡조차 힘들어졌다.
쪼그라든 심장으로 나는 살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갔다. 숨차게 몇 시간을 연거푸 달렸고, 내 몸무게 보다 더 무거운 것들을 들기 시작했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고, 책을 읽었고, 글을 썼고, 정신과 상담을 받았고, 밤마다 신경안정제를 삼켰다. 그러면 아주 조금은 단단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겉보기에 매우 평범하고 멀쩡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 보인다. 어쨌든 남편이 있고, 귀엽고 똘똘한 딸이 있고, 적당한 직장이 있으며, 취미(운동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글도 쓰는) 부자다. 그런데 실상은 나 스스로 전혀 평범하다고도, 멀쩡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 삶이 어딘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불안감은 몇 년째 나를 잠식하고 있다.
내게 주어진 매일매일에 감사하고, 한 발 한 발 조금씩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내가 거짓인 자아는 아니고, 그런 나와 전혀 그렇지 못한 내가 내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다크 한 나는 항상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다. 자기 파괴적이고 자존감도 현저히 낮다. 언제 죽어도 아쉬울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반면, 브라이트한 나는 잘하지 못하는 것들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없는 시간과 노력을 쥐어 짜낸다. 최대한 될 대로 되라의 심정이 들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지금 이 글은 그런 자아가 쓰고 있다. 그러니 이게 다 단단해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어제는 하루 회사에 휴가를 내고 마지막 가을을 달렸다. 무려 4시간 가까이 달리고 또 달렸다. 집에 오니 만보계에 5만 3 천보가 넘게 찍혀 있더라. 적어도 발바닥의 굳은살은 확실히 더 단단해졌다.
언젠가 나의 몸도 마음도 더 단단해지면, 나는 내 단단함을 결코 타인을 짓누르고 억압하는데 쓰지 않아야지! 내 마음이 물러 터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꼭 붙들고, 좋은 사람들 곁에서 내 뜻을 펼치며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