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주석은 제19차 전국공산당대표대회에서 공산당을 상징하는 기호인 낫과 망치 앞에 서서 이런 말을 남겼다 “5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눈부신 문명을 창조하고, 인류에 놀라운 공헌을 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로 거듭났습니다.”
짧지만 당찬 이 발언에 딴지를 걸어본다. 5000년 역사? 언제부터 카운트 한 것인가? 눈부신 문명 창조? 인류에 놀라운 공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 그러고 보니 시진핑이 한 말 모두가 못마땅하다.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닌가? 물론 전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책의 저자 빌 헤이턴은 저널리스트이다. 저자는 우선 ‘중국’이라는 나라이름이 언제부터 공식적으로 붙었는가를 추적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지은이는 지금의 중국(중국이라는 나라이름포함)이 100년 전에 새롭게 발명되었다고 한다. 중국이라는 개념조차 100년 전 쑨원 등 혁명가들에 의해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한족과 중화민족, 주권과 영토 등도 100년 전에 새롭게 정의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중국의 민족주의는 현재 국수주의와 패권주의로 변화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몽으로 대표되는 중국 패권주의의 기원을 샅샅이 파헤친다. 시진핑이나 중국의 애국주의학자들, 젊은 세대들까지 공공연히 내세우는 ‘5000년 역사’라는 주장을 살펴본다.
중국과 중화
오늘날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은 중국을 두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중국(中國)과 중화(中華)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 표현 모두 지역적인 우월성을 나타낸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말 그대로 ‘중심 국가’로, 이상적인 정치 위계질서를 상징한다. ‘중화’는 ‘중앙에서 꽃이 피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실상 ‘문명의 중심’을 비유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내륙 지역의 오랑캐들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솔직히 뭐가 그렇게 우월하다는 것인지? 대단하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두 용어의 역사적 뿌리는 깊지만, 19세기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국호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한다. 민족과 국가에 관한 서구 사상의 영향을 받아 국가사상이 탈바꿈했기에 이 두 용어는 국호가 되었다.
명(明)나라 시절로 가본다. 이 당시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부르거나 조국을 ‘중국’으로 부른 적이 없다. 그 대신에 ‘타멘’이라고 불렀다. 요즘 식으로 쓰자면 ‘다밍’이고 ‘대명(大明)’으로 번역된다. 그들은 스스로를 ‘타멘진’ 또는 ‘다밍런(大明人),대명의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중국’과 ‘중화’라는 용어들은 19세기 후반 근대 (중국)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부활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과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구성하여 각각 다른 일화를 연결 짓고, 중국이 영구적으로 존재했던 것처럼 역사를 재구성했다. 새로운 역사의 창조이다.
화교(華僑)
‘화교’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도 흥미롭다. 중국 통일전선부(공산당의 지지를 구축하고, 정적을 제거하는 공산당 산하기관)가 재외 동포를 부를 때 사용하는 용어는 ‘화교’이다. 화(華)는 말 그대로 ‘꽃이 피는’, ‘문명화된’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흔히 중국인을 가리킨다. 교(僑)는 ‘체류자’(외국에 일시적으로 거주하다가 언젠가는 본국으로 돌아올 사람)를 뜻한다. 이 용어는 1903년 이후 청나라 전복을 꿈꾸던 혁명가들이 혁명파의 주요 후원자, 해외 커뮤니티를 예우하기 위해 채택하면서부터 일반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화교라는 용어의 사용은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에게 자금 지원을 호소하기 위한 핵심전략으로 변모한다. 시진핑은 2017년 10월, 제19차 중국공산당대회에서 폐막 연설을 할 때, “재외 동포와 협력하는 것은 중화 민족의 부흥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화교들이 듣기엔 중국의 발전을 위해 심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민족주의자들이 원하는 하나의 국어
홍콩이 반환된 지 1년 후, 홍콩 정부는 중국 본토 정부가 공식적으로 통용하는 언어인 보통화(普通話, 표준 중국어)를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에게 의무 과목으로 가르치겠다고 밝힌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시간씩 ‘외국어 수업’형식으로 시행했다. 10년 후 시 당국은 보통화를 교육언어로 지정하기 위해 학교에 유인책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전 과목을 보통화로 가르치기로 동의하면 학교는 추가적인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은 홍콩 학부모들은 보통화를 유창하게 구사하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며 자녀를 보통화를 가르치는 학교로 보내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는 왜 보통화를 배워야 하는지 분하게 여겼고, 이 과정에서 부모 세대와 세대 차이가 더 벌어졌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의도했던 바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 온 것처럼 보인다. 홍콩인들은 본토에 통합되긴 보단 본토에 저항하는 길에 놓이게 된다. 이후에도 보통어와 광둥어의 갈등은 계속 불거졌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저자는 이 책에 서태후 시절의 청나라, 청나라와 유럽열강들의 관계, 청나라가 국가의 경계를 토대로 하는 국제법을 수용하는 과정, 조공국들과의 관계변화, 중국의 ‘주권 근본주의’와 민족관, 여러 개혁자들, 짜깁기한 중국의 역사, 중국내 소수민족 흡수과정 등 많은 부분을 다루고 있다. 중국의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저자의 에필로그로 글을 마무리 한다. “시진핑의 ‘중국몽’이 세계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더더욱 1930년대의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 세계를 파멸시킬 뻔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처방이다. 중국몽은 1세기 전,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과거관에 기초하여 만들어지고, 오늘날 유럽에서 대부분 없어진 유럽적 개념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자국의 동질성에 대한 욕구와 외국으로부터 존경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결국 자국을 억압하고 외국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시진핑의 중국은 행복의 나라가 아니다. 독단적이고, 강압적이며, 불안하고, 자신감이 부족하며, 단결이 언제라도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곳이다. 신화는 잠시 중국을 한데 모으겠지만, 중화 민족 내부의 균열은 애초부터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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