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칼럼
5년 전 투자한 회사에 이어 작년에 투자한 회사에서도 얼마 전 우리 소풍벤처스로 배당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사업 성과가 뛰어난 두 기업의 배당 통지를 받아 들고 조언을 받아야 하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시드 투자사이자 액셀러레이터이다 보니 배당을 받는 경우가 이례적이라서 배당에 따른 세금과 배분 문제 등이 우리에게 생소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풍이 투자한 소셜벤처는 80곳을 돌파했다. 이 중 95%는 소풍이 첫 투자자였고, 50%는 법인조차 설립되지 않은 곳이었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예 없거나 검증이 안 된 초기 팀들을 마주하는 것이 액셀러레이터의 일상이다. 아무리 좋은 팀, 비즈니스라도 초기 모습은 대부분 엉성하다. 여러모로 부족한 모습으로 만나 투자사와 피투자사로서 인연을 맺은 기업이 어느새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여 배당하는 상황은 금액 크기를 떠나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배당이 가능한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한 이들을 보며 떠오른 곳들이 있다. 바로 소셜미션과 진정성에는 크게 공감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이 없거나 지속 가능하지 않은 창업팀이다. 의외로 자주 찾아오는 이 안타까운 순간을 마주할 때면 복잡한 감정이 밀려든다.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이를 비즈니스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점을 대면하는 것이기도 하고, 더 괴로운 것은 창업가에게 투자 거절이라는 모진 말을 해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언해 줄 방향이나 아이디어조차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경우에는 자괴감까지 더해져 힘이 쭉쭉 빠진다.
액셀러레이터로서, 진정성 있는 창업자와 역량이 좋은 구성원들이 엄청난 비즈니스를 가지고 스스로 찾아오는 행운을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다. 발로 뛰어 직접 그런 회사를 찾아다녀야 한다. 소풍이 찾는 바람직한 임팩트 비즈니스의 모습은 비즈니스와 임팩트가 강하게 결합돼 있어 각각의 성장을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는 모델이다. 이런 경우에는 임팩트가 극대화되면서도 성장성 및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 즉 소풍은 이윤 창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가치가 창출되는 비즈니스 모델에 열광한다.
임팩트와 비즈니스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은 고객과 수혜자가 같다는 말이기도 하다. 비즈니스는 제품 생산이나 유통 등을 통해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일이다. 임팩트는 비즈니스의 전 과정에서도, 고객들에게 가치가 전달된 후 다른 수혜자에게 기부나 지원이 갈 때도 발생할 수 있다. 소풍의 기준에서 고객과 수혜자가 다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두 가지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초기 소셜벤처의 입장에선 두 토끼를 쫓는 격이기에 잘못하면 둘 다 놓칠 수 있다.
전 세계의 절반이 넘는 임팩트 투자자들은 시장 평균이나 그보다 높은 수익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것은 경제적 수익과 사회적 편익이 서로 트레이드오프(Trade-off) 관계가 아니라,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요소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초기 기업들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건너 이제는 배당을 논의하는 두 기업 역시 임팩트와 비즈니스가 강하게 결합되는 지점을 수많은 고민 끝에 찾아낸 곳이다. 한 곳은 고통스러운 피벗 과정을 통해서 분리돼 있었던 비즈니스와 임팩트를 연결하는 모델을 새로 만들어냈다. 다른 한 곳은 모회사의 우산 아래서 프로젝트로 시작해 갖은 실험을 통해 성공적으로 모델을 만들어내고 분사했다.
솔직히 말하면 투자 시점에는 이들이 배당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의외의 결과가 힘든 액셀러레이팅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와 함께하지 못했던 다른 창업팀들에서도 이런 의외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소풍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진통을 많이 겪은 후에 이례적으로 멋진 모습으로 성장해 새로운 임팩트 비즈니스의 신화를 써가기를 바란다.
2021년 4월 20일 자 조선일보의 공익섹션, [더나은미래] '월간 성수동'에 쓴 칼럼입니다.
성수소셜밸리, 소셜벤처의 메카로 불리는 성수동과 그곳 사람들 등 임팩트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https://futurechosun.com/archives/55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