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적 발췌독 전문가의 일상
“사서"라고 직업 소개를 하면 책을 좋아하거나 많이 읽겠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안타깝게도 업무 시간에 한가하게 책을 읽을 시간이 있지도, 주어지지도 않는다. 어쩌다 사서가 된 나는 개인적으로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라서 동료 사서들과 독서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한 권은 꼭 읽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 관심 주제가 아니라서 혼자서는 절대 읽지 않을 책이거나, 내용이 어려워서 중간에 읽기를 포기하는 책들도 함께 읽으니 완독 할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쌓인 독서목록은 사서로서 이용자 서비스를 하는데 꽤 도움이 된다. 스스로 더 당당한 사서가 되기 위해 독서모임을 결성해 책을 읽지만, 늘 독서 토론의 결론은 도서관 이용자로 이어진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이용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하고, 이용자만 생각하면 사서의 고충은 누가 알아주는 건지 하소연을 하기도 하며 도서관 이용자 때문에 울고 웃는다.
사서의 가장 큰 역할은 정보(혹은 책)와 도서관 이용자를 이어주는 것이다. 수많은 책만큼 다양한 이용자를 만나는데, 모든 것이 이용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도서관에서는 책보다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이 사서에게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공공도서관에서 야동 시청하는 이용자, 짜증 가득한 말투로 책 몇 권 더 빌려주면 이선생 징계 먹냐며 막무가내로 소리 지르는 학부모, 내가 추천해 준 책이 재미없다며 내 추천도서 목록에 신뢰를 잃은 학생 이용자를 볼 때면, 사서지만 이용자를 피하고 싶다. 덕분에 원하던 정보를 찾았다며 사서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현해 주시며 사서로서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감사한 이용자도 많았지만 피할 수만 있다면 이용자를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이용자를 피해 목록사서가 되었다. 목록사서의 주요 업무는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이용자를 만날 일도 없으니 회의나 사내 교육을 제외하곤 업무 시간 내내 책을 본다. 책의 본문 전체를 읽진 않지만 서명, 저자, 목차, 서문, 판권지를 집중적으로 보며, 때로는 필요한 내용을 뽑아 읽은 후 주제 분석을 마친다. 책에 대한 분석이 끝나고 나면, 미의회도서관 분류법(LCC, Library of Congress Classification)과 주제명 표목표 (LC subject headings)에 따라 편목(목록)을 하며, RDA 목록규칙에 따라 MARC21 포맷을 사용하여 서지레코드를 만든다.
이용자를 직접 만나진 않아도, 목록사서도 이용자를 위해 일한다. 이용자가 원하는 자료를 잘 찾을 수 있도록 (비)도서 자료에 대한 정보를 가득 담아 서지레코드를 만든다. (도서관 사이트에서 자료검색 시 나오는 검색 결과와 책등에 달린 청구기호 등이 목록사서 일의 결과물이다.) 자료의 주제명의 경우, 너무 광범위한 주제명을 부여하거나 너무 좁은 범위의 주제명을 부여하면 이용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제주 방언"만을 다루는 A라는 책에 650 #0 Korean language $$x Dialects $$z Korea (South)라는 주제명만 부여하면 너무 광범위하며, 650 #0 Korean language $$x Dialects $$z Korea (South) $$z Cheju T'ŭkpyŏl Chach'ido라고 구체적으로 지역명까지 주제명으로 부여해야 이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 한국의 지역별 사투리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이용자가 첫 번째 주제명만을 보고 A책을 골랐다가, 사실은 제주 방언만을 다루는 책인걸 알았다면 이용자는 원하는 정보를 찾는데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록사서는 서지레코드를 만들 때 주제명 부여에 상당한 시간을 들인다.
업무상 주제 분석을 위해 살펴보는 발췌독도 독서에 포함할 수 있다면, 사서라서 책을 많이 읽겠다는 사람들의 오해가 어느 정도 사실일 수도 있겠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100개의 서지레코드를 만드니 그 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중에 나와있는 모든 책을 골고루 많이 보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의 장서는 도서관의 이용자와 도서관의 특성에 맞게 구성되어 있는데, 내가 속한 도서관의 경우 교내 한국학 전공을 지원하기 위한 자료, 북미 한국학 공동 수서 자료 등 특정 주제분야에 특화되어 있고, 나는 그중에서도 자체편목 (original cataloging)이 필요한 자료들만 접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브런치 작가 소개글을 적어놨었는데, 이 글을 통해 작가 소개가 더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내 브런치 작가명은 서지레코드를 만들 때 사용하는 MARC21에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