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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파파 May 22. 2024

007 서사의 위기(한병철 저)



이야기, 사람 간의 공감을 높여준다


10여 년 전  길을 가다가 목줄을 하지 않고 개를 산책시키던 어느 나이 든 아주머니를 본 적이  있다. 자신을 옥죄는 목줄로부터 자유로운 강아지는 무척 신나 있었고, 아주머니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 신이 난  강아지는 차도와 인도를 위험하게 넘나들었다. 강아지가 차도로 내려간 순간 뒤에서 오던 차량이 강아지를 그대로 밟고 지나가 버렸다. 순식간의 일이었기에 놀란 운전자는 급정거 후 미동이 없었고, 아주머니는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를 끌어안고 속절없이 목놓아 울었다. 당시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나는 속으로 그 아주머니의 무책임함을 힐난했다. 목줄은 강아지를 구속하는 포승줄이 아닌 그들을 보호하는 생명줄이라는 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그리고 밟힌 강아지와 그 강아지를 밟은 차의 운전자만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나 그 일이 거의 내 기억에서 잊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날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당시 내 마음속 배심원은 아주머니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그 후 접했던 수많은 애견인들의 경험들이 아주머니가 강아지와 쌓았을 추억을 상상하게 만들며 당시 얼마나 애통하고 슬펐을지 아주머니의 심정에 공감이 생겼다. 목줄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책임이 아닌 무지였고, 이는 아주머니만의 강아지에 대한 넘치는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예전의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공감하지 못했지만, 최근 늘어난 애견인들의 서사가 그 아주머니의 애통함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즉 삶의 이야기는 타인에 대한 공감을 불러올 수 있다.


이야기가 지닌 확장성, 시대 간, 세대 간 연속성을 만들다.


이렇게 서사가 가진 힘은 막강하다. 그러나 저자는 현대 사회에는 정보와 스토리 셀링만 존재하며, 서사와 이야기가 사라져 가고 있는 시대라고 우려를 표한다. 저자는 서사와 정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서사는 아우라를 지녔으며 공백이 있다. 또한 시대와 세대를 넘나드는 전승적 성질과 시공간적인 근접성, 그리고 원격성을 지닌 이야기이다. 반면 정보는 전시적이고 완결성을 띤다. 그리고 일시적이며 무간격성을 가진 기록이다. 양자의 차이 중 가장 중요한 점은 서사는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이 집단과 무리의 결속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수 천년 전 누군가에 의해 창작되었을 그리스로마 신화는 수십 세기 동안 여러 사람들을 통해 전승되고 구전되어 왔다. 신화 속 빈번한 생략과 부족한 개연성은 이를 전승받는 자들의 주관에 의해 재창조되며 그 시대와 장소에 맞게 수용되었고 현대에 이르러 여러 사회의 문화적 기반이 되었다.


반면 정보는 단편적이고 일시적이다. 팩트의 전달을 위한 정보는 그 전달의 쓰임을 다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00월 00일 00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그 정보가 전달된 순간 기록으로 남을지언정 인류 사회의 미래지향적인 측면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한다.


즉 서사의 공백성은 발아력을 지니고 있어 후대의 접근자들에게 확장성을 부여하지만, 정보가 가진 완결성은 역설적으로 확장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벤야민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이야기는 모든 걸 내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는 힘을 내면에 모은 채 보전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다시 펼쳐낼 수 있는 것이다.


서사의 상실은 개인의 주체성을 위협한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우리 손 안의 작은 스마트 폰은 SNS라는 매개체를 통해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데 왜 서사의 위기라는 것일까?


바로 앞 문장의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SNS를 통해 업로드되는 피드는 '이야기'가 아니며 우리는 그것을 '듣고' 있지 않다. 스냅챗, 인스타그램 등 SNS는 현실의 순간만 담을 뿐 이는 지속성이 없다. 얼핏 다양한 주체의 생동감 있는 현실의 이야기를 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새로운 순간에 대한 끝없는 강박적 업로드에 구속되어 있을 뿐 어떠한 공백도 전승적 기능도 없는 순간의 단편에 불과하다. 또한 이를 수용하는 이들도 청자가 아니다. 이들은 단기적이고 지속적인 자극을 좇아 새로 업로드된 피드에 중독적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이들일 뿐이다. 면대면의 오프라인이 아닌 수인치의 작은 디스플레이를 통한 관계의 연결은 근본적 취약성으로 인해 언제든 끊기고 부서질 수 있다. 공동의 서사가 부재한 단기적 자극으로 이어져 있기에 그 깊이도 매우 얕다.


더군다나 정보의 쓰나미에 개인들은 이의 진위조차 파악하지 못하 탈진실의 세계로 향해 나아가는 요즘, SNS를 통한 과도한 개인적 삶의 데이터화는 다가올 AI 시대에 개인의 취약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개인은 정보를 다루는 주체가 아니라 소수의 거대 AI보유 기업에 의해 정보와 선호, 목적과 의지를 무의식적으로 조종당할 수 있다. 서사의 아우라는 사라진 채 단편적 정보와 데이터 의존적인 행태가 이어지며 종국에 개인들은 주체성을 상실할지 모른다.


이미 이러한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페이스북 게시물 사이에 의류 광고를 보고, 여러 벌 있는 코트에도 불구하고 추가 구매의 당위성을 부여해 결제 버튼을 눌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한 유튜브가 추천하는 알고리즘의 편향에 빠져 자신의 정치적 믿음의 무오류성에 빠진 이들을 한두 번은 목격했을 것이다.    


다가올 AI 시대에, 자신만의 서사가 있어야 한다


다가올 AI시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두 가지이다.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질문할 수 있는 능력과 범람하는 정보 속 노이즈를 제거하여 진실된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서사가 있다는 것, 그러니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특성에 맞춰 주체적인 정보의 선취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에 매몰된 삶은 주변에 산재한 정보들이 그 진위를 판단할 시간도 없이 무분별하게 주입되는 것이다.


서사의 위기를 역설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드는 생각은 나만의 서사가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타인의 서사에 대한 귀기울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수많은 인류적인 해악을 목도하고 있다. 전쟁과 빈곤, 폭력과 파괴, 그리고 기후 변화까지. 서로에 대한 이해와 협력이 필요한 순간에도 우리는 과시를 위한 게시에만 몰두하며 자신과 서로의 서사를 상실하고 있다. 너와 나의 이야기를 말하고 들을 때 우리는 공감과 동질감을 느끼고 공동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주목을 두고 벌이는 경쟁은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한다. 스토리 셀링으로서 스토리텔링 시대에 이야기와 광고는 구분하기가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서사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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