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여행의 끝, 집에 돌아오면 꼭 하는 말.
"역시 집이 최고다."
멋들어진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좋은 사람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도 돌아오면 꼭 집이 최고라고 말하게 된다.
집은 돌아오는 곳.
언제고 얼마고 떠나 있어도 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나만의 안식처.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
그곳에 들어서면 지난 여행이 아무리 좋았어도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가장 큰 힐링을 받곤 한다.
짐을 풀어헤쳐 놓고, 소파에 몸을 걸치자마자 익숙한 그 느낌이 나를 감싼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촉감, 익숙한 공기..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제자리로 돌아왔음을 알려준다.
그래, 여기가 내 자리지.
집은 그런곳이어야지. 마땅히 내가 있을 곳. 편안함에 온전히 나를 맡기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내가 만들고 싶은 집 또한 그런 공간이다.
들어가기 싫은, 스트레스받는 공간이 아니라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또 돌아갈 수 있는 공간.
종종 그런 얘기를 들었다.
결혼하고 난 이후, 집 들어가는 게 일하는 것보다 더 숨 막혀 일부러 야근을 한다는 사람의 이야기.
보통은 칼퇴하고 싶은 게 직장인의 마음인데 오죽하면 야근을 할까. 싶다가도 주위를 둘러보니 만연한 일인 듯싶다.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어 술 한 잔 하자 회식을 권하고, 친구를 부르고,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땐 차에서라도 앉아있다가 시간을 때우고 집에 올라가는.
이런 일은 이미 드라마에서도 그리고 발 담고 있는 회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김대리, 박과장의 이야기였다.
어째서?
하지만 알 것도 같은.
그들을 보며 내가 다짐한 것은, 절대 그런 공간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에겐 집이 필요하다. 아무리 힘든 하루를 보냈더라도 돌아오면 안락하게 쉴 수 있는 공간.
그런데 치유의 공간이어야 할 집이 돌아가기 싫은 곳이 되어버리면 갈 곳 잃은 발자국들이 헤매다 도착할 종착지는 어디일지.. 생각만 해도 애석하다.
그나마도 끝내 갈 곳이 없는 결말은 더 슬프고.
그래서 나는 짝꿍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부지런히 다음과 같은 일을 한다.
집 문을 열었을 때, 마중을 나가 오늘도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것.
씻고 오라고 한 뒤 소소하게라도 저녁을 차려주는 것.
식사 후엔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내버려 두는 것.
그리고 더럽고 불쾌한 것들을 방치하지 않는 것. (자주 치우고 청소해야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집이 엉망이면 마음도 엉망이 되기 쉽다.)
아주 간단하지만, 이런 간단한 것들만 잘 지켜줘도 충분하다. (-고 생각한다. 사실 아직은 애가 없는 신혼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짝꿍은 요즘 출근만 하면 집에 가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이 됐다.
그럴 때마다 아주 뿌듯하다.
그리고 오늘처럼 아주 즐거운 여행을 보내고 돌아올 때에도 역시 집이 최고라 말해준다.
나 역시 그렇고.
덕분에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우리 집이 호텔보다 좋은데 굳이 뭐 하러 돈 주고 호캉스를 가지? 하는 생각. (그래서 호캉스는 안 가기로 했다.)
대신 앞으로도 여행은 종종 갈 테지만..
여행은 가서도 참 좋지만 집에 돌아올 때에는 더더욱 좋은 걸 보면 역시 집이 최고구나. 다시 한번 느낀다.
여행이 즐거웠던 것과는 별개로 집이 주는 즐거움이 있는 것 같다.
여행지는 일상을 떠나 잠깐 머무르는 곳이지만, 집은 늘 머무르는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이니까.
집에 돌아와야만 비로소 온전히 쉴 수 있는 거겠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거야.
이곳에 몸과 마음을 뉘이고 너와 함께 쉴 수 있다는 건 더 좋고.
모쪼록 너와 나의 보금자리가 이토록 영원하길..
바라며 소파 담요를 목 끝까지 끌어 덮는다.
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