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책 〉
“자연은 뛰어난 생화학자이다. 끊임없이 유전물질을 옮기고 대체하고 자르고 다시 이어붙이며 뒤섞는다. 새로운 생명체와 모든 개체가 나름의 작은 실험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헝가리의 어느 마을. 진흙과 지푸라기를 섞어서 압축한 흙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지붕에는 갈대를 얹은 집. 한 방에 네 식구가 모여 사는 한 가정이 있었다. 아버지는 푸주한(도축업)이었다. 어린 딸 둘이 아버지가 돼지를 잡는 것을 지켜보았다. 세살 많은 언니는 그 자리를 피했지만, 막내딸은 아버지가 도축하는 과정을 끝까지 차분하고 세밀하게 지켜보았다. 아마도 그 때가 시작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이자 주인공인 커털린 커리코의 이야기다. 연구 실험이라는 과정은 참으로 지루한 작업이다. 같은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반복 또 반복이다. 추론이 결론이 되려면 확실한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한다.
소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 정식으로 과학에 입문했다. 화학과 생물이 특히 흥미로운 과목이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노력’의 중요성을 깨우쳤다. 괜찮은 학생이 아니라 뛰어난 학생이 목표였다. 전국 생물 경시 대회에도 참가한다. 결승까지 갔다. 그리고 전국에서 3등을 했다. 대학과정까지 학업이 이어지는 동안 훌륭한 스승들과 멋진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물론 까닭 없이 힘들게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 학생으로서, 학자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연구원으로서의 일상을 담담히 적었다. 과학이야기는 전공자나 특히 관심을 갖는 독자가 아니면, 용어자체가 익숙하지도 않고 지루하고 힘든 부분이 많다. 재미없기도 하다. 그것을 의식해서일까? 지은이는 자신의 학문과 연구에 대한 이야기 틈틈이 쉬어가는 코너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부모와 자매, 친구들, 22살 박사(지은이)와 17살 고등학생(남편)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룬 이야기, 미국 국가대표 조정(漕艇)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두 번이나 딴 딸 수전이야기, 그리고 살아가며 만났던 이런 저런 사람들 이야기가 보석처럼 숨어있다.
지은이의 이력에 큰 전환점을 준 것은 미국이민이었다. 연단의 과정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같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물과 기름 같은 관계를 이어가면서도, 어느 날 아침 연구실 건물을 들어서는 순간 자신의 실험장비와 자료들이 복도에 내동댕이쳐있는 상황을 겪으면서도 학문과 연구에 대한 열정이 식기는커녕 더욱 불타올랐다. 차별과 멸시는 더 단단하고 강해지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였다.
책의 끝을 향할수록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 많이 실린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이 택한 길, 자신이 가는 길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가짐과 행함,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배운다. 세상에 거저 얻는 것은 그저 행운이다. 행운은 오래 머무르지도 않는다. 모두가 DNA에만 몰두 할 때 지은이는 RNA연구에 올인 했다. 책의 이야기는 지은이가 코로나 19 백신(mRNA)으로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여하기 직전에 멈춰있다. 지은이는 노벨상을 탔다고 결코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힘껏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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