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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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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크 Mar 31. 2024

야, 나도!

불공평 대우에 대처하는 방법

문제 직원의 승진 안내가 있던 미팅이 끝나자마자 노조에 문의 전화를 넣었다. 몇 달 전 인사평가 때 공식적으로 남겼던 업무분장 요청이 무응답으로 처참히 무시되고 노조에 도움 요청 이메일을 보냈었다. 급한 일은 아니라 느긋하게 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미팅 내내 열이 받아 더 이상 여유롭게 기다릴 수가 없었다. 


노조와 통화하는 동안 H선생님의 전화를 놓쳐 다시 전화를 드렸다. 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던 H선생님은 내가 전화도 받지 않아 더 걱정하셨다며 오늘 미팅에서 내가 충격 먹진 않았는지, 기분은 괜찮은지 등등을 물으며 날 위로하고 다독여 주셨다. 나의 깊은 빡침에 같이 공감해 주시니 충격이 좀 가시는 것 같았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나니 노조에 도움을 받는 것과 별개로 내 상사에게도 인사팀에도 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을 보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확하지 않은 업무분장을 수정해 달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는 매번 고심 끝에 조심스럽게 말을 했었다. 시키면 하는 직장 문화에 익숙했고, 중국책 카피편목은 절대!! 시킬 수 없다는 상사의 단호함에 주눅이 들었다. 그래도 해결은 해야지 싶어서 진행 상황을 물으면 상사는 뜨뜻미지근하게 관장과 "논의 중"이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 해결을 해야 하는 건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얌전히 기다리는 쪽을 택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부당 대우와 차별적 인사관리뿐이었다. 이런 불공평한 대우에도 가만히 있으면 정말 영원히 가마니가 될 것 같았다.


이번 일이 충격이 크기도 했지만, 참지 말고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예전에 전 직원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때처럼 문제 직원이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대며 회의 안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나와 관련 없는 안건에 동료 직원의 불만이 길어지자 오늘 회의도 일찍 끝나긴 글렀구나 싶어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관장님이 나를 지목하며 이마크는 불평, 불만 없이 업무를 시키는 대로 잘한다고 칭찬(?)을 했다. '내 이름이 여기서 왜 튀어나와...?' 싶어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게 눈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얼핏 보면 칭찬으로 들리는 이 말을 듣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관장이 편애하는 직원이긴 하지만 모든 업무에 비협조적으로 투덜거림이 심한 것을 관장 본인도 인지하고 있고, 나는 군말 없이 만만한 존재라는 것도 알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어 여럿에게 한방 날리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관장과 일을 직접 할 일은 없으니 관장이 나의 성격을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조금 놀랐고, 만만한 이미지를 쇄신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다만 성격이 쉽게 바뀌지 않으니 늘 그랬든 허허허 웃으며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태도로 도서관 업무에 임했는데, 이 사건이 내 인내심의 한계를 건드렸다. 마음 같아선 욕을 날리고 싶었지만, 감정적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었다. 이럴수록 침착해야 한다. 행간 속에 부당 대우를 받은 나의 분노와 불쾌감을 꾹꾹 눌러 담되 담담한 어조로 상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관장의 논리대로라면 나도 승진 자격요건을 갖췄으니, 업무 분장의 해결방안으로 나도 승진을 시켜줬으면 좋겠다! 나도 승진시켜 줘! 이메일을 보내고 나니 속이 시원했고 답장이 기다려졌다. 


기다리던 답장대신 전화가 왔다. 문제 직원의 승진은 본인도 충격이고, 매우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내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바, 관장과 간략하게 상의를 했는데 내 승진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화제를 돌리며, 혹시 은퇴로 공석으로 남아있는 한국 목록 사서 자리에 관심이 있냐고 내게 물었다. 관심은 있다고 했더니, 상사는 그럼 나를 100% 적극 지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내 업무 분장은 깔끔하게 해결된다고 했다. 


어느 정도 업무가 비슷한 부분은 있었지만, 목록사서 공석과 내 업무 분장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런데 관장과 상사는 내 업무 분장의 해결책인 듯 목록사서 공석을 내 일과 굴비처럼 엮기 시작했다. 나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차별 대우에 화가 났고, 그에 대한 동등한 대우와 해결책을 원한 거였다. 승진은 아니더라도 상황이 이지경까지 됐으니 업무 분장을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으로 해결해 보자라는 액션만 취했더라도 내 억울함이 조금은 누그러졌을 것이다. 해결은커녕 말도 안 되는 기적의 논리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하니 짜증이 났다. 관리자로서, 상사로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 업무 분장을 직접적으로 해결해 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반응이라 실망이 컸다. 


부당 대우에 참지 않고 할 말은 한 나 자신에게 뿌듯한 것도 잠시였다. 관장과 상사의 이런 반응을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시작부터 한숨이 나왔다. 이 날 관장과 상사의 반응은 본모습에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관장은 A라는 사안에 B를 엮어 논점을 흐리는데 고수였고, 상사는 윗사람에게 쓴소리 하나 못하는 기회주의자였다. 이 싸움은 무려 2년이나 지속되었다. 그리고 내 전투력은 매번 놀랍도록 향상했다 (덤으로 영어 실력도 향상되었다.) 부당 대우에 맞설 때 잊지 말아야 할 건, 평정심과 전투력 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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