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칼럼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최근 우리 집의 아침 향기와 맛을 책임지고 있는 커피는 강원도 속초의 칠성조선소에서 로스팅한 원두다. 콜롬비아와 브라질에서 건너온 이 원두를 가성비가 끝내준다는 전동 그라인더에 갈아내려 함께 사는 분에게 진상하듯이 올려드리는 이 의식을 미적거리기라도 하면, 당장 핀잔이 날아온다.
조금은 사치스럽게 아침을 시작하며 우리는 거의 전 세계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는 마틴 루서 킹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탁자에 앉아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수확한 커피를 마시거나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마시거나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마신다. 우리는 일터로 나가기 전에 벌써 세계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일은 복잡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근래 소풍이 가장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는 영역도 농수산 축산업과 식품 분야이지만 생산, 운송, 유통, 소비, 그리고 다시 폐기에 이르기까지 농수축산식품과 관련된 영역은 워낙 넓고 또 세분화되어 있어 전체의 가치사슬을 이해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전 세계 인구 70억 명이 하루 3끼를 먹는, 이보다 큰 산업이 과연 존재할까, 우리 삶에 이보다 큰 영향을 주는 산업이 존재할까라는 생각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언택트 시대에도 농식품산업은 그 모습을 바꿔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농식품 시장은 2019년 대비 2배 정도 성장하며, 온라인 거래 품목 중 1~2위를 다투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순 있어도, 먹는 것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업이나 식품 분야는 소풍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임팩트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다. 지난 5년간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률을 보여 온 시장이자, 약 90%에 달하는 임팩트 투자자들이 향후 5년 동안 농식품분야 투자를 늘리거나 최소한 현행 유지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산되는 식품의 1/3이 폐기되고 있고, 전체 온실가스의 약 1/3이 농업분야에서 배출되고 있다. 해양 플라스틱의 절반은 어업에 사용된 그물과 같은 기구들이다. 지구의 한쪽은 엄청난 풍요를 누리는 가운데에, 전 세계 인구의 1/4은 여전히 기아의 위협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소풍에서는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세부항목 중 최소 50개 이상의 지표들이 농식품 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일자리, 건강, 바이오 등으로 그 영역을 넓히면, 거의 대부분의 항목들이 농식품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먹거리와 마실거리 등 식탁이 바뀌는 것만큼 큰 임팩트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아침에 내린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기 전, 올해 초 강원도 양구의 한 사과 농원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양구의 해안면 분지, 일명 펀치볼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과가 전국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과의 도시 대구에 남은 사과 농가는 소수이며, 10년 이내에 현재 국내 사과 최대 주산지가 경북에서 강원도로 바뀔 것이라는 통계청의 예측 역시 현실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기후 변화와 함께 농작물들의 생육 환경 역시 춤추고 있다.
앞으로 계속 농수산축산식품 분야에 투자를 해나갈 예정이지만 이 분야를 안다고 이야기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이 채 되기도 전에 농업과 식품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겸손함이 아닐까 한다. 다만 농식품 분야에서 임팩트를 만드는 것이 개인과 사회, 더 나아가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한다라는 사명을 갖는 창업자와 투자자가 더 늘어나게 될 것만은 확실하다.
2014년 미국 슈퍼볼에서 공개되었던 한 트럭 회사의 광고를 기억하며 마지막 남은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8일째 되는 날, 하나님은 계획하신 낙원을 내려다보며 말씀하셨습니다. 관리할 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신은 농부를 만드셨습니다.'
2021년 6월 15일 자 조선일보의 공익섹션, [더나은미래] '월간 성수동'에 쓴 칼럼입니다.
성수소셜밸리, 소셜벤처의 메카로 불리는 성수동과 그곳 사람들 등 임팩트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https://futurechosun.com/archives/56355