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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용 Jan 07. 2018

브라시(Þrasi)가 숨긴 보물을 찾아서, 스코가포스

아이슬란드 스코가포스에 얽힌 작은 전설을 따라가다.

Find Gold of Chest


아이슬란드 둘째 날. 호텔을 나서던 아침 9시 즈음이었다. 로비 뉴스가판대서 본 문구 하나가 눈에 밟혔다. 후퇴 없는 인생이었지만 다시 되돌아가 광고지를 집어 들었다.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는 아닐까? 'Find gold of chest(상자의 금화를 찾아라)'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요즘 시대에 보물이라니.


시원스러운 폭포 사진 아래 Treasureof Þrasi(브라시의 보물)'로 시작하는 짧은 글도 있었다. 보물이란 말에 홀린 듯 글을 읽어 내렸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바이킹이 숨긴 보물상자 이야기라니.




Treasure of Þrasi Þórólfsson


900년경은 노르웨이인들이 아이슬란드 이주가 활발하던 때였다. 브라시보롤프슨(Þrasi Þórólfsson)은 솔헤이마산두르(Solheimasandur)로부터 스코가(Skógar) 이르는 지역을 소유한 바이킹이었다. 그는 죽기 전 금화를 가득 담은 보물상자를 스코가포스 아래 연못에 숨겼다해가 높이 뜨는 날이면 스코가포스에 무지개가 떴다. 사람들은 보물상자가 이곳에 있는 증거라 믿었다. 연못 속 보물상자가 빛을 반사해 무지개를 만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물상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폭포 근처를 지나던 두 소년은 폭포 아래 반짝이는 상자를 발견했다. 노력 끝에 상자 옆 고리(ring)에 밧줄을 묶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일까, 끌어올리던 중 상자 고리 연결부가 부러졌다. 추락한 상자는 더 깊은 곳으로 빠졌고, 소년들에겐 고리만 남았다. 당신이라면 이 상자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였다. 요즘 세상에 보물상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궁금해졌다. 스코가포스가 어떤 곳이기에 보물상자를 숨긴단 말인가. 작은 호기심은 나를 스코가포스로 이끌었다. 




At the skogafoss


스코가포스는 과연 보물상자를 숨길만한 곳이었다. 폭 15m, 높이 50~60m는 되어 보이는 거대 폭포였다.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에 '우와' 하는 탄성부터 내질렀다. 머릿속이 하얘져 온 목적 따윈 잊어린채. 뿌연 수증기가 허옇게 피워오를 때마다 폭포엔 신비로움마저 더해졌다. 정말 난쟁이 보물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속아 버렸다. 


Skogafoss, by Jiyong kim


'이럴 줄 알았으면, 우의라도 한 벌 챙겨 올 걸'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보물상자를 찾으러 간 폭포 아래에선 물벼락만 맞았다. 수문 개방한 댐처럼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에  옷이 젖어들었다. 지닌 전자기기도 침수되리란 걱정이 앞섰다. 결국 난 폭포 아래로 가다 말고 머뭇했다. 아쉽지만 ‘폭포 아래 서보기’ 미션은 포기할 수밖에. 


'위에서라면 보물 상자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난데없이 생겨난 모험가 기질이 폭포 위로 갈 길을 찾았다. 폭포 우측 난간 없는 철계단은 분명 위험해 보였다. 발이라도 삐끗하면 언덕을 굴러내려와야 했다. 하지만 난 보물 사냥꾼이라도 된 듯 두 계단씩 성큼성큼 뛰어올랐다. 내가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같이 상자를 찾자던 아내는 전망대 근처도 안왔다..;


폭포 위 언덕 끄트머리 전망대에 오르니 가슴 보단 다리가 먼저 떨려왔다.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쏴하는 폭포 소리에 추락하는 자이로 드롭을 타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생전 처음 탄 자이로 드롭은 어찌나 빠르게 추락하던지 아찔함에 나같이 담 작은 사람은 탈 것이 못되었다. 


전망대 난간 너머를 보기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난간까지 한걸음 띌 때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가 추락하는 상상을 세 번쯤 하며 부여잡은 난간 너머로 고갤 내미었다. 


Skogafoss, by Jiyong kim

보물상자는 없았다. 


폭포수 아래 기대했던 작은 반짝임도 없었다. 혹시 누군가 상자를 가져간 건 아닐까? 무지개라도 떴더라면 상자가 이 곳에 아직 있다며 안심이라도 할 텐데.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지만, 나는 애꿎은 날씨 탓만 했다. 


나는 다시 겁쟁이로 돌아왔다. 약효가 다한 탓이다. 부여잡은 난간은 던져두고 전망대서 뛰쳐나갔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무너지는 전망대 상상에 냉큼 발을 빼버렸다. 


브라시가 숨긴 보물 상자 찾기는 실패했다. 애당초 있지도 않은 상자였을 테다. 그래도 한 가지는 건졌다. 디르홀레이까지 펼쳐진 멋진 경치다. 너른 들판 너머 뿌옇게 보이는 코끼리 바위에 갈 생각에 괜스레 기분 좋아졌다.



만약 푸릇한 여름에 왔더라면 어떤 모습일까. 느낀 감동이 10배는 더 하지 않았을까. 꼭 10년 뒤엔 여름에 오리라 다시 한번 다짐하며 언덕을 내려왔다. 


또 다른 보물 사냥꾼들이 서성인다. '아서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혹시 누가 아는가? 해 뜨고, 무지개도 뜬다면 저들이 보물상자를 찾을 수 있을지. 난 선배 된 마음으로 아낌없이 이 곳을 내어주련다. 스코가포스라는 아름다운 보물에 만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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