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본사를 강원도로 옮겼습니다만….”
본사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강원 춘천시로 옮긴 뒤 그 이유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미래를 열어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전세계가 동시에 기후변화를 마주한 이런 때에 갑자기 지방행이라니. 사실 본사를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지역활성화에 뛰어들기로 했다. 강원도,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강원테크노파크, 모태펀드로부터 출자금을 모아 강원도에 투자하는 투자조합까지 결성했다.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법도 하다. 지난해말 기준 국내 150여개 창업투자회사의 90%가 수도권에 본사를 뒀다. 초기 창업팀에 투자하고 육성을 돕는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도 약 70%가 수도권에 있다. 집행된 벤처투자금 규모 역시 수도권이 74%로 압도적이다. 여느 수치와 마찬가지로 투자생태계 역시 수도권에 쏠린 모습이다. ‘고객이 있는 곳으로 가라’는 창업생태계의 격언대로다.
서울이란 초대형 도시를 품은 수도권은 그야말로 전세계적 소비시장이다. 벤처·스타트업과 투자사들이 수도권에 몰리는 이유다. 복잡계 과학자 제프리 웨스트는 도시 크기가 2배가 되면 1인당 임금, 부(자산), 혁신이 15% 증가한다고 했다. 도시가 클수록 사회활동이 많아지고, 기회는 늘어나며, 임금도 올라간다. 전력망, 수도망 등 사회기반시설은 더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경제속도도 빨라진다. 기업이 더 자주 생겨나고 죽으며 거래도 빨라진다.
규모가 커짐으로써 긍정적인 효율만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범죄, 오염, 질병건수도 증가한다. 15%의 효율성은 질병확산에도 적용된다. 코로나19(COVID-19)란 전대미문의 전염병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빽빽이 모여 사는 우리의 삶과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깨닫게 해줬다.
코로나19 확산은 기존과 다른 시장을 열었다. e커머스나 온라인교육, 가전, 인테리어나 캠핑산업은 뜻하지 않은 호황을 맞았다. 지방 여행지도 전에 없는 특수가 생겼다. 밀집된 도시를 떠나고 싶거나 해외여행을 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로컬(지역)로 몰렸다. 강원도 역시 지난해 방문자가 전년보다 772만명 늘었다. 지역을 찾는 수요가 늘면서 지역 창업가들이 조명받는다. 이들은 지역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한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다.
강원도로 본사를 옮긴 첫 번째 투자사가 되기로 한 결심도 같은 맥락이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세상을 마주하면서다. 개별 국가단위의 지속가능성이 전제돼야 전세계도 지속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국내로 좁히면 지역 생태계가 지속가능성의 최소단위다. 심지어 기후변화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재생에너지산업이나 ‘생태적 삶’이 펼쳐질 장소 또한 지역단위다.
포스트 코로나의 답으로 소풍은 '지역 관점의 투자'(Local Lens Investing)를 찾았다. 각 지역의 고유성을 지키면서 더 큰 단위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 방식이다. 지역 인재와 자본, 인프라 등을 결합해 지역 생태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안경을 쓰면 사물이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지역이라는 안경을 쓰고 다양성, 고유성 등 전에는 못 봤던 혁신 재료들을 뚜렷이 볼 계획이다.
코로나19 이후 지역 활성화는 더 이상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당위의 문제가 아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라는 생존의 문제가 걸린 일이 됐다. 부분의 지속가능성이 없이는 전체의 지속가능성이 있을 수 없다. 다양성과 고유성에 기반한 로컬의 문화나 생활방식 등에 대한 투자가 지속가능한 생태계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지역 기반 투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사는 첫 번째 답이 될 것이다.
2021년 2월 3일에 머니투데이 '미래산업' 섹션에에 실린 글입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122309124250168&vgb=column&code=column28&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