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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파파 May 28. 2024

011 맡겨진 소녀(클레어 키건 저)

천재라 극찬받는 아일랜드의 소설가 클레어 키건의 작품이다. 중편소설이라기엔 짧고 단편소설이라기엔 긴,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다. 육아에 지쳐 아내에게 허락을 받아 작년 겨울 1박 2일로 속초에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왔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한 카페에서 육아로부터 해방되어 한껏 여유를 즐기며 단숨에 읽었다.

소설의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1980년대 경제, 정치 상황이 좋지 않았던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소녀의 집은 풍족하지 못하다. 아빠는 퉁명스럽고, 엄마는 항상 바쁘다. 거기에다 형제가 다섯이라 소녀는 부모의 사랑을 받을 기회가 더욱 적다.

엄마가 막내 출산을 앞둔 한 여름, 소녀는 먼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 맡겨진다. 킨셀라 부부는 한 가지 숨겨둔 아픔이 있다. 과거 사고로 아들을 잃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가 없던 이 부부는 소녀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 보살핀다. 원래의 가정에서 받지 못한 애정을 느낀 소녀가 자신을 보살펴 준 부부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포옹을 끝으로 소설은 끝난다.


입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이 너무 많다.


작중 킨셀라 아저씨의 대사이다. 소녀는 말수가 적다. 많은 애정을 받지 못해서인지 동나이 또래의 어린이에게서 볼 수 있는 재잘거림보다 침묵에 더 가까운 아이이다.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기에 이 소녀는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는다. 이러한 언급을 통해 작가의 침묵에 대한 선호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작가의 선호는 소설 속의 직접적인 언급뿐만 아니라 생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소설 내용자체는 단순하지만 많은 설명과 묘사가 생략되어 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애써 설명하는 것보다 독자의 지력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불필요한 중언부언으로 독자의 상상과 사유의 기회를 침범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진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가의 중요한 덕목으로 무엇을 말할지 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문학작품을 접하는 이유는 기록을 읽으려는 게 아니라 소설을 즐기기 위해서이다. 담백한 표현과 절제된 묘사를 통한 소설의 여백은 독자만의 상상력으로 채워갈 수 있다. 그렇기에 1980년대 아일랜드의 서정적이고 찬란했던 소녀의 여름은 독자의 경험과 상상에 따라 다양한 모습과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에게 그 해의 아일랜드의 여름은 흡사 강원도의 한 시골 마을 같았다. 마치 내가 유년기를 보낸 그곳처럼 말이다. 덕분에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언어도 통하지 않는 작가가 쓴 글이지만 서정성을 느꼈다. 바로 이것이 문학의 장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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