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모든 예술가들을 위하여.
파주에 사는 사람 혹은 파주에서 근무하는 출판인들의 발이 되어주는 2200 번 빨간 경기광역 버스.이 버스를 타면 한 번에 합정역까지 간다. 차가 막히지 않으면 30분이면 도착하는데, 원래도 홍대, 마포 부근에 업무나 약속이 많았던 나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교통수단이 됐다. 처음에는 이 버스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아 수차례 멀미를 했었더랬다. 가끔은 버스에서 내렸을 때 조차 참을 수 없는 어지러움이 느껴져 한동안 앉아있다 장소로 이동하기 일쑤였으나 언제가부터 적응이 됐다. 물로 그럼에도 늘 멀미약을 챙기고 맨 앞자리에 앉는다.(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거의 뒷자리에 앉던 나였다. 어머니가 왜 앞자리를 고수하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나도 늙었다. 엄마 맘 너무 이해된다.....)
버스를 타고 오가다보면 별의별 손님 또 별의별 운전기사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날의 기사님은 유독 쾌활했다.
라디오에서는 퀸의 라디오 가가(Radio Ga Ga)가 흘러나왔고 기사님은 그 멋진 음악의 춤사위에 참을 수 없다는 듯 온 몸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고개를 까닥까닥 했으나 점차 어깨가 들썩들썩, 기어를 감싼 손마저 검지손가락에서 새끼손가락 까지 차례로 검반을 누르듯 리듬을 타던 그 순간, 멀미 탓에 맨 앞에 탄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분은 흠칫 하더니 손가락 리듬은 새끼손가락까지 차마 가지 못하고 넷째 손가락에 멈췄다. 괜스레 내가 기사 님의 흥을 깬 것 같아 한없이 미안해졌다. 영화같은데서 보면 이런 순간에 눈이 마주치면 찡긋 윙크를 하며 기사님께 엄지척을 날려주는 센스를 발휘하던데 소심한 나에게는 아주 먼 영화같은 얘기다.
흥에 겨워 자유로를 자유롭게 달리던 버스기사님을 보며,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을 떠올렸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다. 매일 버스 운전수로 일하고, 저녁에는 아내와 식사를 하고 반려견과 산책 겸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 잔 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우리와 별 반 다를게 없는 그의 하루가 특별한 이유는 자신의 일상을 시로 써내려 갔다는 것에 있다.
지극히 평범한 삶도 기록하다 보면 다른 의미로 남게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영화는 패터슨이란 매력적인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물론 패터슨에게도 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그동안 쓴 글을 반려견이 몽따ᆞ강 갈기발기 찢어 놓은 것. 그는 엄청난 상실감에 빠져들었지만 우연히 만난 일본인 시인으로부터 빈 노트를 받아들고 이내 몸을 일으킨다.
“때론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
글을 쓴다는 일은 막막하다. 늘 백지는 두렵다. 머릿 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진다는 관용구는 실로 절묘하다. 백지 앞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주저하고 망설이는가. 백지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은 때로 시작조차 못하도록 붙들어 두기도 한다. 대체 어떤 내용으로 백지를 매울 수 있을까? <패터슨>의 감독 짐 자무쉬가 제시한 답은 ‘관찰’이 아니었을까. 패터슨의 일상은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순간도 같은 순간이었더 적은 없었다. 우리네 삶에 허튼 순간 같은 것은 없으니까. 아주 미세하게 어제와 다른 오늘의 순간을 포착했을 때, 백지는 서서히 글자들로 물들기 시작한다. 일상이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이 한데 모아져 인생이 된다. 내가 발견해 주길 바라는 ‘나’를 관찰을 통해 찾아내야 한다. 이 세상을 영위하는 모든 것이 그렇듯 한 번에 쉽게 이뤄지는 것은 없다. 글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관찰하고 고민한 시간의 결과물이다.
일상이 글로 변주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일례로 남편은 아내가 작가임에도 내 책 따위 안중에 없었다. 이 분은 책을 잘 안 읽는다. 그랬던 그가 유일하게 정독하며 읽은 책이 있는데, 우리 부부의 독일에서의 삶을 담은 <명랑한 이방인>이다. 그저 일상이라고 여겼던 5년의 시간이 활자화되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신기해했고, 감탄했으며, 한편으로는 고마워했다. 지리멸렬한 삶일지라도 반복해서 쓰다보면 의미있는 무엇이 된다. 꼭 책이라는 완결 형태의 결과물이 아닐지라도 세상에 쓸모없는 글은 없다. 별 것 아닌 삶도 쓰다보면 별 것 있는 삶이 된다. 기록이란 것은 까만 밤 하늘에 흩어져 있는 별들을 모으는 일 일이다. 혹은 별 볼일 없는 삶에 별을 보여주는 일 일지도. 그 반짝임이 지난한 오늘을 밝혀주는 노란 희망이 된다.
언젠가 다시 흥겨운 버스 기사님을 만나게 된다면 말없는 엄지척을 날려주고 싶다. 일상의 모든 예술가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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