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족 남편과 산다는 건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다.
흰머리, 주름살, 뱃살이 늘어만 가는.. 나의 모습.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가장 공평한 자원은 '시간'이라 했고, 그 세월의 흐름은 아무도 비껴갈 수 없다.
젊음은 억만금과도 바꿀 수 없이 찬란한 것이며,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다만 얼마나 자기 관리를 하느냐에 따라 세월을 조금 천천히 맞이할 수 있고
혹은 그 반대로 세상의 모진풍파를 겪으며 세월을 정통으로 맞이할 수도 있겠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했으나 최근 부쩍 노화가 진행되는 것을 느낀다.
드레스 고르면서 생긴 흰머리 몇 가닥은 사실 고민의 흔적이 아닌 노화의 증거일 것이고.
아무리 먹어도 찌지 않던 살은 이제 모두 잉여지방으로 축적되기에 밥을 적게 먹을 수밖에 없다. (속상하다.)
물론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니, 지금이라도 더 운동을 신경 써서 하고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으며 나를 가꾸어놓아야겠지만 어째서인지 자꾸만 미루게 되는 자기 관리..
참고로 짝꿍은 엄청난 그루밍족이다.
(그루밍족이란 외모를 경쟁력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남성들을 지칭하는 신조어이다.)
그가 편하게 흐트러져 있는 것은 오직 집 안에서의 시간뿐.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출근하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일을 하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매일 아침 옷차림과 머리스타일링을 신경 써서 하고 나가는 사람이다. (아니, 도대체 누가 본다고? 아무도 보지 않아도 자기만족으로 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라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헬스장에 꼭 들렀다가 집에 돌아오는 사람이며,
머리털과 눈썹털을 제외하곤 모두 레이저 제모 시술을 받고, 최근에는 눈밑지방 재배치 수술까지 했다.
무슨 남자가 여자인 나보다 외모에 관심이 더 많아?
게다가 왜 점점 예뻐지는 건데?
신부는 나란 말이야!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라면 돈을 좀 써서라도 피부와 몸매에 좋다는 신부관리를 더러 받는다.
한두 푼 아닌 건 알지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돈을 좀 써도 좋겠지.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피부과를 다녀본 적이 없으며, 애초에 화장도 잘 안 하고 다니는 자연인이다.
'어차피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고,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랴!' 하고 생각하며
또 '괜찮아. 나는 수박보다는 망고 정도는 되잖아? 그리고 신부는 원래 다 예쁜 거야.' 하며 신부관리에는 추호도 돈을 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자꾸 나만 두고 예뻐지는 짝꿍을 보고 있자니 괜히 시샘이 나더란 말이지.
신부가 신랑에게 외모로 질 수 없지.
나도 목주름 필러도 맞고, 점도 빼고, 눈 밑 애벌레도 없앨래! 하고 두 손을 허리에 얹고 큰 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짝꿍의 반응은 오브콜스 와이낫?이었고 종국에는 당차게 피부과 예약까지 해놓았다.
근데 막상 하려니 또 무섭고 그렇네.
그냥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게 역시 제일 좋은 것 같고.
억지로 세월을 붙들어 매 봐야 얼굴에 칼대고 주사 맞아 연장한 동안은 부자연스러워 보여서 좀 그래.
그거라도 하는게 나으려나 싶기도 하지만.
결국 꾸준히 할 수 있는 신부관리는 운동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필라테스나 하러 가야지.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